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얼른 일어나지 않고 뭐 해?

by 다작이

지하철에 타면 각 객차의 양쪽 끝에 특별석이 있다. 세 명씩 앉을 수 있는 자리인데, 통로를 기준으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구조이니 네 군데를 합하면 모두 열두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다. 나머지 좌석인 여섯 명씩 앉을 수 있는 자리보다는 덜 북적대니 나는 가끔 이 자리를 선호한다. 물론 나보다 연세가 더 드신 분들이 주변에 없을 때 얘기다. 그런데 문제는 그곳이 바로 특별석이라는 점이다.


자리를 양보합시다.

노약자 장애인 보호석


가끔 뒤통수가 따갑다 싶어서 뒤를 돌아다보면 안내판이 어김없이 붙어 있다. 게다가 노약자, 장애인, 임산부, 그리고 유아 동반 승객이 앉으면 되는 자리라는 의미에서 그림까지 새겨져 있다. 그래서일까, 이 자리에 앉을 때마다 나는 몹시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지금처럼 맞은편까지 포함해서 여섯 자리 중 나만 앉아 있을 때는 괜찮은데, 사람들이 많이 탄 날은 아무래도 앉기가 망설여진다. 최소한 칠십 대 이상의 어르신들이 볼 때에는 오십 대 중반인 나는 아직 열혈청년인지도 모르기 때문이겠다.


하나 마나 한 말이겠으나 이 자리에 앉는 사람들은 대체로 나이가 많다. 양쪽 끝에서부터 앉으니 두 명만 앉으면 꽤 편하게 앉을 수 있다. 게다가 어지간해서는 비어 있는 경우가 많은 편이라 노약자인 분들이 급할 때 편하게 앉아서 갈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요즘처럼 무더위 때문에 몸 냄새나 땀 냄새 등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고, 무엇보다도 끈적끈적해진 팔이 닿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처럼 세 자리가 모두 비어 있을 때 가운데에 앉는 사람도 있다. 마음 같아선 왜 그렇게 앉아 있냐며 지적하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보고 있기가 불편하다. 그렇게 앉아 버리면 자기는 편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앉기가 불편할 거라는 사실을 왜 모르는 걸까?


보통 나는 가운데만 딱 비어 있을 때 나보다 연세가 많은 분이 가운데 끼어 앉으려고 하면 무조건 일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설령 더는 앉을 자리가 없다 해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서 있으면 서 있었지, 어르신들과 비좁게 끼어 앉아 있고 싶지는 않아서다. 나 하나 일어서면 남은 두 사람이 그나마 편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창 글 쓰느라 정신이 없는 지금과 같은 때 누군가가 끼어 앉으려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일어서야 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고 해야 할까? 으레 그럴 때면 시선이 따가움을 느낀다. 본의 아니게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 건지도 모른다. 종종 가운데에 앉은 분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여긴 자네 같이 젊은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닌데 왜 여기 앉아 있느냐?’

마치 그렇게 말하기라도 하는 듯 그 사람은 계속 나를 힐끔거린다. 타이밍을 놓친 나는 애써 그 시선을 외면하지만 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가장 불편한 순간은 양쪽에서 두 사람이 쳐다볼 때다.

'너만 일어나면 편하게 갈 수 있는데, 좀 일어나지?'

설마 그런 생각으로 보겠냐고 하겠지만, 아예 한 술 더 뜨는 사람도 있다. '노인을 공경하지 않으니 세상이 이 모양이다'라고 하거나 '이 자리는 젊은 사람이 못 앉게 해야 한다'라는 따위의 혼잣말을 큰소리로 내뱉는 사람도 종종 있다. 그들의 말이 옳건 그러건 간에 어지간해서는 이 자리에 다시는 앉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한다.


확실히 내 나이는 이런 자리에 앉기에 애매한 나이이긴 하다. 한 20년 후라면 모를까, 아직은 당차게 앉기가 망설여진다. 물론 앉으라고 만들어 놓은 자리이니 못 앉을 이유는 없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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