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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Dec 11. 2017

블로거에서 작가로 업그레이드하는 메모 독서

블로그 글쓰기와 책쓰기의 차이


자신만만하고 성실한 파워블로거 그녀


내가 그녀(A)를 처음 만난 것은 도서관 글쓰기 강의 때였다. 공공도서관의 독서회 소속인 그녀는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고 주위 동료들은 그가 아직 자신의 책을 내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울 정도였다. 그녀의 글은 재치가 넘쳤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언어’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책을 쓸 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첫 번째 이유는 블로그 글과 책의 글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거나 막연하게만 구분하고 있었다. 블로그를 하면서 구독자가 많고 댓글 반응이 많으면 작가가 된 듯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블로그 글은 여러 번 고치면서 만들어지기보다는 직관적으로 빠른 시간에 작성된 것이다. 그녀도 그런 방식으로 블로그 글을 생산해 왔던 것이다. 모바일과 인터넷으로 전파되는 블로그 글이라는 매체는 종이로 전파되는 책이라는 매체와 다를 수밖에 없다. 블로그 글은 클릭만으로도 구매가 가능하지만, 책은 서점 가서 돈을 주고 사야 한다는 점에서 소비하는 방법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선생님, 이 책을 쓰기까지 몇 번 정도 수정하셨어요?”
- 전체를 뜯어고친 건 다섯 번 정도 되고, 오랜 시간을 들이고 집중해서 부분 수정한 것까지 합하면 족히 열 번은 넘을 거예요.

이 짧은 대화에서 그녀는 잔뜩 주눅이 든 것 같았다. 글쓰기 선생으로 그녀를 알게 된 나는 그녀가 자신만의 반듯한 책 한 권을 가졌으면 좋겠다. 육아휴직 때문에 일을 멈추고 경력단절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눈치도 보였다. 만약 책을 쓸 수 있다면 그녀는 조금 더 즐겁게 삶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파워블로거에서 작가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메모 독서 제안


그녀는 책을 쓰고 싶어하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작가의 세계는 대부분 상상 속에서 이루어진다. 상상을 실제로 바꾸는 다소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해야 작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녀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메모 독서를 권한다. 블로거에서 작가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뇌리에 떠오른 영감을 그대로 표출하는 게 아니라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농부가 밭에 씨를 심듯, 마음 밭에 글감을 심어 놓고 익은 것들을 가지고 글을 삼는 것이다. 소설가 중에서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생각을 간명하게 잘 정리한 글을 남겼다. 


나는 대작의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것은 나의 결정적인 작품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내가 창조하여 전편의 기초로 삼았던 인물은, 그 성숙에 몇 해가 걸렸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나는 당시에 아무 준비도 없이, 최초의 열의에 불붙은 그대로 이 작품에 손을 댔다고 한다면 틀림없이 모든 것을 망쳐 버렸으리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 J.M, Murry,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과 사상』


우리가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이는 까닭은 무엇인가? 왜 블로그나 SNS만으로는 부족해 하는가? 정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다. 블로그의 글들과 SNS의 글은 생각의 뿌리가 되기에는 너무 빨리 타버린다. 천천히 데워지고 천천히 식는. 심장처럼 멈추지 않는 영혼의 말은 죄대 책 안에 있다. 만약 그녀가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구절을 자신의 마음 밭에 타임캡슐처럼 묻어두었다면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 때 이를 지지해주는 ‘뿌리 깊은 말’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과 자신의 생각이 한데 어우러지면 파워블로거 그녀의 전혀 새로운 ‘작가적 면모’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문제는 ‘글의 뿌리’를 찾는 것이다. 메모 독서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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