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의 문턱을 넘는 원고를 생산하는 방법
요즘 저자 열풍이라는 현상이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책을 쓰고 싶어하죠. 하지만 요즘은 실제로 자기 책을 쓰기 위해서 비용과 시간을 들이고 있습니다. 출판계에서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 처음에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이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글쓰기 연구소' 같은 곳에서 비싼 돈을 받고 강의를 내주면서 실제로는 책을 내고 독자의 사랑을 받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현상을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현상의 실체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책을 쓸 열망이 강한 아줌마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저자 열풍이 제주도에까지 불어왔다면 마땅히 예비 저자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 것이고, 그분들의 꿈을 현실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명한 출판사의 편집주간인 선배에게 저자 열풍에 대한 걱정스런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시즌만 되면 모든 출판사에게 출간 요청 메일이 와. 하지만 반려율이 100%지. 무슨무슨 글쓰기 연구소 졸업에 맞춰서 보내는 것 같은데 자기 원고와 비슷한 성격의 출판사를 찾아보지도 않고 막무가내 보내는 것 같아.
SNS가 일반화되면서 대중들이 '쓰기'에 대한 욕구가 커졌습니다. 몇 년 정도 블로그를 한 사람은 책을 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게 당연하죠. 네이버에서 글쓰기 강의를 누르면 엄청나게 많은 광고가 달려 있습니다. 글쓰기 책도 많이 나왔습니다. <대통령의 글쓰기>,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글쓰기의 최전선> 등 헤아리기 힘든 정도입니다.
한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글쓰기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도서관 독서회의 아주머니들이 오랫동안 요청한 모양입니다. 아주머니들과 시와 산문, 비판적인 글쓰기, 취재해서 글쓰기, 자료 조사해서 쓰기 등 다양한 글을 나누었습니다. 특히 감정이 잔뜩 담긴 시와 산문을 나눌 때는 눈물도 많이 쏟았습니다. 수업이 거듭되자 아주머니들이 내심을 털어놓습니다.
어떻게 하면 책을 낼 수 있나요?
두 권의 책을 냈다는 사실을 알기에 꺼낸 질문이었습니다. 경험했던 이야기를 성심성의껏 답변해드렸더니 질문이 이어집니다. 출판사에 원고를 다 보내야 하는지, 기획안은 어떻게 쓰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책이 완성되는지, 인세 규모는 어떻게 되는지 등등 거침이 없습니다. 저는 대답 대신에 거꾸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자신의 원고가 출판사 문턱을 넘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책을 내고 싶다"는 욕구 안에는 담겨 있지 않은 숨은 질문이 바로 출판사와 편집자에 관한 것입니다. A라는 사람이 자신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지만 번번이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A는 화도 나고 주눅도 들었지만 책을 내고 싶은 욕심이 커서 다른 방법을 알아보던 중 '자비출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비용을 내서 자비출판을 했습니다. 인쇄소를 통해서 나온 따끈따끈한 책을 보면서 A는 자신감을 회복했죠. 자신의 지인이나 가족, 친척들에게 책을 나눠주면서 자족감은 느끼겠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작가로서만 스스로를 생각하다가 독자로서 처음으로 자신의 작품을 봤을 때의 '을씨년스러움'을 느껴본 적 있나요? 그래서 저는 책을 쓰고 싶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일단 출판사의 문턱을 넘으라고 조언합니다. 출판사와 편집자를 넘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이 있고, 출판사를 통해서 출간된 책은 최소한의 상품성을 인정받기에 '독자'와의 만남이 성사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책을 쓰고 싶다는 최초의 욕구와 부합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책을 내기까지 수십 개의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고 영원한 침묵 같은 무응답에 치를 떨었습니다. 여러 번 원고와 기획안을 다듬으면서 출판사의 무응답이 어떤 뜻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깜'도 되지 못하는 원고와 기획안에 대해서는 출판사에서 답변을 하지 않는 모종의 묵계가 있는 듯합니다. 또는 "우리 출판사에 원고를 기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원고와 우리 출판사의 성격이 맞지 않는 것 같아 아쉽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원고의 성격에 맞는 좋은 출판사를 만나시기를 기원합니다." 같은 메일을 받을 것입니다. 솔직히 무응답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사무적인 응답메일이지만, 원고의 질을 높여야겠다는 동기가 생기더군요. 원고의 완성도가 책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출판사의 반응이 달라집니다. 장문의 거절 메일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출판사가 솔직히 원고의 문제점을 말할 때는 가슴아프더라도 기뻐할 일인 것은 분명합니다. 자신의 원고가 성장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거절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는 말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길 때입니다.
많은 작가들이 이런 과정을 통해서 출판에 도달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원고와 기획안 같은 실무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출판사의 높은 벽 앞에서 좌절할 때 나에게 위안을 주었던 것은 파스칼의 두 마디 말이었습니다.
나의 저작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의 저작에는 이미 많은 사람의 저작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저작''이라고 해야 한다.
자연은 서로 모방한다. 좋은 땅에 던져진 씨앗이 열매를 맺고 좋은 정신 속에 던져진 원리가 결실을 맺는다.
- 파스칼 《팡세》
많은 작가들이 이런 과정을 통해서 출판에 도달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원고와 기획안 같은 실무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출판사의 높은 벽 앞에서 좌절할 때 나에게 위안을 주었던 것은 파스칼의 두 마디 말이었습니다.
파스칼의 원리에 철저히 입각해 쓴 책이 바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입니다. 누구나 가치 있는 경험은 있을 것입니다. 가치 있는 경험이 책에 담길 때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치 있는 경험으로만은 부족합니다. 문장이라는 제대로 된 그릇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메모 읽기와 좋은 문장 채집에 매달린 것도 좋은 그릇을 가지기 위해서입니다.
책을 읽으며 좋은 문장과 좋은 정신을 종이에 베끼고, 잊지 않기 위해서 엑셀에 입력하고, 출력해서 다시 보는 이유는 문장을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문체를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이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입니다. 많은 문장들로 자극을 시켜야 나만의 문장이 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우리의 문장'이 될 수 있습니다. 파스칼의 말처럼 수많은 모방이 좋은 책을 낳습니다. 나의 책이 아니라 우리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맨 처음에 했던 질문 "자기 책을 내는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모방을 하는 사람은 압니다. 자신의 문장이 어느 정도 성장했고, 책을 내는 확률이 어느 정도 높아졌는지. 만약 출판사에 여러 번 투고를 했는데 전혀 반응이 없다면 좋은 문장 모방하기와 데이터 독서를 권하고 싶습니다.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에는 인문고전의 수많은 문장들이 등장합니다. 그 문장을 닮기 위해서 베껴 적었던 오랜 시간이 있습니다. 거기에 나의 가치 있는 경험이 담겨서 어울렸고, 발효가 되어서 '우리의 문장'과 '우리의 책'이 탄생한 것입니다. 좋은 책을 남겼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붙잡고 물어보십시오. 모방을 했느냐고? 아마 채을 쓰고자 했던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모방을 했을 것입니다.
저는 엑셀에 독서 메모 내용을 입력하는 방법을 '데이터 독서'라고 명명했습니다. 독서 경험을 데이터로 전환해서 필요할 때마다 문장을 검색해서 호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검색 기능보다는 '문장'에 중점을 두었기에 데이터 독서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겠습니다.
※ 얼마 전 썼던 <20년 동안 했던 독서법을 소개합니다>라는 글에는 제가 했던 메모 독서의 3단계(베껴쓰기-엑셀입력-출력해서 다시보기)를 다뤘습니다. 엑셀에 하는 데이터 독서에 관심이 있거나, 샘플파일을 받고 싶은 분들은 댓글에 메일 주소를 입력해 주세요. 또는 dajak97@hanmail.net 이메일로 문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