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우리 몸의 기관이 느끼고 있는 감각을 신뢰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가령 시각만 놓고 봐도 잘못 보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일 테다. 흔히 착시라고 일컫는 경우다. 제주도에 있는 그 유명한 도깨비길도 눈에 보이는 대로의 오르막길이 아닌 실제로는 내리막길이라는 건 이미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나마 이건 있는 것을 보고 느낀 것이니 그나마 낫다. 아예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게 되는 환시의 영역으로 들어선다면 이 놈의 감각이란 건 더더욱 믿을 수 없는 건가 싶을 정도이다.
퇴근길에 학교 앞의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직선 내리막길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이 길은 분명 현실 그대로의 길이니 내 시각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진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내 눈을 의심하게 한 건 내리막길로 막 첫걸음을 내딛던 순간이었다. 너무도 찬란하다, 황홀하다,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 같다 따위의 그 어떤 말을 갖다 대도 설명이 부족할 장면을 보고 말았다. 뭐 그렇다고 해서 도무지 보기 힘든 진풍경이 펼쳐진 것도 아니었다.
하늘에선 여전히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는 가운데 그 앞을 몇 조각의 구름이 가리고 섰다. 해를 품은 구름이라고 표현하면 딱 알맞은 그런 장면이었다. 구름 틈새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햇빛, 구름의 가장자리에서 햇빛은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사실 1년에 두세 번은 보는 장면이다. 그때마다 천지가 처음 만들어질 때 아마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탄성을 짓게 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저 쏟아지는 커튼처럼 드리워진 햇빛의 끝자락을 타고 그 어떤 절대자가 하늘에서 강림할 것 같았다.
오죽했으면 내 눈을 믿지 못해 휴대전화의 카메라 속에 담아 보았을까? 보자마자 금세 사라질 장면은 아닐 테지만, 왜관역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하기 전에 사진을 찍어야 했다. 사진엔 문외한이라 어떤 구도로 찍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마치 카메라를 처음 만져보는 사람처럼 카메라 앱을 열어 무조건 허공에 들이밀었다. 셔터를 누르기 전에 약간의 설렘이 느껴졌다. 직접 눈으로 보기만 해도 이렇게 멋진 풍광인데 고화질 카메라에 담으면 얼마나 환상적인 사진이 나올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잠시 숨을 참은 뒤에 몇 장을 연거푸 찍었다. 일단 확인은 이따 하기로 하고, 한쪽 눈으로는 언덕 아래쪽에서 버스가 올라오는지 살펴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껏 달아오른 지열 때문인지 10초 남짓한 시간을 서 있기가 괴로웠다. 구름 속에 숨어 있어서 산란의 흔적으로만 느껴질 법한 햇빛은 여전히 그 기세를 떨치고 있었다. 내 나름으로는 구도를 잡아 연신 셔터를 눌러댔지만, 내리쬐는 따가운 햇빛 때문에 고개조차 들기 어려웠다.
이내 버스가 들어와 무사히 올라탔다. 교통카드를 찍은 뒤에 에어컨의 바람을 느끼며 빈 좌석에 앉았다. 1시간 10분 정도의 노선인 이 버스는 남은 15분만 달리면 되니, 내가 탈 때쯤엔 늘 빈자리가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카메라 앱을 열었다. 내 사진 촬영 기술로는 환상적인 샷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테지만, 웬만하면 카카오톡 프로필의 배경 사진으로 써도 좋을 것 같았다.
휴대전화 사진이야 늘 찍곤 했다. 다만 사진을 확인한 뒤에 확실히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초정밀기술이 구현된 카메라 렌즈보다도 사람의 눈이 더 빛에, 혹은 색깔에 예민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 멋진 장면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에 얼른 카메라에 담았는데도, 육안으로 본 그 풍광이 내겐 더 아름다웠다. 감각이 사람을 속이기도 하고 감각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할 때도 있지만, 적어도 오늘 본 모습에 대해선 내 눈이 훨씬 더 정밀함을 자랑했다.
이제는 내 감각을 조금은 더 신뢰해도 좋을 것 같다.
사진 출처: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