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아침에 지하철을 탈 때마다 보는 광경이 있다. 그건 어쩌면 법에 저촉된다거나 그리 논란이 될 만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이다.
다른 객차나 다른 위치도 아니다. 계단을 내려서면 바로 앞에 있는 지점에, 늘 내가 타면 항상 같은 자리에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있는 한 남자가 있다. 분명 그는 나보다 앞선 역에서 탑승했다는 뜻이다. 맨 처음에 그를 봤을 때에는 그냥 빈자리가 없어서 앉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가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를 본 게 족히 대여섯 달은 넘었는데, 그는 마치 자신이 앉아 있는 자리가 전용석이라도 되는 듯 그 자리에만 앉아 있었다.
그러는 것도 그리 큰 무리는 아니었다. 내가 타기 직전 역인 동대구역에선 자리의 여유분도 많았을 테니 항상 같은 자리에 앉는 걸 두고 뭐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늘 똑같은 자리에 앉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똑같은 자리를 점유하고 있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도 그가 당당히 앉아 있던 그 자리가 바로 임산부 배려석이었다. 오른쪽 옆의 두 자리가 버젓이 비어 있는데도 그는 늘 그 자리를 고집했다. 게다가 남자가 앉은 자리 옆의 두 자리는 말입니다. 두 개의 빈자리는 내가 타서 열 개의 역을 지날 때까지 비어 있는데도 말이다.
한동안 나는 그 사람을 관찰해 봤다. 그가 금남의 구역일지도 모르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이유는 뻔했다. 최소한 한쪽 옆엔 걸리적거리는 사람이 없는 구석진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나보다 먼저 탔으니 탑승한 순간에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내릴 때까지 눈을 감은 채 앉아 있는 그를 보며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인가 싶었다. 숱한 사람들, 그중에서도 더러는 임산부로 보이는 여자들이 그의 앞에 서 있어도 마치 자신은 처음부터 그 모습을 못 봤다는 듯 내내 눈을 감은 모습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허우대가 꽤 훤칠했고, 나이는 나와 비슷해 보여도 기본적으로는 멋쟁이 축에 들 정도로 생김새도 멀쩡한 사람이었다. 아니, 어지간한 중견배우 뺨칠 만큼 잘생긴 남자였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려는 게 아니다. 누가 봐도 '저 자리는 늘 비워 놓아야 하는 자리'라는 인식을 못할 그런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물어보고 싶었다. 내가 타던 순간에만 해도 당장 눈에 띄는 빈자리가 족히 예닐곱 개는 되는데, 왜 하필이면 거기 앉아 있냐고 말이다.
앞에서도 말했듯 그의 행동이 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행동은 아니다. 잘 지켜진다면 좋겠지만 안 지켜져도 어쩔 수 없는 문제이다. 어쩌면 임산부 배려석이 그 대표적인 예에 속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 그대로 임산부를 배려하기 위해 만든 자리이니 가급적이면 그 자리를 항상 비워 놓는 게 좋을 거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저렇게 요란하게 표시해 놓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그에겐 온통 핑크색으로 도배된 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 일각에선 이 역시 남성에 대한 수많은 역차별 사례들 가운데 하나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린다. 말이 좋아 임산부 배려석이지 남자는 앉지 말라는 자리가 아니냐는 식이다. 사실 대중교통수단의 특성으로 보자면 빈자리라는 건 먼저 본 사람이 앉아서 가는 게 이치에 맞기 때문이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자면 별도의 임산부 배려석을 만들 게 아니라 각 객차의 양끝에 위치한 노약자 배려석 속에 마련해두어야 한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현재 지하철의 어느 한 객차에 임산부가 타고 있지 않다면 멀쩡한 빈자리를 비워 놓아야 할 이유가 뭐냐고 그들은 되려 묻는다.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난 남자이니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감내하면서까지 굳이 저 자리에 앉아야 할 이유도 없다. 물론 나는 그런 걸 잘 지킨다느니, 혹은 타인을 배려한다느니 따위의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건 자랑도 무엇도 아니다.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일 뿐이다. 나처럼 행동하는 게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정상적인 게 아닐까?
일면식도 없는 그를 이리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다. 그는 아주 뻔뻔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아예 경우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저런 상식적인 것 하나도 무시하는 사람,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자기 편의대로 사는 사람이라면 다른 인성적인 측면은 재고해 볼 가치조차 없는 사람이 아닐까?
간혹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같다. 선진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뭔가 대단한 차이점이 있을 거라고, 위인은 범인과는 달리 감히 따라갈 수 없는 그들만의 특징이 있을 거라고 사람들은 믿는다. 일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다만 정작 한 나라를 선진국이 되게 하는 힘은, 위인을 탄생하게 하는 힘은 기본을 무시하지 않는 데에 있을지도 모른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작은 것을 잘 지키는 사람과 기본이 무시되지 않는 사회가, 곧 올바른 사람이고 올바른 사회라는 말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살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어느 누구에게든 납득이 가는 사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