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직장 동료들과 외부의 한 카페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동료 직원은 물론 관리자들도 동석하는 관계로 그리 편하지는 않은 자리였다. 그래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직장이 아닌 바깥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우선은 좋았고, 그런 분위기가 조금은 더 편안한 자리를 만드는 데에 일조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바로 간담회 장소와 관련하여 일어났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하등의 문제가 없었다. 안 그래도 시대에 뒤처진 채 산다는 내가 문제였다.
우리가 모인 곳은 그다지 유명하지는 않은 한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 매장이었다. 당연히 커피는 기본이고 여러 가지 빵 종류나 조각 케이크 등을 팔고 있었다. 심지어 먹어보진 않았지만, 그곳은 간단한 식사도 가능한 곳인 듯했다. 어쨌거나 다 모이고 보니 하필이면 내가 나이가 제일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야 한다,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테다. 그런 관계로 나는 그런 자리에 가면 자동적으로 말 수를 줄이게 된다. 어딜 가서든 말을 많이 해서 득이 된 경우는 없는 데다, 나이가 들어 아무 말이나 내뱉고는 사람들의 공감을 요구하는 것만큼 추한 일은 없다. 가만히만 있어도 본전은 차릴 수 있다는 말은 진리 중의 진리였다.
자, 그런데 문제는 메뉴를 시키는 시점에서 발생하고 말았다. 직장 동료들이 친절하게도 내게 물었다.
"뭐 드시겠어요?"
"네, 저는 바닐라 라떼 따뜻한 것 마시겠습니다."
자신 있게 아는 것 정도가 바닐라 라떼,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카라멜 마키아또, 돌체 라떼 정도이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여기까지는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저마다 마실 음료를 고르더니 다시 나에게 화살이 돌아왔다.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간담회 예산이 꽤 남았네요. 디저트로는 뭘 드시겠어요?"
"디저트요? 음, 저는 그냥 빵 종류면 됩니다만……."
평소에도 무척 저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는 동료 중 한 명이 싱긋 웃으며 메뉴판에 있는 몇 가지를 읊어댔다.
"빵 종류도 무척 많아요. 약과 휘낭시에, 플레인 베이글, 허니 버터 브레드……."
그 외에도 몇 가지를 줄줄 불러주는데, 솔직히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휘낭시에가 어떻게 생겨먹은 빵인지, 플레인은 대충 알겠는데 베이글은 또 뭔지, 달콤한 꿀을 바른 게 허니 버터 브레드가 맞는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마도 내가 약간 난감한 표정을 지은 모양이었다. 그 동료 직원이 다시 한번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저희가 시키는 거 같이 드세요. 맛있는 거 시킬게요."
생각해 보면 그게 뭐 그다지 부끄러운 일도 아닐 수 있다. 또 사실 그녀가 읊어대는 그 많은 메뉴들을 일일이 내가 다 알아야만 하는 것도 아닐 테다. 그런데도 순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내가 있으면 안 되는 자리에 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맨 끝쪽 테이블에 앉은 고작 나보다 다섯 살 정도 적은 남자 직원은 메뉴를 훤히 꿰고 주문을 받고 있는 지경인데, 나는 본의 아니게 뒷방 늙은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이제 50대 중반인 나도 나이가 그렇게 많다고는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더 그런 기분에 사로잡힌 것 같기도 했다. 참 우스운 사실은 그렇게 시켜서 나온 메뉴가 하나같이 맛있다는 것이었다. 뭐랄까,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이 세상 맛이 아니었다.
'다음에 또 이런 데 오면 이거 다시 한번 시켜 먹어봐야겠다.'
나름 다짐 아닌 다짐을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그 메뉴의 이름을 그때까지 외우고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간담회를 마치고 집에 와서 아내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어디 가서 제발 늙은 티 좀 내지 마라."
"그렇다고 뭘 그렇게까지 얘기하니?"
"요즘 같은 세상에 니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그 정도는 다 안다."
"모를 수도 있지!"
"어떻게 모를 수가 있니? 사람들하고 대화는 되더나?"
아내는 세상과는 단절된 듯 살아가는 내 태도는 어디까지나 내가 선택한 길이니 그냥 운명처럼 받아들이라고 했다. 꼭 유행이나 트렌드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나름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에 미리 가치가 없다고 단정을 지은 내 잘못이라는 것이다. 굳이 지금에 와 뭔가를 더 알려고 들지 말라고 했다. 그러니 어딜 가면 툭하면 카라멜 마키아또나 마시지, 하는 아내에게 요즘은 바닐라 라떼도 마신다는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정말이지 그런 자리는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