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여러 판본으로 읽게 된다. 이번에 예비중학생들과 독서토론 수업을 하면서 처음으로 열린책들 판본을 건드렸는데, 우크라이나판 서문이 담겨 있었다. 조지 오웰은 왜 우크라이나판 서문을 이렇게 정성스럽게 썼을까?
우크라이나는 작은 러시아라는 의미로, 러시아에 대한 추억을 강하게 각인시켰을 것이다. 우크라이나판 서문의 주요 내용을 오웰의 말로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전체주의에 의한 타락이 꼭 전체주의 국가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 《나는 왜 쓰는가》, <문학예방>
전체주의에 있어서 조지 오웰은 대가를 넘어서 위대한 사상가에 가깝다. 《동물농장》, 《카탈로니아 찬가》, 《1984》가 전체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일 뿐 아니라, 다른 글에서도 전체주의를 논할 때는 잘 벼려진 칼 같기도 하고, 절실하다 못해 처절한 느낌을 준다. 그러니까 조지 오웰은 평생 전체주의와 씨름했다고 할 수 있다. 오웰은 지배세력이 그 기능을 잃어버리고 강압이나 사기오 권력을 고수하는 경우, 그 사회는 전체주의가 된다. 우리 역사로 따지면 임진왜란 이후 조선 사회, 제주4.3과 여순항쟁 전후의 숙군 과정, 서울의 봄 전후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순간들을 나열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이 스페인 내전을 경험하고 《카탈로니아 찬가》를 쓴 해가 1938년이고 《동물농장》은 1945년 출간된다. 오웰 스스로가 《카탈로니아 찬가》가 노골적인 정치 소설이라고 말했고, 《동물농장》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 보려 한 최초의 책"이었다고 말했다. 열린책들 《동물농장》의 우크라이나판 서문에는 창작 과정의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가 적혀 있다.
어느 날(당시 나는 조그만 시골 마을에 살고 있었다) 나는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느 꼬마가 커다란 달구지 말을 몰고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꼬마는 굽은 길을 돌 때마다 말에게 채찍질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만약 저런 동물들이 자기들의 힘을 인식한다면 우리 인간들은 저들을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없을 것이며, 또한 인간들이 동물들을 부려먹는 것은 부자들이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우크라이나판 서문)
마치 코로나 감염처럼 영국 사회는 1939년까지 러시아의 전체주의적 모략도 독일 나치 정권의 실체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었다. 조지 오웰의 우크라이나판 서문의 미늘은 영국 사회 비판에 집중돼 있었다. 영국 사회는 온실속 화초처럼 언론의 자유가 있고, 숙청의 공포가 없기 때문에 러시아 스탈린와 독일 히틀러를 감상주의로 볼 수 있고, 그러는 과정에서 전체주의에 중독될 수 있다. 이것은 조지 오웰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공포였다.
조지 오웰이 우크라이나 독자들에게 말을 건 것은 영국 독자에 대한 기대를 접었기 때문일 것이며, 우크라이나 독자는 러시아의 독자와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의 진심과 절박한 호소가 담긴 우크라이나판 서문은 동물농장 못지 않게 큰 울림을 준다.열린책들이 우크라이나 서문을 서두에 실은 것은 한국 사회를 그대로 영국 사회로 바꿔서 써도 의미가 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대해서,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에 대해서 지난 시대 영국이 보였던 낭만적이고 감상적이고 온실속 화분 같고, 책상머리 정의, 키보드 워리어 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그런 의미에서 시의적절한 서문이다.
동물농장을 이해하고 싶어서 그의 산문과 카탈로니아 찬가까지 넓게 살피게 된다. 조지 오웰의 사상과 문장에 중독된 사람에게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