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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자득의 경지

75일 차

by 다작이

내게는 존경하는 은사님이 한 분 있다. 그분은 아동문학을 가르치는 분이다. 글을 자주 쓰실 뿐만 아니라 출간된 책만 해도 족히 열댓 권이 넘는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은사님이라고 칭하기도 조금은 애매한 분이다. 대체로 '은사'라는 말을 사용하려면 두 사람 간의 친밀도가 꽤 높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분이나 난 그런 명칭을 쓰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개인적인 친밀도가 거의 없고, 수시로 서로 왕래한다거나 정기적인 어떤 모임 같은 것도 갖지 않는다. 그저 학부 시절 때와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때 그분의 강의만 서너 번 들었던 것뿐이다.


그래도 그분은 나의 영원한 은사님이다. 물론 그 교수님은 내가 당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모르실 것이다. 내가 그분을 은사님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그분이 쓰신 글이 나 글쓰기에 있어서 하나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이 알건 모르건 간에 '은사'로 생각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분이 아닌가 싶다. 은사님은 매일 페이스북에 글을 쓰고 계신다. 올라오는 거의 모든 글들을 내가 읽곤 하지만, 감히 댓글을 달기는 어렵다. 솔직히 말하면 아예 달지 않는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인 것 같다. 만약 댓글을 달 때에는 대체로 안부 인사 정도에만 그칠 뿐이다.


그분의 글에 내가 댓글을 달지 않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건 내가 읽기엔 글의 수준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마치 바둑으로 말하면 '아마'의 급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 형편을 생각했을 때 내 은사님은 프로 팔구 단쯤은 되는 분이다. 그분의 글을 읽을 때마다 고개를 주억거리곤 한다. 어떻게 하면 글을 그처럼 맛깔나게 쓰실 수 있나 싶어서 절로 감탄해마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거기까지이다. 그 내용의 절반, 또 그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은사님의 글쓰기 경지를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고 보니 그분의 경지를 단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멘토', 은사님은 내게 글쓰기 멘토이시다. 내가 쓴 글을 정식으로 보여드린 적도 없고, 품평을 받아본 적도 없지만, 그래도 그분의 글은 늘 나에게 방향키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그분은 검도를 하신다. 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내가 얼핏 알기로는 6단 이상 되시는 걸로 알고 있다. 칼과 무사의 세계 등을 글 속에서 논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어떤 일이든 어느 정도의 경지에 접어들면 모든 일의 이치는 같은 게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그런 은사님의 글에서 몇 번씩 접하는 말이 있다. 백련자득이라는 말이다. 무슨 중국 고사에 얽힌 성어로 보이지만, 인터넷에서 아무리 검색해 봐도 별달리 출력되는 게 없다. 다만 어떤 분의 블로그에선가 본 글귀가 있어서 옮겨와 봅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분도 검도를 하는 분이었다.


검도하는 사람 사이에서는 백련자득(百鍊自得)이라는 격언이 유명합니다. ‘수없이 많은 수련으로 스스로 깨닫는다’는 뜻인데요. 어느 날 갑자기 실력이 향상되지 않습니다. 거듭되는 수련과 시행착오를 겪고 난 후에야 비로소 검도의 값진 의미를 하나씩 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정라희, '무도로 하나 되는 소문난 검도명가'(https://cowebzine.com/vol553/?pageType=sub&wzSec=0&wzId=5))


느닷없이 어디에서 연원한 말인지도 모르는 이 말이 마음에 깊이 남는 건 검도와 글쓰기가 어쩌면 이치가 같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 때문이다. 위에서 인용한 글의 화자가 설명하고 있듯 백련자득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백 번을 수련하면 스스로 얻게 된다는 뜻일 테다. 검도가 그러하듯 글쓰기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고 실행할 수는 없는 법이다. 더러는 좀 모자란 듯해도 그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애를 쓰다 보면, 더 완벽한 상태에서 출발한 사람보다 오히려 더 나은 성취를 보일 수도 있는 것이라며 믿고 싶을 뿐이다.


가령 내 소설 쓰기가 그렇다. 공식적인 소설 쓰기 강좌에 나가본 적도 없고, 누군가에게서 소설을 쓰는 방법을 배운 적도 없다. 내 은사님의 강의에서 소설이나 소설 쓰기에 관한 얘기를 두어 번 들은 게 전부였다. 시쳇말로 플롯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무턱대고 소설을 쓰겠다며 덤벼들었다. 시점을 어떻게 설정하는지 따위를 알 리가 없고, 평면적인 인물이니 입체적인 인물이니 하는 것도 알 턱이 없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나 나름 소설을 써왔을 뿐이다.


물론 냉정하게 얘기하면 그렇게 썼으니 아직도 어딘가에 내놓을 만한 수준의 글이 되지 못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게다가 십수 년 이상 응모한 신춘문예 공모에서 매번 낙선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그래도 나는 혼자의 힘으로 이십여 편이 넘는 소설을 써 왔다. 가끔 나의 성취물들을 볼 때마다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감히 말하건대 어쩌면 이런 게 백련자득의 경지가 아닐까? 누가 뭐라고 하건 말건 간에 오늘도 나는 백련자득을 다짐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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