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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Dec 14. 2017

차별에 관한 한 중학생의 놀라운 의견

근원적 차별과 역차별에 관한 중학교 1학년 수업

근원적인 차별은 역차별을 초래하며, 이런 모든 차별에 의해서 양성평등의 가능성들이 모두 상쇄돼 버린다.



솔직히 조금 놀랐다.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을 하다가 '잘못된 교육'에 대한 토론을 하게 되었다. 실제 경험했던 사례를 바탕으로 선생님이 여학생을 예뻐하면서 동시에 남학생을 무시하고 차별한다면 이 선생님에게 교육 받는 학생들은 남녀관에 왜곡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 남녀관의 왜곡을 선생님의 차별적 교육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지만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니까.


하나의 상황을 더 예로 들었다. 한 대기업에서 매우 드물게 부장으로 승진한 한 여성의 경우였다. 여성 부장 밑에는 많은 남성 과장들이 있었다. 여성을 상사로 둬야 했던 과장들은 은근히 부장을 무시하고 보고를 누락하며 저항했다. 화가 난 여성 부장은 남성 과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가장 심한 과장의 뺨을 때렸다. 남성 과장들은 자연스레 제압당했지만 뒷맛이 씁쓸한 장면이다. 여성 부장이 마치 남성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현재 우리의 사회가 남성 위주의 차별적인 사회이기도 하지만, 여성 위주의 역차별 사회이기도 하다고 진단했다. 마치 풍선 효과처럼 차별과 역차별이 뒤섞여 있는 것이다. 이렇게 바라보는 관점이 흥미로웠다.


한 학생이 '유교사회의 잔재'라는 말을 했을 때 이를 좀 구체화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 때 부엌에서 벌어지는 풍경과 TV가 있는 안방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보라고. 이것이 근원적인 차별이며, 유교문화의 잔재일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남자들이 명절 때 부엌에서 '일'을 하고, 여성들이 좀 쉬면서 TV를 보고,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를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한다면? 근원적인 차별이 조금씩 해소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비췄다.


이 이야기 끝에 나온 학생의 결론이 바로 맨 처음 소개한 이야기다. 근원적 차별에 대한 설명이 조금 부족해 보였지만, 아이들은 명절 때마다 부엌 풍경을 생각하면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명절 풍경 외에 또 다른 근원적 차별에 대해서 생각할 것이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이런 대화가 생각을 정리하고 명쾌한 언어로 재구성되는 모습을 보니 가슴에 벅찬 감동이 밀려와 글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아쉬운 것은 다음 주가 이번 학기 마지막 수업이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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