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를 위해서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나름 책을 읽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독서가라면 자신만의 독서 방법론이 있다.
나는 종이에 메모하며 읽는 방식을 20여년째 쓰고 있다.
노트, 포스트잇, 스티커 등 다양한 기구를 썼지만 지금은 A3를 두 번 접어서 책갈피 대용으로 쓰고 있다. 나를 작가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종이에 베겨쓰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1997년부터 종이에 책의 내용을 베껴 썼다. 내가 손과 볼펜과 종이로 돌아다닌 시간은 '정신'이 될 정도로 뇌리에 새겨졌다. 짧고 가볍게 읽을 책들은 눈으로 읽지만, 중요한 책들은 손으로 읽었다. 손으로 읽은 책들 중에서 쓰기를 위해서 필요한 내용들은 데이터가 되었다.
두 번째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는 바로 10여년 동안 입력했던 데이터가 있었기에 쓸 수 있었다. 10MB 짜리 엑셀파일을 본 적이 있는가.
세 번째 책으로 작업하고 있는 "10대와 통하는 인문학_공자의 논어"는 읽을 양이 많이 있어서 종이 메모를 생략했다.
독서 방법을 약간 파괴한 것이다. 원래 종이에 손글씨로 메모(1단계)하고 엑셀에 옮겨 적었는데(2단계), 바로 2단계로 건너뛰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그 시간에 자료를 한 권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 그 대신 출력해서 많이 읽어봐야겠다.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줄지 모르겠다. 내가 이제까지 읽었던 논어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한 논어와 공자에 대한 이야기를 새로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내가 읽었던 방식으로 공자와 논어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읽기를 위한 독서는 열린 마음으로 모든 것을 읽겠다는 의지로 책을 다루는 반면, 쓰기를 위한 독서는 곧바로 쓸 준비를 하기 위해 새기는 것이다. 때문에 읽기를 위한 독서에는 '베껴쓰기'가 주인공이 되지만, 쓰기를 위한 독서는 읽은 구절에 대한 해석이 주인공이 된다.
독서방법의 파괴는 나에게는 도박인 셈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쓰기를 위한 독서의 계절이 시작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