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지하철을 타고 이동 중이다. 꼭 가야 하는 행선지는 없다. 그곳이 어디가 됐든 글을 쓸 수 있는 곳이면 된다.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 시원한 집에서 글을 쓰면 되지 않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글쎄, 길을 잘못 들인 탓인지 집에서는 뭔가를 하려고 해도 여의치가 않다. 시원하다는 것만 빼면 그 어떤 조건도 결코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막 한 역에 정차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여자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시쳇말로 한 번 봤다가 다시 쳐다볼 정도로 미모가 출중한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도무지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녀가 착용하고 있던 레깅스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가장 적나라하게 보이는 색상에 그것 외엔 아래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 보고 있으려니 몹시 불편했다.
그러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기 전에 얼른 시선을 돌려야 했다. 시선 강간이라는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어떤 옷을 입든 그건 개인의 자유지만, 대놓고 쳐다보는 건 범죄가 되는 세상이니 말이다. 누구의 입장이 옳고 말고를 따질 계제가 아닌 것이다.
사실 이미 이 레깅스에 대한 논란은 과거에 수 차례 있었다. 내가 왜 논란이라고 표현했는지 알 것이다. 물론 그 논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아무리 떠들어대 봤자 이 문제는 결론이 없는지도 모른다. 개인의 자유냐 민폐냐를 판가름 내기 전에 '범죄'의 개념이 들어서고 만 것이다.
그런 민망한 옷을 착용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무슨 법에 저촉되는 것도 아니다. 개인의 자유에 따라 입은 것이니 나무랄 수도 없다. 보는 사람의 입장도 있으니 어지간하면 공공연하게 입지 않는 게 좋지 않냐고 하겠지만, 그건 그들에게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 레깅스를 입었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무슨 피해를 주느냐며 따지고 든다면 대항할 마땅한 말도 없다. 즉 논리적으로 보더라도 레깅스를 입는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레깅스를 입고 다니는 현상에 대해 보기 민망하다, 불편하다, 혹은 너무 야하다는 식으로 그나마 몰고 가려고 해도, 그들의 차림이 공연음란죄에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아무리 살펴봐도 어떤 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 단정한 옷차림이 아니지 않냐는 이유로 혹은 사회 통념상 일반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지적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이런 지적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적어도 지금의 시류로 봐선 지적한 사람이 난처해지고 말게 된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레깅스를 입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미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곤 한다. 간혹 입고 싶어도 일반적으로는 입을 일이 없는 나 같은 남자들이나, 체형의 문제로 입을 수 없는 사람들이 봤을 때엔 보기가 가히 나쁘다고만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밖에서 레깅스를 입고 다니는 게 타인에게 민폐가 되는 행위일 수도 있다는 점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참, 쉽지 않은 문제라며 누군가에게 말했더니 아주 쉬운 해결책을 내게 제시했다. 전혀 어려운 게 아니라고 했다. 그냥 안 보면 된다고 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괜한 시비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시선 처리는 특히 조심하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는 일단 법에 저촉되는 게 아니라면 이미 이 문제는 우리 손을 떠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굳이 이에 대해 그 어떤 가치 판단도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민폐냐 아니냐를 따지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