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독서를 20년째 놓지 못하는 까닭
아직도 생각난다. 1998년 7월과 8월.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가난을 알고 싶어서 막노동을 했다. 겨울에는 선과장과 감귤 과수원에서 단순 막노동을, 여름에는 도로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지금 와서 생각하면 가난을 배우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가난했던 것 같다. 특히 영혼까지 가난한 동료들에게 호되게 당했던 기억이 아픈 상처마냥 쓰라리다. 막노동을 끝내면 해질녘이 된다. 다음날 새벽같이 나가야 하니 밤늦게까지는 읽지 못하고 중간에 끊어야 한다. 일분 일분이 소중한 시간이다. 그 시간에 나는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썼다’. 당시 필사하기는 꽤 유행했는데 누구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다 베껴 썼다고 했고, 누구는 박경리의 <토지>를 다 베껴썼다고 했으니 믿거나 말거나다. 내가 <에티카>를 ‘메모’하기로 한 까닭은 책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책 전체를 베껴쓰는 것은 엄두를 낼 수 없었고, 기껏해야 마음에 드는 구절을 베끼는 것이니 내 독서 방법은 엄밀히 말하면 ‘초록(抄錄)’ 또는 ‘초서(抄書)’ 라고 해야 옳다.
누군가 말했다. 필사는 극단적으로 느린 독서법이라고. 초서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애를 태울 만큼은 느린 독서다. 읽고 싶었던 책이 많았던 스물한 살의 나는 메모를 한 지 한 달 남짓 되었을 때 노트를 집어던졌다. 그리고 다른 책을 잡았다. 어떤 책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노트를 던졌던 분노의 손맛만큼은 생생히 기억한다. 하지만 이내 다시 돌아왔다. 다음 구절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스스로에게 욕을 하면서 메모를 했지만 7~8월 여름 내내 책 한 권 읽고 나서 이 방법을 그만뒀을까? 그렇지 않다. 그 시기의 독서방법을 20년째 하고 있다. 나는 노트에 독서를 새긴 것이 아니라 내 심장 깊숙한 곳에 새겼으며, 그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서 나에게 향기를 내뿜고 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완독한 사람들이 간혹 경험하는 느낌이 있다. 마치 공중을 나는 듯한 느낌에 소리를 지르게 되는 현상을 누군가는 ‘마녀의 빗자루 효과’라고 한다.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서 인간 감정과 마땅히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윤리를 축조한 <에티카>의 마지막 대목에는 ‘신을 향한 지적 사랑’이 있다. 감정과 이성이 합수(合水)하며 완성되는 대목이다. 도서관에서 소리를 지를 뻔한 걸 겨우 억제하고 집으로 버스를 타고 왔는지 마녀 지팡이를 타고 왔는지 몰랐던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정말 좋은 구절은 눈으로만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메모를 하게 했는데, 메모가 심장에 새겨질 줄은 몰랐다. 나의 심장은 좋은 꽃과 열매가 자라는 밭처럼 좋은 말들이 자란다. 거기서 수확한 말들은 나의 말이라고 불러도 문제가 없지만, 뿌리가 있는 말이다. 작가의 말은 수많은 말들과 함께 자라는 향기로운 꽃이다.
나의 저작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마땅히 우리의 저작이라고 불러야 한다. - 파스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