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미스터리 소설 <허즈번즈>와 <악령> 스따브로긴의 비교
※ 스포일러가 있으니 원치 않으시면 책을 읽고 글을 읽어주세요.
요즘 도스또옙스끼의 『악령』을 듣고 있다. 벽돌 세 개를 도저히 읽을 시간이 안 되기 때문에 운전을 하거나 산책을 하면서 유튜브 낭독을 듣고 있다. 20대 때 한 번 정독한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죄와 벌』을 듣고 나서 또 들을 거 없는지 찾다가 『악령』을 찾은 것이다.
『악령』은 1869년 세르게이 네차예프라는 허무주의자이자 아나키스트가 전향한 이바노프를 살인한 이른바 ‘네차예프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스따브로긴은 현대 영웅의 걸작이다. 물론 적그리스도적이고 빌런적이지만 러시아 혁명 분위기와 전체주의, 스탈린주의를 예고하며 당대의 온갖 욕망과 음모를 담을 만한 그릇이었다. 나는 스따브로긴을 ‘화산분출형 영웅’으로 분류했다. 당대의 모순과 열망을 화산처럼 뿜고 마침내 산째로 불타버렸다.
함께 읽고 있는 책은 박소해 작가의 『허즈번즈』이다. 『허즈번즈』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이라는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기 속에서도 주체적인 의지와 욕망을 품고 살아가는 한 여성의 일대기이다. 나는 200쪽 남짓 읽을 때까지 ‘허즈번드’라고 생각하다가 복수형이란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소설 속에서 ‘여왕개미’로 묘사된 수향은 여러 남편들을 거느린 여성 영웅이다. 물론 남편들을 거느리게 된 것은 그의 바람이라기보다는 운명의 장난이자 타인의 음모와 욕망의 희생양으로 비롯된 것이었지만 그를 본 남자들은 여왕개미를 향하는 수개미처럼 자력에 이끌린다.
주인공 수향은 스따브로긴과는 다른 유형의 영웅이다. 수향의 외할머니는 심방이었다. 수향은 무병에 걸렸고 외할머니로부터 ‘추는굿’이라는 치유의 굿을 받고 나서 신이 들어왔다. 무속의 눈[영안(靈眼)]을 획득하게 된 수향은 갑자기 양복을 입고 나타난 덩치 큰 남자의 손에 이끌려 서울로 갔다. 그는 친아버지였다.
수향은 ‘공간확장형 영웅’이라고 분류했다. 제주도라는 공간에서 서울이라는 공간으로 확장되고, 적산가옥에서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며 내적 확장을 이루고, 미군 공군 월터로부터 미국이라는 신세계를 듣고 마침내 미국으로 확장한다. 공간확장형 영웅은 그 자리에 머무를 수 없다. 그래서 “네가 나의 나라야”라고 청혼한 마사키의 청혼도, 월터의 청혼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스따브로긴이 악령의 중심에서 악령에 홀린 자들을 이끌고 지옥으로 들어갔다면, 수향은 원령(怨靈)과 생령(生靈)을 끌어들이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함으로써 초자연적인 힘으로 위기를 돌파한다.
소설의 시대 흐름은 평이하다. 남자들의 해방으로 인식되는 광복과 한국전쟁을 가로지르는 격변의 한국 현대사 안에 담긴 서울의 적산가옥 나가스 저택이 주된 무대다. 그곳에는 비밀의 방이 있다. 사방이 온통 붉은 페인트칠된 방의 한쪽 벽면에는 붉은 밧줄 뭉치, 채찍, 회초리, 입마개, 다양한 크기의 나무로 된 각좆들(남근 모양의 성기구)이 즐비했다. 수향의 연인인 마사키는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았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닮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놀잇감일 때는 학대로 괴로웠지만, 버려졌을 때는 버려진 기분 때문에 괴로운 이중적 심정은 다분히 도스또옙스끼적이다.
사춘기가 와서 제 목젖이 튀어나오고, 어깨가 넓어지고, 키가 크게 자라자, 아버지는 제 몸뚱이에 흥미를 잃었죠. 덕분에 저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학교에 다니게 되었죠. 하지만 가엾게도 교코가 다음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를 얻었지만 저는 괴롭기만 했어요. 한없이 미워했던 아버지였지만 동시에 그의 사랑을 잃은 기분이 들어서……. 속으로 여동생을 질투하는 제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에 진학한다는 핑계를 대고 집에서 탈출해버렸죠. 저는 비겁한 인간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학대받는 여동생을 외면하고 도망친……. (허즈번드, 322-323쪽)
『허즈번즈』에 등장하는 남성 인물들은 저마다 기이한 불행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수개미처럼 여왕개미에게 이끌리는 것은 어쩌면 그런 불행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일, 영진, 영우 세 쌍둥이는 징집을 피하기 위해 아버지의 쌀가게에서 다리가 불편한 영우를 흉내내면서 삼일에 한 번씩만 외출을 하였고, 수향 아버지를 협박해 결혼을 했을 때도 밤에만 수향의 방에 들어가 번갈아 동침을 했다. 어머니는 세쌍둥이를 낳는 과정에서 숨졌기 때문에 세쌍둥이의 유일한 세상은 아버지와 쌀가게뿐이었다.
세쌍둥이의 아버지 살인에 대해서 지인들과 토론을 벌였다. 쌀가게가 유일한 세상이었던 세쌍둥이가 아버지를 살해한다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단지 보호자를 교체한 것일 뿐”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나는 세쌍둥이가 아버지를 살해했다기보다는 ‘동의’를 했다고 보았다. 청산가리를 넣은 양념통으로 야바위를 해서 찌개에 들이붓고 누가 죽였는지 알 수 없게 하자는 제안을 한 것은 우리들의 영웅 수향이었다.
『허즈번즈』의 메인 빌런 인민군 대좌 김은도는 권총 자살한 아내 소피아의 환영을 데리고 다닌다. 나가스 가문의 대저택은 원혼들이 많았기에 음험하여 소피아는 김은도의 방에 매일같이 출근하다시피했던 것이다.
수향은 새로운 세계, 새로운 인물에 대해 이끌리는 힘이 강렬한 인물이다. ‘시냅스 연결 광인’이라고나 할까? 수향이 은도를 바라보는 이중성도 역시 도스또옙스끼적이다.
수향이 은도를 무서워한 건 단지 권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은도를 혐오하면서도 동시에 매혹을 느끼는 제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쌍둥이, 마사키, 월터를 좋아하는 마음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감정이었다.
저자는 타고난 수컷이었다.
웬만한 장정보다 머리 하나 큰 키, 두꺼운 허벅지, 허리에 날렵하게 올라붙은 엉덩이, 군화를 신은 죽 뻗은 두 다리, 저 강건한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의 근원은 저자가 강한 수컷이라는 데에 있었다.
(『허즈번즈』, 408쪽)
은도를 또 하나의 메인 빌런인 소아성애증 빌런인 나가스의 생령과 연결시켜서 일타이피를 한 것은 절묘한 선택이었다. 『허즈번즈』의 남편들은 수향이 자신을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슬펐다.
소설가 지망생으로서 항상 어려운 것은 대단원이다. 나는 소설의 첫 문장이 결론부와 수미쌍관 구조로 완성되는 것이 가장 훌륭한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해방은 남자의 것이었다.
수향은 아직 해방되지 못했다.
(『허즈번즈』, 29쪽)
『허즈번즈』의 의의는 남자들의 해방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향에게 충분한 자유 공간이 있어야 했다. 남자들의 해방이라는 반쪽 해방은 결국 남자들을 가두는 것이며, 여성의 투쟁을 통해서 나머지 반을 채웠을 때 남자들도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고, 여성도 해방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수향이 싸워온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을 위해서 수향은 미국행을 선택하고 마사키는 버려진다. 마사키가 버려져야 하는 이유가 충분한 걸까? 40년 동안 서울에 남아 있던 마사키와 재회하고 그의 아이를 보여주는 것은 적당한 보상이 되는 걸까? 이것은 마사키의 시점이다.
수향의 시점에서 보면 형벌은 스스로 내리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공간확장형 영웅으로서 수향이 감당해야 할 임무의 종결은 마사키의 아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소설이 수향의 미국행으로 끝나기 때문에 미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상상의 영역으로 남았다.
내가 작가였다면 공간확장형 여성 영웅의 결말로서 ‘거녀(巨女)’ 설문대할망의 상징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여성들의 해방구이자 비빌언덕으로서 미국에서 활약했다면 공간확장의 완성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제주의 이야기라면 제주의 신화는 좋은 소재일 수 있으니까. 설문대할망에 대한 해석이 담긴 글을 인용하면서 리뷰를 마친다.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시대가 있었지. 나무와 풀이 우거져 길 자체가 거의 없던 시대야. 남자와 여자들은 서로 떠돌며 생활하다 만났지, 그리고 같이 살다가 헤어졌어. 그사이에 여자들은 임신을 했고, 임신한 여자들은 아이를 낳을 자리를 찾아 들었어. 여자들은 어머니로부터, 어머니는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집을 떠날 때 아이를 설어 몸이 물게 되면 가야할 곳을 들으면서 컸어. 사람들은 아이를 설어(임신한) 몸이 문(부은) 여자들이 가는 다ᆞㅣ(곳)를 설어문다ᆞㅣ, 설문대라고 불렀지.
설문대엔 임신한 여자들이 모여들었고, 그곳에서 출산을 도와주는 여자가 설문대할망이야. 아이들은 모두 할망의 도움을 받아 태어났지.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대부분 설문대할망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지.
설문대할망은 아이만이 아니라 아이의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도 태어나게 했어. 매우 높은 분이었지. 얼마나 높은지, 한라산만큼 높고 큰 분이라고 어머니는 말했어.
아이들에게 그곳은 고향이었으며, 동시에 어머니에 대한 기억의 공간이야. 아이들은 설문대 근처에서 어머니에 의해 자랐어. (송문석, 『신화 비밀코드』, 3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