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일 차
고대 그리스어로 '멈춤' 또는 '보류'를 의미하는 에포케(epoché)는 다양한 철학적 입장 중에서 회의론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라고 한다. 회의론자들은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은 감각에 의존하는데, 감각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우리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피론을 필두로 한 고대의 회의론자들은 어떤 주장에 대해서도 판단을 보류하라고 했다. 아무리 그럴싸하게 판단해 봤자 모든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주장도 확실하게 믿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했다. 그 결과 고대 회의론자들은 모든 판단을 보류하려 했다. 그러면서 평온하고 무관심한 상태의 유지에 더 가치를 두었다.
난데없이 철학 이야기를 꺼내어 어리둥절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여기에서 이 '에포케'라는 개념을 끌어오는 이유는 글을 쓸 때 나는 명백히 이 입장을 취하기 때문이다. 일단 결과부터 말하자면 나는 고대 회의론자들의 생각이나 사상을 따라갈 수는 없다. 다만 어쩌면 그들 못지않게 최소한 글쓰기에 있어서만큼은 모든 판단을 보류하려 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평온하고 무관심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글을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보면 내 글쓰기는 크게 두 개의 시기로 나눌 수 있겠다.
1. 전반기: 2023년 6월 9일~2023년 12월 31일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신나게 글을 쓰던 시기였다. 브런치라는 새로운 세상에 들어온 데다 이제는 어엿이 언제든 어디에서든 글을 써서 저장할 수 있다는 나만의 방이 생겼다는 근원 없는 자부심과 긍지에 불타 앞도 뒤도 안 보고 글만 쓰던 때였다. 가장 많이 쓴 날은 무려 아홉 편을 썼다. 많이 쓴 걸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그만큼 내겐 글을 쓰겠다는 것 외엔 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회의감이 들었다. 계속 이딴 식으로 글을 써야 하나 싶은 자괴감이 들었고, 고작 이런 수준의 글을 명색이 글이라고 계속 발행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마도 그즈음부터 나 또한 구독자의 수도 신경이 쓰였고, 기껏 내가 써서 올린 글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는지에 대해서도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심지어 별 내용이 없는 글이라고 해도 댓글이 달려 있으면 온종일 기분이 좋기까지 했다. 게다가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것도 아닌 눈에 보이는 지표에 은근히 속이 상하기도 했다. 자주 그런 생각에 빠져 들었던 모양이었다. 왜 단 한 번도 메인 페이지에 필명이 언급되거나 내 글이 소개된 적이 없을까, 하고 말이다.
사실 그건 지금 생각해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때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해도, 나름으로는 글을 그만큼이나 썼으면 한 번쯤은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하지 않느냐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었다.
아마 그렇게 한 해가 저물어 갈 때쯤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계속 글을 쓸 것인지, 아니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것인지를 말이다.
2. 후반기: 2024년 1월 1일~현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아마도 내가 제일 잘한 것은, 쉬지 않고 글을 썼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건 간에 지속적으로 글을 쓰면서도 여전히 회의감은 고공 행진 중이었다. 한창 겨울방학 중이던 1월의 어느 날 내게 실낱같은 희망 하나가 날아들었다. 바로 그것이 엉뚱하게도 철학서에서 읽었던 판단 중지, 즉 에포케(epoché)였다. 계속 이렇게 회의감에 젖어 있으면 앞으로 더는 글을 쓸 수 없겠구나, 그러면 앞으로 그 어떤 판단이라도 일단 보류해 보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참 이기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글이라는 게 책임감 있게 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렇게나 내 멋대로 적어놓고는 판단을 보류하겠다고 한다면 일종의 책임 회피로 보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도달한 생각의 결론은 설령 사실이 그렇다고 해도 이마저도 판단을 중지해야겠다는 것이었다. 판단을 중지하거나 보류한 뒤에는 반드시 또 다른 판단이 따르게 마련이다. 물론 이 판단은 전적으로 내게 유리한 판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단 한 줄의 글을 써도 막상 써야 하는 사람은 나이기 때문이다.
에포케(epoché) 1. 나는 글을 잘 쓰는가?
물으나 마나이다.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한다. 어쩌면 그걸 알기에 내 글에 대한 전적인 판단을 중지하겠다는 결심을 하기 쉬웠던 건지도 모른다. 그 후로는 누가 내게 내 글이 별로라고 해도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처럼 이렇게 대놓고 인정해도 자존심에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단지 나는 글쓰기라는 세계에서 조금씩 자라나고 있는 중이라며 믿고 싶을 뿐이다.
키가 1m를 갓 넘긴 초등학교 1학년 아이에게 '넌 왜 이렇게 작냐'라고 말하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아이에겐 아직 10년 이상의 긴 기간 동안 키가 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편의상 내 글은 초등학교 1학년 글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10년 정도 더 쓴다면 그때 가서 제대로 판단해 보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아마도 그 판단의 결과는 다음의 두 가지가 아니겠나 싶다.
역시 나는 글쓰기에는 소질이 없어.
음, 10년 동안 쓰니 나도 글쓰기에 제법 소질이 보이네.
에포케(epoché) 2. 내 글을 사람들이 좋아할까?
글쓰기에 있어서만큼은 모든 판단을 중지, 보류한 나 역시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러기엔 아직 내가 그럴 만한 깜냥이 안 된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하는 게 상식이다. 얼마 되지도 않는 잔기술로 아무 데나 다리를 뻗고 '여기가 내 자리 입네'라고 할 순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 글을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라고 가정(솔직히 이건 가정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인지도 모르지만)해 보았다. 그렇다면 난 이제 글을 그만 써야 하는 걸까?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내가 누구 좋으라고 글쓰기를 그만둬야 한다는 말인가? 어쩌면 글쓰기를 가장 좋아한다는 명분만으로도 글을 계속 쓸 자격이 있는 건 아닐까? 결국 난 이기적이지만 사람들이 내 글을 좋아하는 순간이 오는 그날까지 '내 글을 사람들이 좋아할까'라는 생각은 접어두려 한다.
에포케(epoché) 3. 이렇게 쓴다고 해서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까?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 나는 가장 큰 고민과 회의에 빠졌다. 이렇게 계속 쓴다고 해도 앞으로 그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면 과연 내가 지금처럼 글만 쓰는 것이 현명하다고 할 수 있을까? 벌써부터 내 글을 읽은, 나와 가장 친한 두 사람이 내게 말했다.
넌 앞으로 10년을 써도 지금 이상의 글은 쓰지 못할 것 같다.
괜한 오기이거나 쓸데없는 똥고집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딱 10년만 더 글을 쓸 생각이다. 물론 출간이 목표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등단이나 문학상 수상이 목표도 아니다. 엄연히 이들이 글을 쓰던 첫 시점에서의 내 목표이긴 하나, 모든 걸 판단 중지하기로 결의한 이후 출간이나 등단, 또 문학상 수상 등에 대한 욕심이 사라졌다. 생각할수록 천만다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한 달에 1백 편의 글을 써서 9년 남짓한 기간에 총 1만 편의 글을 쓸 계획이다. 1만이라는 숫자에 어떤 의미가 있어서 그런 결심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정도까지 썼는데도 나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때는 미련 없이 붓을 꺾으려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더는 내 글에 대해서 내가 부끄러움이 들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