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승주 작가 Jan 31. 2024

니콜라이 고골과 소설가의 일

《코》 리뷰와 후배의 소생을 기원하며

후배가 극단적 선택을 해서 며칠 동안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임종이 임박했다는 말, 연명치료를 중단했다는 말,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겼다는 말, 요양 병원으로 전원했다는 말을 연이어 들으면서 내 마음은 지쳐 가고 있었다. 내 마음이 진짜 지치고 힘들 때 가끔 책을 성경처럼 껴안고 구절을 노래하듯 중얼거린다. 초등학교 때 내가 자주 가던 전자오락실 주인이 성경을 끌어 안고 찬송가를 그렇게 불렀다. 나는 인문주의자라서 성경은 아니지만 철학서나 소설책을 들고 흉내를 내니 어린 시절 전자오락실 주인의 고통이 뒤늦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후배는 나에게 사랑을 하겠다고 자주 말했다. 성당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봤는데 단계별로 전략을 세웠고 우리는 같이 검증을 했다.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함께 작전을 짤 때 참 신났다. 그런데 어느 장면에선가 모든 게 중단돼 놀랐던 적이 있다.


형, 저는 삼포 세대도 아니고 사포세대, 오포세대, N포세대에요. 어떻게 감히 사랑을 해요?


후배의 말에 가슴이 아팠다. 한 사람의 고통을 두 사람이 나누는 게 아니라 고스란히 두 배로 만드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니콜라이 고골 단편선 《코》(새움)에는 《지칸카 근교의 야화》에서 2작품, 페테르부르크 이야기에 속하는 3작품이 수록돼 있다


나는 후배에게 <광인일기>를 낭독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날은 드레싱을 하는 날이라 펼쳐 보이기만 했다. 보지도 못할 테지만. 개의 목소리를 듣고, 개의 편지를 읽을 수 있는 남자는 국장의 딸을 사랑하는 9등 문관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사랑을 다른 남자에게 빼앗기며(뻬앗겼다고도 볼 수 없을지 모른다) 점점 미쳐 가는 이야기다. 고골의 작품에는 고골이 아니었다면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존재들이 조용히 고통을 겪다가 비참하게 죽거나 겨우 원상태로 돌아오거나 미쳐버리거나 암튼 밑져야 본전인 이야기로 가득하다.


후배는 마치 긴 여행이 끝난 돈키호테처럼 맨정신으로 유서를 또박또박 눌러 쓰면서 생과 작별을 했다. 임종이 안 됐으니 의도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생명은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는 겸허한 진리를 담고 있기도 하다.


후배가 하늘나라로 간다면 <외투>의 아카키 아카키계비치처럼 자신을 괴롭혔던 것들에게 신나게 복수를 하기를 바란다. 나는 땅나라에서 소설로 함께 복수를 하겠다. 니콜라이 고골이 후베를 알았다면 분명히 애도의 소설을 썼을 것이다. 후배도 한껏 조랑하고 풍자하면서, 후배를 그렇게 만든 녀석들에게도 펜으로 준엄하게 비판하면서. 후배는 이제부터 영원히 나의 <코>가 되어서 나를 고생시키면서도 나에게 소설적 상상력을, 그 끈적끈적하고 질척거리는 냄새가 되어 내 주변을 서성거릴 것이다.


후배야, 우리 지난 시절처럼 환상의 콤비가 되어 하늘나라와 땅나라에서 재밌게 전략도 짜고 싸워 보자.


후배의 재미없는 농담이 그립다. 오늘 면회를 갔는데 눈을 뜨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마음이 복잡했다. 의식적으로 뜬 눈이 아니었기 때문에
매거진의 이전글 한강의 4.3소설은 '채식주의자'가 된 '소년이 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