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를 읽어야 할 때

157일 차

by 다작이

한때 나쁜 생각도 많이 하고 좀처럼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왔다 갔다 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주어진 하루하루는 살아야겠고, 뭘 어떻게 해서든 삶의 재미를 찾으려 노력하던 때였다. 남들이 좋다고 하던 어지간한 활동들도 적지 않게 해 보기까지 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모종의 재미를 찾는다면 의욕이라고는 없던 삶에 작은 불씨가 지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책 한 권을 집어 들게 되었다. 그 책은 미하엘 엔데의 『모모』였다. 참으로 내게는 충격적인 소설이었다. 아니다. 저자인 미하엘 엔데의 평소 창작 스타일이나 그의 세계관으로 보자면 동화라고 해야 어울리는 그런 작품이었다. 누가 뭐라고 분류하건 간에 나는 지금도 이 작품을 당당히 소설로 분류하려고 한다. 맞다.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 충분히 의미가 깊을 대작이지만, 결단코 『모모』는 어른들이 읽어야 할 책, 그래야 더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이야기 속의 주인공과 같은 세계관과 생각 및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물론 아무리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절대로 나는 모모처럼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글쎄, 과연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모모는 나와는 확연히 결이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마치 그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 혹은 이 세상이 아닌 듯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표면적으로는 모모의 모습을 흉내 내며 살아갈 수 있을지 몰라도 그건 내 모습이 아님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동식물은 물론 무생물과도 교감하고 그들과 소통하며 살아간다. 어찌 그런 그녀의 모습을 흉내 낼 수 있을까?


하도 많이 읽어 이미 달달 외울 정도가 되어버린 『모모』를 나는 지금도 2년에 한 번 정도씩 정독한다. 오죽했으면 한글 자막이 없는 영화 『모모』까지 봤을 정도니까. 지금 이 글의 논지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나, 미하엘 엔데의 또 다른 대작인 『끝없는 이야기』를 비롯해 국내에 번역 후 출간된 그의 전작을 죄다 읽어 보게 된 것도 결국은 『모모』가 내게 준 힘이 아닌가 싶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의 바늘이다.


가수 김만수 씨가 부른 노래, 「모모」의 노랫말의 일부분이다. 노래의 가사를 쓴 사람이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읽고 감명을 받아 만든 노래라는 설이 있다. 그것의 사실 여부를 떠나 『모모』는 내 인생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소설이다. 다만 나는 모모보다는 보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다른 등장인물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 바로 모모의 친구 중의 한 명이었던 도로 청소부 베포다. 최소한 큰아버지 뻘은 될 만한 그가 무려 모모의 친구다.


비질 한번 한 번을 정성 들여 천천히 하며 그 자체를 즐기며 시간에 연연하지 않고 현명하게 보내는 법을 아는 사람, 의사소통이 느리고 자신만의 생각에 길게 몰두해 바보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모모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그 또한 모모를 아끼는 사람……. ☞ 다음 나무위키, 「모모(소설)」 항목에서 발췌 요약


나와는 결이 다르고 차원마저 다른 모모를 감히 따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모모를 아끼고 사랑했으며 모모 역시 누구보다도 좋아했던 청소부 베포처럼 살아가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하며 어렴풋이 확신 아닌 확신을 가져본다.


조만간 시간을 들여 『모모』를 다시 한번 정독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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