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지난 주말에도 몇 번을 시도했습니다.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나름대로 생각한 주제로 몇 줄을 써 내려갔어요. 그런데 좀처럼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더군요.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글쓰기가 더 어렵게 된 건 무슨 이유일까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선택의 기로에 서있던 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에게 선택은 매우 어려운 과제입니다. 인생의 방향을 제 의지대로 결정해 본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요. 과장인가 싶겠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게요.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를 선택할 때였습니다. 친한 친구들이 가는 학교를 별다른 생각 없이 지원했습니다. 친구들은 저마다 이유가 있었는데 말이죠. 교복이 예쁘다거나 공부를 잘하는 학교라거나 좋아하는 선배가 있다거나. 저는 그냥 친구들이 간다고 하니 지원했습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방송부에 들고 싶다는 생각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경상도에 살았었지만 표준어로 문장을 매끄럽게 이야기하는 것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 계기로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아나운서의 발음을 따라 해 보기도 하고 아버지가 보시는 신문을 가져와 기사 읽기 연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제가 선택한 고등학교 동아리는 방송부가 아닌 한별단이었어요. 친한 친구들이 한별단에 가입을 했던 이유였지요.
대학만은 제가 선택하고 싶었어요. 저는 무조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었습니다.
지겹고 답답한 지방을 벗어나고 싶었어요. 점수에 맞춰 서울에 있는 대학 2곳에 합격을 했고 제가 부푼 꿈을 꾸고 있을 때 부모님이 말씀하셨어요. 지방 국립대를 가는 게 좋겠다고.
경제적 능력이 없던 저는 그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방국립대는 생각도 하지 않았었기에 선생님이 정해주셨던 과로 진학하게 되었어요. 원서를 쓸 때 지방대 과는 선생님께 알아서 적어달라고 부탁했었거든요.
그렇게 정해진 지방 국립대의 국어국문학과에서 4년의 대학생활을 했습니다.
대학 때의 과 소모임도 마찬가지였어요. 대학에서 사귄 친구가 들고 싶어 하는 소모임에 가입했습니다.
직업 선택의 계기도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가 공무원 공부를 해보자고 해서 시작하게 된 것이고요.
제 결혼은 어땠을 것 같으세요?
친구가 결혼한 남자와 결혼을 할 수는 없으니,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할 시기에 제 옆에 있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했어요.
그리고 이 나이가 되었네요.
제가 선택해 온 인생의 길이 몇 갈래나 될까 아무리 되짚어 봐도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마치 장님이라도 된 것처럼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제 인생의 밑그림마저 그릴 수 없을 것 같네요.
제가 저의 인생을 선택해 본 적이 없어서 일까요.
지금 저는 저의 선택이 두렵습니다. 저의 선택으로 어떤 결과도 얻어본 일이 없기에 그 선택을 함에 따라 얻게 되는 결과까지도 두렵습니다. 브런치도 같은 맥락인 것 같습니다.
뒤늦게 책을 읽기 시작했고 읽으니 쓰고 싶어 졌어요. 그래서 도전했습니다. 운인지 실력인지 짐작가지 않지만 브런치에서 합격이란 선물까지 주었습니다. 합격 후 몇 개의 글을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글은 쓰면 쓸수록 두려움이 생기는 걸까요?
어제는 제 브런치에 글을 쓰러 들어왔다가 도저히 글이 써지지 않아 다른 작가님의 글을 쭉 읽어 보았어요.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작아지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생각은 '써야겠다'에서 '쓸 수 없겠다'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제 글이 부끄러웠어요. 쓰게 될 글도 부끄러워졌습니다. 자꾸만 다른 사람들이 보입니다. 저는 온데간데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주변을 맴돌며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형체 없는 제 모습만 어렴풋이 느껴질 뿐입니다.
잘 쓰고 싶은 마음과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뒤섞여 어지러운 생각만을 몰고 옵니다. 길을 잃고 어딘지 모를 이곳에 혼자 서있는 지금, 나는 사라지고 타인과 두려운 감정만 쓰레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여기까지 쓰고도 커서의 깜박임만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고 글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쓰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브런치는 제가 선택한 공간인 동시에 저를 선택해 준 공간이니까요.
쓰면서 몰려오는 두려움도 쓰고 나서 느낄 부끄러움도 온전히 감당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브런치에 글을 쓰겠다고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