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by 다작이

나는 잠이 잘 오지 않으면 유튜브에서 동영상 강의를 재생해 놓고 잠에 드는 버릇이 있다. 물론 가끔은 그 강의가 너무 재미있어서 더 늦게 잠이 들어 다음 날 고생할 때도 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대체로는 그런 강의를 듣다 보면 쉽게 잠에 들곤 한다. 그런데 문제는 얼마 전에 듣게 된 한 동영상 강의에서 잠이 확 깨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강연자가 요즘의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물론 얼마나 공신력 있는 내용인지는 알 수 없다. 적어도 그의 말만 믿고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자신의 이름을 걸고 그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강연한 것이니 사실이 아닌 내용을 다루지는 않았을 거라고 본다. 어쨌거나 글의 전달 효과를 위해 그 부분을 직접 여기에 옮겨 보려 한다.


강연자가 말한 내용은 어떤 설문 조사에 관련한 것이었다. 한 명문대학 신입생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세 차례 실시했다고 한다. 여러분의 부모님이 몇 살까지 사셨으면 좋겠느냐,라는 질문이었는데, 10년 전에 한 번, 5년 전에 또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똑같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어떤 대답을 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안 그래도 저마다 백세 시대라 떠들어대는 세상이라 수명에 대한 기대치도 그만큼 높아지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말이다.


첫 번째로 10년 전에 실시한 설문에 대한 결과다.

질문: 여러분의 부모님은 몇 살까지 사셨으면 좋겠습니까?
답변: 65세요.


65세라는 뜻밖의 답변에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같은 내용을 글로 봤다면 숫자 8을 6으로 잘못 본 게 아닌가 싶겠지만, 분명 내 귀는 꽤 선명하게 들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앞으로 돌아가 다시 들었다. 틀림없었다. 65세였다. 명문대생들이 자신의 부모가 65세까지만 살다 갔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다. 65세, 요즘 같으면 한창 팔팔할 때가 아니던가? 게다가 직종마다 다르겠지만, 직장에서 갓 정년퇴직하고 제2의 인생을 계획하거나 실행 중인 때가 아닌가?


어쩌면 그럴 수 있지, 하는 생각과 함께 자연스레 다음의 답변이 궁금해졌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이 가긴 했다. 결코 부모에 대한 자식들의 기대 수명이 늘어나지는 않을 거라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뒤를 이은 두 답변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하다 못해 내 자식들이 명문대생들이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였다.


질문: 여러분의 부모님은 몇 살까지 사셨으면 좋겠습니까?
답변: 63세요.
질문: 여러분의 부모님은 몇 살까지 사셨으면 좋겠습니까?
답변: 60세요.


답변 자체가 상당히 놀랍다. 어쩌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자체가 더 충격적이었다. 60세면 쎄가 빠지게 돈만 벌다 곱게 가라는 뜻이 아닌가 싶었다. 최소한 그들에게 부모의 인생 2막 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 그들의 답변대로 한다면 나는 이제 6년만 살다 가면 된다는 뜻이었다. 이 얘기를 아들에게 했더니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갖춰놓은 뒤에 손도 대지 말고 가라는 의미로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과연 그렇게 싹수머리 없이 대답하는 그 명문대가 어디냐며 누군가는 따져 묻고 싶은 마음도 들지 모르겠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닐 테다. 특정한 한 학교를 상대로 조사한 설문이다 보니 과연 얼마나 신뢰성이 있느냐를 따지고 싶겠지만, 전체적인 생각이 반영된 것은 아니라고 해도 시대의 변화에 따른 어느 정도는 객관적인 생각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한 1~2년 전 지하철 안에서 연로한 사람 몇 명이, 그들을 함부로 대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너희들은 나중에 나이 안 드는 줄 아느냐?'라며 항변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들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했다. '우리도 나이 들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나이 들어도 그렇게 행동 안 할 겁니다. 나이 드셨으면 나이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이다. 물론 그때 그 상황은 누가 봐도 어르신들이 잘못한 경우라서 그 젊은이들을 크게 나무랄 수 없는 상황이긴 했다. 그래도 참 씁쓸한 상황이었다. 그 말은 어쩌면 이제 오십 대 중반을 달려가고 있는 내게 한 말이나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아무리 백세 시대 어쩌고 저쩌고 해도 정말이지 자식에게서 혹은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나이 든 사람들이 이런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게 된다면 그 많은 잔여 수명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말이 당연시되는 사회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 각자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나 싶다. 나이에 걸맞은 행동과 말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소양을 기를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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