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도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음이 싱숭생숭한 중에 문득 한마디의 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감히 그 숭고한 말을 나 같은 사람이 여기에 인용한다는 게 황망스럽긴 하나,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말이라고 생각하기에 일단은 가져와 보겠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너무 유명한 말이라 별도의 설명은 필요 없을 듯하다. 거창하게 글을 시작해서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저러나 싶을지도 모르겠다. 자, 그렇다면 이해를 돕기 위해 내 수준에 맞게 위의 문장을 바꿔 보겠다.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마라.
여기에서 ‘나의 죽음’을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로 바꿨다. 그렇다면 이순신 장군이 말씀하신 그 ‘적’은 우리에겐 바로 ‘주변 사람들’이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느냐고, 또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만큼 의미 있는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고, 누군가는 내게 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너무 삭막하다거나 인정머리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이 말은 꼭 해야 할 것 같다. 만약 나처럼 본업이 작가가 아닌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하는 사실이라고 말이다.
의외로 주변에서는 우리가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아니다. 아마 거의 없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일종의 시기 혹은 질투인 것 같기도 한데, 그 바쁜 시간을 쪼개어가며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우리의 결단력이나 실행력이 탐탁지 않은 것이 아니겠나 싶다. 대체로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한데, 일단은 가족부터 그 자체를 꺼리는 경우도 숱하다. 만약 다행히 가족은 지지하더라도 주변의 그 많은 사람까지 우리의 편이 되어 줄 거라고 기대하는 건 크게 무리가 있다.
누군가가 말했듯 글에 미쳐서 글만 쓰고 있는 우리 같은 사람은 타인이 봤을 때 그저 ‘덕후’ 수준이거나 그 선을 약간 넘어선 사람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금은 과하게 혹은 더 지나칠 정도로 깊이 몰입되어 취미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우리를 인식한다는 얘기다. 그냥 할 일이 없어서 심심풀이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는 걸 그들은 알 리가 없다. 물론 알아야 할 이유 또한 없다. 그들은 우리가 본격적으로 글을 쓴다거나 작가가 되기를 희망하며 글을 쓴다는 것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그건 어쩌면 우리 역시 그들이 전념하는 어떤 활동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닌가 싶다. 사실 그런 인식이 글을 쓰는 우리에게 큰 걸림돌이 될 일은 없다. 무시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의외로 엉뚱한 곳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자면 평소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 가만히 있다가도 티끌만 한 뭐라도 얻어걸리는 날엔 일제히 공격적인 시선으로 우리를 대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무한경쟁 사회에서 이런 사고방식이나 태도는 필수불가결한 것인지도 모른다. 가령 직장과 관련한 이야기가 글 속에서 언급이 된다거나 누군가가 읽었을 때 직장 내의 어떤 특정인이 연상되듯 글을 썼다면 바로 공격이 들어온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내 시선은 '일은 안 하고 글만 쓰는 게 아니냐'라는 의혹에 눈초리로 바뀌고 만다.
나와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지인 중에 이미 출간한 사람이 있다. 몇 달 전에 그와 저녁 식사 자리를 가졌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다 그가 먼저 내게 혹시 브런치에서 글을 쓴다는 걸 주변 사람들, 특히 직장 사람들에게 알렸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만약 자신이 이 사실을 먼저 알았더라면 나를 말렸을 것이라고 했다. 설마 하는 마음이 컸지만, 그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는 평소의 내 상식과 생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선생님, 혹시 일과 시간 중에 일은 안 하고 글만 쓰는 거 아니에요?”
그가 첫 책을 쓰고 나서 직장 동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축하한다’ 혹은 ‘부럽다’ 등이 아니었다고 한다. 책이 나오자마자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일제히 돌변해 그런 말을 쏟아냈다고 했다. 일과 시간 중에 글을 쓰냐는 질문은 ‘맡겨진 일은 얼렁뚱땅 처리해 놓고 글을 쓰는 게 아니냐’라는 뜻도 내포하는 셈이다. 꼭 누군가의 축하를 듣고 싶었던 건 아니라고 해도, 그래도 몇 명 정도는 책 출간을 축하한다거나 시간을 쪼개서 책을 출간하다니 대단하다 따위의 말을 직장 동료들이 할 거라고 믿었다고 했다. 물론 그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
심지어 출간한 이후로 두 번이나 근무지를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런 의심에 찬 말을 종종 듣는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지금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두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다. 자기 말로는 그때 돈 주고도 못 배울 인생 공부를 톡톡히 했다고 한다. 물론 나 역시도 한창 글쓰기에 빠져 있던 때에 업무 시간에 일은 안 하고 글만 쓰는 게 아니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렇다 혹은 아니다, 라며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 많은 여가 시간을 활용해서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왜 그들은 생각하지 못할까? 그때의 황망함을 과연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지인은 내게 세 가지의 결단을 강력하게 제안했었다. 지금 하고 있는 브런치부터 접을 것, 조금 잠잠해지면 다시 브런치 심사를 받고 들어와 글을 쓰되 직장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새 계정을 가르쳐 주지 말고 글을 쓴다는 사실도 말하지 말 것, 그리고 혹시 출간하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 그들에겐 출간 소식을 알리거나 책을 선물하지 말 것 등이었다. 그는 주변에서 우리가 글을 쓰는 걸 알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뒤통수를 치게 되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게, 보다 더 오래 또 안전하게 편하게 글을 쓰려면, 최소한 직장 동료들이 내가 더는 글을 쓰지 않는다는 걸 알게 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이건 사람들을 속이는 일에 지나지 않는 일이긴 하지만, 보다 더 편하게 글을 쓰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글을 쓰는 우리를 반드시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우리에게 적과 다름없다.
아마 그 지인의 말 때문에 내가 이순신 장군의 그 위대한 말이 떠올랐던 게 아닌가 싶다.
작년에 어느 한 작가의 북콘서트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녀도 별도의 직업을 갖고 있었으니 전업 작가는 아니었다. 그날 그곳엔 그녀가 몸담은 직장에서도 몇몇 사람들이 참석했던 걸로 알고 있었다. 따뜻한 축하와 격려를 받으며 행사를 진행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축복 속에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대단한 복이 아니겠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내심은 걱정이 들었다. 과연 그녀의 직장 동료들이 그녀가 글을 쓴다는 사실을 언제까지고 호의적인 마음으로 생각해 줄 것인가 싶어서였다.
그런 훈훈한 모습도 분명 어딘가엔 있겠으나, 앞에서도 말했듯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긍정적인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봐 주기를 기대할 순 없다. 그들에겐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 외엔 관심이 없게 마련이다. 차라리 관심만 없다면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런 무관심은 이내 따가운 눈초리로 다가올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밤잠을 쪼개가며 글을 썼든, 마구 눈이 감기는 출근길에 잠과의 사투를 벌여가며 썼든 간에 그들은 그렇게 넉넉한 시선으로 우리를 보지 않는다. 당장에라도 차창에 기대어 쪽잠이라도 청하고 싶은 퇴근길이건, 혹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절제하고 남은 저녁 시간에 글을 쓴다는 사실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일 할 거 다 하면서 시간도 없는데, 언제 글을 쓴다는 거야, 그것도 매일?”
자신이 못 하니까 글을 쓰는 우리에게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넘겨짚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그들에게 우리는, 일과 시간 중에 하라는 일은 안 하고 글만 쓰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글을 쓰려고 기회만 엿보는 사람으로 인식될 뿐이다.
글을 쓰는 우리에게도 일종의 멍석이 필요하다. 그 멍석은 오직 글을 쓰고 또 서로 읽어주는 이런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서만 통용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절대 직장 동료 어느 누구에게도 당신이 글을 쓴다는 사실을 얘기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글은 쥐도 새도 모르게 조용히 써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생님, 혹시 글 쓰세요?”
“아니요.”
“선생님, 서점에서 '***'라는 책을 봤는데, 그 책 혹시 선생님이 쓰신 거 아니에요?”
“아니요.”
언제든 난 '아니요'라고 발뺌할 준비가 되어 있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 브런치 계정을 알게 되면 좋지 않겠냐고, 또 미래의 그 어느 때에 출간될지도 모를 내 책을 한 사람이라도 더 알면 좋지 않겠냐고 말이다.
천만에. 나는 단호히 대답할 수 있다. 설령 그게 아무리 마케팅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나는 그 부분만큼은 기꺼이 포기할 의향이 있다. 주변 지인들 중에 내 글을 읽거나 (만약 발간된다면) 내 책을 기꺼이 읽어줄 사람도 없을뿐더러,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솔직히 하나도 반갑지 않다. 특히 그들이 직장 동료라면 더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