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에서 길어올린 질문들
아이, 가족과의 행복은 자동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특히 아이와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부모의 사고를 지배하는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합니다.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쓰면서 했던 질문들을 공유합니다.
육아는 관념이 아닌데, 부모는 관념에 의존하며 아이를 키웁니다. 그것마저도 그럿된 관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릇된 관념을 건드려주지 않으면 아이와 제대로 된 관계를 만들지 못합니다. -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서문
인간은 사회와 시대의 지배를 받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죠. 하지만 아이는 상식 너머에 있습니다. 인문고전의 저자들과 현자들 역시 상식 너머에 있습니다. 부모가 현자가 되기는 어렵지만, 그릇된 관념의 구름에서 빠져나오고 고정관념과 상식의 틈바구니를 뚫고 나가야 아이와 만날 수 있습니다. 일단 관념을 내려놓고 아이를 바라보세요.
아이가 어릴 때는 아버지가 잘못해도 가만히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조금 더 자라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되면, 아이는 아버지의 잘못에 대해서 무섭게 심판합니다. 아이에게 심판당하지 않을 아버지가 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 같은 책, 「좋은 아빠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이의 직관이란 무서운 겁니다. 부모가 서로 싸우거나, 폭력적인 말을 하거나, 잘못된 습관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잘못된 점을 마치 하느님처럼 직시하죠. 다만 언어로 표현하지만 못할 뿐입니다. 동양철학에서 쓰는 용어인 '신독'(愼獨)을 해야 합니다. 혼자 있을 때 스스로를 경계하거나 자기만 알고 남은 모르는 일이라도 경계하라는 금언이죠. 아이가 모른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아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받는 사람은 그것이 관심인지 간섭인지 잘 알지만, 하는 사람은 구분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에게 관심을 가지려는 아버지의 순정이 가족에게는 간섭으로 느껴진다면 어느 누가 기쁠 수가 있겠습니까? 가족에게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마음이 강하면 가족들이 괴롭습니다.
- 같은 책, 「아빠의 무관심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요?」
남들은 다 아는 걸 혼자 모르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특히 아이와 아내와 소통에 소홀한 남편들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것을 혼자 결정해서 일방적으로 해버릴 때가 많죠. 받는 사람의 표정을 유심히 봐야 합니다. 이게 간섭인지 관심인지는 조금만 살펴봐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사회인으로서 필요한 덕목과 타고난 개인의 자질을 혼동하면 안 됩니다. 지나치게 계산하려 한다든가 타인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은 다듬어야겠지만 성격이 급하다든가, 까다롭다든가, 소심하다든가 하는 성정은 비판하지 말고 승화시킬 수 있도록 다듬어줘야 합니다.
- 같은 책,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게 있지 않을까요?」
아이는 집에서 키워서 사회로 보내야 하므로 사회생활을 위해 공통적으로 배워야 할 게 있습니다. 썼던 물건을 제자리에 놓는 습관이라든지, 인사를 하는 습관, 무례하게 굴지 않는 것 등등. 하지만 부모 스스로가 불편하거나 마음에 안 드는 아이의 고유한 자질을 고치려고 무리수를 두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사람의 성격은 운명이라는 고대의 금언처럼 부모 마음에 안 드는 아이의 자질을 고치려 하다가는 아이의 성격 자체가 왜곡될 수 있습니다. 불행한 일이죠.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말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부모들은 어떻습니까? 부모 역시 인간이기에 불완전할 수밖에 없을 텐데 완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적지 않습니다.
- 같은 책,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게 있지 않을까요?」
아이 앞에서 완벽한 부모여야 한다는 환상은 어떻게 깰 수 있을까요?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은 아이 앞에서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아이가 물었을 때 모른다고 하면 왠지 안 될 것 같은 느낌은 누구에게나 있죠. 아이 앞에서 정직하기란 쉽지 않지만, 아이 앞에서 정직하지 않는다면 아이가 어디서 정직을 배울 수 있을까요? 완전하려고 집착하는 부모 밑에서 아이는 정직해질 수 없습니다.
부정적인 표현을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꾸려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각하지 마라"를 "오늘 밤은 30분만 일찍 자고, 내일 입을 옷을 미리 꺼내놓고, 아침에 뭘 먹을지 지금 정하자"로 바꾸는 거죠. 잠자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저녁에 낭비되는 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말로 부정하기는 쉬워도 행동으로 긍정하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 같은 책, 「아이의 감정적 고통을 어떻게 줄여줘야 하나요?」
왜 아이가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할까 자세히 관찰한 적이 있습니다. 부모에게 영향받은 것도 있고, 자연적인 것도 있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자꾸 늘어납니다. 이것을 긍정적으로 만들려면 연습이 필요한데, 이때 부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상상력을 발휘해서 부정적인 상황과 생각들을 아이가 스스로 긍정적으로 전환하고 배움으로 승화시킬 수는 없죠.
우리는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왜 아이에 대해서는 부모 스스로와의 싸움이 되지 않고 '아이와의 싸움'이 될까요? 아이가 있다고 해서 자기와의 싸움이 멈추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죠. 자기 스스로를 충분히 존중하는 부모와 자신의 감정 문제를 아이에게 옮기지 않는 부모는 아이를 존중하는 데에 탁월합니다. 결국 남는 문제는 부모 자신입니다.
- 같은 책, 「아이를 존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아이에게는 더욱 그렇죠. 일관성과 정직성은 동전의 양면 같습니다. 만약 부모가 다른 곳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자기에게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아이는 가장 먼저 위선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부모의 위선, 일관되지 않음이 위험한 까닭은 아이가 그것을 옳다고 생각하고 배우려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아이 때문에 인생을 희생한다'는 어른들의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기 인생을 희생해서 아이를 키운다는 사실이 아이에게 반가운 소식일까요? 부모의 존재가 없어지는데도 말입니다. 자기 존재를 잃어버리면 아이의 존재도 점점 사라집니다. 아이를 위해서 자기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는 것은 아이와 '의존 관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부모가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선택을 존중할 때 아이도 자기 존재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 같은 책, 「아이를 존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 부모 세대가 어렸을 적에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은 말, 눈을 뜨면 봐야 했던 모습은 부모님의 희생입니다. 부모의 희생에 대해서 고마움을 느끼기보다는 당연시하거나 억압처럼 느꼈죠. 조용히 의존과 결핍을 배웠다는 건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큰 선물은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람, 다른 것을 끊이없이 이용하지 않고서도 살 수 있는 힘입니다. A.매슬로는 '자기실현자'라고 불렀고, 동양에서는 이를 '선비'라고 불렀죠. 나와 연결된 모든 거추장스러운 의존관계를 청산하십시오. 아이를 위해서.
아이들의 사랑, 순수하고 아름답게 꽃핀 감정을 억제하는 어른들의 오랜 관습은 여전히 완강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사랑을 억제하니 숨어서 연애하고, 음란물 단속을 철저히 하니 야동이 들끓고, 성교육을 억압적으로 하니 더욱 문란해집니다. '프리섹스'의 나라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네덜란드는 이 이치를 잘 알기에 '청소년 등급제' 같은 영상물 등급은 없고 폭력성만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습니다.
- 같은 책, 「아이가 사랑에 빠졌나봐요」
네덜란드가 개방적인 성 문화와 정책을 하는 이유는 다른 선진국들과의 성 범죄 비교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저도 어릴 적 어머니께서 만화책을 보는 족족 숨겨주시는 바람에 지금까지 만화책 마니아로 살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거꾸로 하게 하는 방법이고, 이것을 강하게 하면 저항도 커집니다. 사랑 만큼은 아이들이 어른보다 낫다고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내 아이가 그럴 리 없어'라는 믿음을 내면화한 부모 못지 않게 위험한 부모는 아이의 비행 자체를 죄악시하면서 제재를 가하는 분들입니다. 부모가 원인임을 부정하려 하거나 아주 일부의 원인만 인정하는 경우죠. 저는 솔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건의 명백한 원인을 없애거나 희석해버리면 그 문제를 해결할 기회 자체를 스스로 차버리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 같은 책, 「우리 아이가 나쁜 아이는 아닐까요?」
아이가 문구점에서 물건을 훔쳤을 때 '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경찰서에 보내주세요'라고 말하거나 같이 훔친 친구와 놀지 못하도록 하거나, 다시는 훔칠 생각이 나지 않도록 제대로 혼내겠다는 부모님을 보면 제가 상처를 받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거든요. 《들키고 싶은 비밀》의 황선미 작가는 '너는 엄마한테 뭘 훔치고 싶었을까?'라고 물었죠. 저는 이것이 성숙한 부모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삶은 아이의 삶이고 부모의 삶은 부모의 삶입니다. "부모가 자식 인생 대신 살아줄 거냐?"라는 말을 곧잘 하지만 실제로 부모가 자식 인생을 대신 살아버리는 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아이는 가고 싶은 학교가 명확히 있었고 뜻이 확고했습니다. 매우 건강하고 칭찬받아 마땅할 아이인데 삶이 왜곡돼버렸습니다.
- 같은 책, 「아이의 뜻을 꺾지 않고 거절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부모가 기다려주고 선을 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인생에는 연습이 없잖아요. 어린 인생이든 늙은 인생이든. 부모는 겸손해야 합니다. 30년 전에 펼쳐졌던 방식을 고수하기에 세상은 너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아이가 더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이의 선택으로 인해서 우려되는 결과를 알려줄 수는 있겠죠. 아이는 부모의 우려를 진지하게 듣고 대응법을 고민할 것입니다. 제발 아이의 인생을 엉뚱한 방향으로 굴절시키는 불행을 자초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많은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남들만큼만 했으면, 하고 바랍니다. 학교 성적도 남들만큼만 했으면 좋겠고, 한글 떼기와 구구단도 남들 정도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내 아이의 '특별함'을 사라지게 하는 주문입니다.
- 같은 책, 「우리 아이가 존재감이 없대요」
다른 아이와 우리 아이를 비교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아이에 대해서 점점 집중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른 아이보다 한글을 더 늦게 떼거나, 심지어 배변이 늦거나, 구구단을 늦게 외면 속상하죠. 왜 안 그렇겠어요. 하지만 그건 아이가 못한다기보다는 아이만의 장점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합니다. 누구나 잘 하는 것을 잘하기보다는 아이만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게 더욱 소중합니다.
※ 위 책들은 저의 졸고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의 내용에서 뽑아낸 것입니다. 난감하고 어렵더라도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하려고 노력해보세요. 아이의 눈빛이 달라질 것입니다. 더 많은 질문은 책의 내용을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