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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인가 친구가 아닌가?

by 다작이

내게는 꽤 오래된 친구들이 몇몇 있다. 무려 여섯 명이나 된다. 있으면 참 든든한 친구들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만약 그들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외로운 것도 문제겠지만, 말년의 그 느낌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이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이 있다. 과연 그들이 내게 있어서 친구들이 맞는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들을 친구라고 지칭한다. 그 점은 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나는 왜 그들과의 관계에 대한 확신이 없을까?


그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3 때였다. 그 길고 힘든 고통의 시간을 함께했으니 다른 여느 관계보다도 더 돈독하고 우애가 깊을 만한 그런 관계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나만의 생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분명히 그들의 생각은 다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만 빼면 그들은 모두 기독교인들이다. 맞다. 그들은 고3 때 우연히 교회에 갔다가 만나서 알게 된 친구들이다. 믿음을 전제로 한 친구관계, 그런데 나는 불신자이다.


지금 생각해도 우리의 우정은 조금 각별했다. 일곱 명의 남자들로 이루어졌으니 어딜 가도 무서울 게 없었고, 그 어떤 것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 힘든 시기를 잘 버텨낼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은인들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진의가 다소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계속 들곤 한다. 물론 그들도 초창기엔 분명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 거라고 믿었다. 그때는 순수하게 친구 대 친구의 관계로 지속해 왔었다. 그런데 이젠 예전의 그 순수함이 사라지고 만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각자의 가정을 꾸려 사는 환경도 다른 데다 직장도 저마다 달라 요즘은 그들과 예전처럼 정기적인 만남을 갖지는 못한다. 집안의 대소사 등이 있을 때 겨우 얼굴을 볼 정도이니 기껏 해야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관계이다. 볼 때마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런 기색을 내비치곤 한다.

"너도 이젠 주님의 품 안으로 들어올 때가 되지 않았냐?"

대놓고 이야기하면 질색하는 내 성격을 잘 알지만, 가끔은 단도직입적으로 본론부터 꺼내곤 한다. 눈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에 내가 그들의 생각을 못 읽을 리가 없다.


사실 내 이름은 어떤 목사님이 지으셨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모태신앙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한때는 신학대를 가겠다고 설치기도 했으니 내게 믿음을 강요하는 친구들의 행동에 크게 무리가 있는 건 아닐 수도 있었다. 어차피 나는 그들에게 집 나간 자식에 불과했다. 언젠가 반드시 때가 되면 돌아올 사람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다. 돌아온 탕자가 되어 그들 앞에 당당히 서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나는 지금 기독교의 교리가 어떠니 저떠니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교인들이 어떻다고 말하려는 것도 또한 아니다. 다만 믿지 않는 자는 천국을 갈 수 없는 것뿐만 아니라 저들과 같이 할 수 없다는 그 생각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아니라고 단언할 녀석들이 있을지도 모르나 그들이 말하는 구원의 길은 최소한 믿음이 없는 내겐 해당사항이 없는 일이다. 그들이 말하는 구원의 길은 오직 단 하나의 길밖에 없을 테니까.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렇게 독단적으로 선을 그을 수 있다면 그건 사람의 삶이 아니지 않겠냐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삶은 살아갈 이유나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들의 말에 따라 생각해 볼 때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존재해야 할 가치가 없는 것일 테니까.


종교라는 것은 각자의 취향과 생각에 따라서 가질 수도 있고 가지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어떤 신을 믿든 그 신을 믿은 대가는 성찰과 수련이라는 하나의 지점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특정한 어느 한 신을 믿은 사람들만 올바른 길로 가고, 그 신을 믿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가 나락의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면, 그런 인생을 우리가 살아야 할 무슨 당위성이 있을까?


간혹 언제 한 번 보자는 연락이 그들에게서 오곤 한다. 물론 내가 먼저 연락할 때도 있다. 믿음이 있느니 없느니 해도 35년이나 지속된 관계를 단숨에 청산할 순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요즘 뭘 하면서 지내는지 궁금하다.


나는 이 녀석들이 친구라고 믿지만, 그들은 과연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만약 이 상황에서 내가 교회를 다니고 내 마음속에서 그들이 믿는 신을 영접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친구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이렇게 계속 버티고 있다면 결국 그들은 내게 더는 연락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들은 과연 내 친구들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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