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일 차
글을 쓴다는 것은 사실 힘겨운 과정이긴 한 것 같다. 그냥 앉은자리에서 말로 하면 쉬울 것 같은 얘기를 막상 글로 표현하려면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리라. 그건 아마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 일일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따지지 않아도 되지만, 글로 쓰려면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글자를 맞게 썼는지 우선 점검해야 하고, 띄어쓰기도 살펴봐야 한다. 또 적지 않은 경우에 내가 쓴 문장이 흔히 말하는 비문인지 아닌지도 따져봐야 한다.
말로 하면 채 10분도 안 걸릴 내용을, 글로 적을 때 적게는 30분 정도 소요되는 것은 기본이다. 심지어 한두 시간 이상 걸릴 수도 있고 심할 때에는 쓰다가 중간에 포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만, 생각의 단계에서 머물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는지도 모른다. 주변 사람들 중 몇몇은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보며 무척 신기해한다. 아니 뭘 그렇게 쓸 거리가 많은지 의아해한다. 자신 또한 그러고 싶은데 막상 글을 쓰려고 시도해 보니 생각만큼 잘 안 되더라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종종 어떻게 매일 그렇게 글을 쓰느냐고 묻곤 한다.
얼핏 누가 보면 매일 일정량의 글을 쓰는 내게 뭔가 특별한 비책이라도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무엇을 하든지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어쨌거나 나는 무조건 달려들고 본다. 망설인다고 해서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일단은 노트북이나 휴대전화부터 펼쳐 뭐라도 쓰기 시작한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던가? 방금 전까지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글쓰기 앱을 열어 제목부터 입력하거나 최초의 한 문장을 입력해 놓으면 어느새 한 편의 글을 쓰게 되더라는 것이다.
글을 쓰는 데 있어서 두려움이 없느냐고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나라고 해서 왜 그런 생각이 없을까? 어쩌면 글을 쓰지 않는 사람보다 나처럼 다작을 선호하는 사람이 글쓰기에 대한 반감이나 두려움이 더 큰 법이다. 다만 가능하다면 그걸 표면화시키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다. 왜냐하면 깊이 생각할수록 그 끝도 없는 데다 생각의 결론이 어떤 식으로 나든 내 '글쓰기'에 조금도 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 하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글을 쓰려면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부터 없애야 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 아무리 좋은 글감이나 표현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글로 표현되어 나오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표현력이 부족하고 별로 읽을거리가 없는 글이라도 어떤 형태로든 매일 일정한 분량의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글쓰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 글쓰기에 대한 내 솔직한 생각이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글을 써도 좋은 점은, 글이 어지간히 이상해도 대놓고 '네가 쓴 글 정말 별로다. 도저히 못 읽어주겠다'는 솔직한 평을 해주는 사람은 없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건 내가 제일 먼저 아는 법이다. 그다지 가독성이 뛰어난 것도 아닌 데다 참신하다거나 재미있거나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을 뭉뚱그렸을 때 글쓰기라는 건 그저 하나의 큰 두려움으로 포장이 되어 나타나게 된다는 걸 알 수 있을 뿐이다. 물론 그런 두려움은 우리가 글을 쓰지 못하게 방해하는 가장 큰 공신일 테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한 편의 글을 쓰고 싶다면, 매일 한 편 이상의 글을 쓰고 싶다면,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부터 떨쳐내야 한다. 가수에게 요구되는 최고의 자질이 가창력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나, 너무 여기에만 집착하면 흔히 말하는 '가왕'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가수들은 그 누구도 노래해선 안 되는 이치와 같은 셈이다. 다소 밋밋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써 놓은 단 한 줄의 글만 읽어도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글을 쓰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 나름의 차이를 인정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의 역량 내에서 자신이 쓸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이 글을 처음 쓸 때 아무것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글을 쓰겠다고 그냥 자리에 앉았으니 제목부터 '그냥 글쓰기'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새 중간쯤 쓰다 보니 글의 방향성이 정해졌다. 얼른 맨 위로 올라가 '글을 쓴다는 두려움부터 떨쳐야……'로 제목을 바꿨다. 나는 이런 과정을 밟아가는 것이 바로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부터 떨쳐낸다면, 정말 좋은 글, 정말 멋진 글을 완성하지 못하더라도 나처럼 한 편의 글을 맺는 데에는 아무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한 편의 글을 쓰고 싶은가? 우선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부터 떨쳐내야 할 것이다. 만약 그것만 된다면 노트북의 키보드나 휴대전화의 키패드에 손을 올려놓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날아다니고 있는 자신의 손을 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