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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라면 어김없는 한량

73일 차

by 다작이

오늘은 비교적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그 귀한 연휴 첫날을 흥청망청 보낸 탓에 오늘은 뭐라도 좀 해야 할 것 같았다. 결국 해답은 집에만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이미 정해졌고, 어디로 가야 할지가 관건이었다. 연휴 중 고작 나흘만 개방하는 공공도서관을 가는 것 외에는 그 어떤 마땅한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노트북을 백팩에 챙겨 넣고 내친김에 반납할 책도 몇 권 같이 넣었다. 연휴에 도서관이라……. 그 좋은 날에 왜 그런 곳을 가냐고 하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발걸음이 가벼워야 하는데 뭔가가 자꾸 뒷맛이 개운하지가 않았다. 그냥 연휴가 아니었다. 추석을 잘 쇠라며 주어진 연휴가 아니던가? 명색이 가장이라는 자가 하필이면 이런 때에 도서관이나 간다고 나서는 게 옳은 행동인가 싶었다. 누가 보면 대단한 글이라도 쓰는 작가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도 아니면서 눈치 없이 도서관을 간다며 설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금 내가 하려는 짓이 옛날 같으면 어김없는 한량의 짓이었다.


비가 많이 와 마당에 부려놓은 볏단이 다 떠내려 가도 선비들은 글공부를 했다. 어쩌면 어린아이가 아프다고 칭얼대도 외면했을 테고, 지금처럼 명절을 준비한다며 온 가족이 난리법석을 피워도 글공부만 해야 했다. 과거에 급제도 못한 주제에 선비라는 신분만 생각하고 주변은 아랑곳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한량이라고 하지 않던가?


왜 이러고 있는지 한 번 자문해 봤다. 하던 짓이, 할 줄 아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한 대답이었다. 집을 나서기 전부터 한참을 가족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도서관을 가도 괜찮은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어느 누구도 내게 도서관을 가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도서관에 가도 되냐는 질문조차 할 수 없었다. 나이를 이만큼이나 먹어놓고 그 정도 눈치도 없냐는 듯한 싸늘한 반응이 돌아온다면 그것만큼 당황스러운 일도 없을 터였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더니, 어딜 가서 글쓰기를 배운 건 아니라고 해도 늦게 길이 트고 만 이 짓을 좀처럼 멈출 수가 없다. 더 웃기는 건 어느 누구도 내게 글을 쓰라고 한 적도 없다. 이럴 때면 으레 마치 누군가가 그럴싸한 스토리로 대박을 치고 나니 너 나 할 것 없이 글을 쓰겠다고 뛰어든 꼴이라고나 할까? 물론 내게 그런 거창한 명분 따위는 없다. 그냥 혼자서 벽에 대고 중얼중얼거리고 있을 뿐이다. 아니 휴대전화 액정을 향해, 커서만 깜박거리고 있는 노트북 화면을 향해 하소연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내 얘기를 듣건 말건 간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기어이 하고 말겠다는 식이다.


게다가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가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그저 나만 읽고 말 글을 이리도 장황하게 쓰고 있는 것이다. 한두 편도 아니고 그 많은 글들을 말이다. 솔직히 냉정하게 판단해 보면 이러고 있는 게 거의 병적인 증상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이다. 만약 이것이 병이라면 고쳐야 하고 그러지 않아야 한다는 뜻일 텐데, 과연 이게 병인지도 구분이 가지 않는다. 속 편하게 생각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느냐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다.


아마도 오래전 한량들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나가 술잔을 기울이며 거창하게 시조 한 수를 읊었을 테다. 술을 따라주는 기생을 옆에 끼고 말이다. 좋은 시절에 태어난 그들은 어쩌면 호의호식하며 세상 걱정 없이 그들이 하고 싶은 행동을 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고, 그 일은 분명 자신의 신분을 유지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를 잘 만난 것도 아니고, 떵떵거릴 만한 직업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 내가 이렇게 한량이나 할 법한 짓을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도 나는 현대판 한량이 되어 배부르게 글이나 쓰고 있다. 누군가는 이 시간에도 피땀 흘려가며 일을 하고, 또 어떤 누군가는 몇 푼 안 되는 돈에 자존심을 팔거나 인격적인 모독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를 이 시간에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참 대책 없는 한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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