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취준생의 자기소개서(이건 소설 아님)
면접 전 내가 했던 건 회사의 시가총액을 외우는 것도, 닳도록 외운 1분 자기소개를 주절주절 떠드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간절하게 기도했다. (제발 한 명 만 병신이게 해 주세요.) 수능 전날에도 이렇게 기도한 적은 없었다. 인성 면접 30분, 직무 면접 30분 도합 1시간의 면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면접은 코로나 뉴 노멀 시대에 걸맞게 2:2로 줌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어차피 최종까지 간 지원자들의 실력은 거기서 거기다. 서류전형에 이은 말도 안 되는 과제 전형을 거쳤기에 경쟁률도 2:1로 줄었다. 그러니까 나랑 같이 면접장에 들어간 나머지 한 명만 이기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한 명이 병신이긴 했다.
문제는 내가 그 병신이었다는 점이다. 아마 나와 함께 면접장에 들어갔던 지원자는 판교로 출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역시나 그는 '이 시국에 최종까지 간' 지원자답게 매우 우수한 인재였고, 거기다가 같이 들어간 경쟁자(=나임ㅋ)가 시원하게 면접을 말아먹었으니까. 방구석 맥북 카메라 앞에서 MBC면접장에서 오상진을 마주한 전현무의 심정을 여실히 느꼈다.
나와 함께 면접을 본 지원자는 이름난 기업에서 현직 인사팀 직원으로 일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인성면접 30분 동안 내게 들어온 질문은 두 개였다. 왜 인사팀에서 일하고 싶어요? 취미가 뭐예요? 끝.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분이 걸렸다. 나머지 25분은 다른 지원자와의 질답이었다. 그러면 어떤 일을 하셨나요? 왜 퇴사하려고 하시는 거죠? 기업문화 담당하면서 힘들었던 점은요? 난 25분 동안 미소만 짓고 있었다.
대체 왜 직업을 갖고 계신 분이 인턴 면접을 보시는 거예요...라고 탓하는 것도 사람 참 추해지는 일이라서 그냥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면접관은 압박면접을 진행했다. 바뀌는 최저시급이 얼마인가요. 8750원입니다. (틀렸다. 8790원이었다) 통상임금과 보통 임금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죄송합니다. 모르겠습니다. 질문은 다양했지만 내 답변은 대체로 하나였다. "죄송합니다. 모르겠습니다."의 향연. 마지막 질문이 압권이었다.
순간 내가 쇼미더머니 예선에 나와 있는 줄 알았다. 나는 플렉스와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러니까 자랑할 만한 거리가 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다. 나머지 지원자 역시 당황한 듯했다. 숨 막히는 정적이 일었다. 그냥 와이파이 꺼진 척하고 노트북 접으려다가 손들고 외쳤다. "저는 제 자신이 도구입니다!" 면접관님이 날 보고 처음으로 웃었다.
저는다년간의아르바이트경험으로스트레스내구성과끈기와열정이있습니다영화관아르바이트를하면서얼음도맞아봤고카페알바를하면서하수구도퍼봤습니다뭐든지할수있습니다 spss포토샵프리미어이런정량적인툴들은충분히배워서해낼수있지만저의끈기와어쩌구저쩌구는... 아 네 알겠어요. 아 넵! ㅎㅎ
그렇게 그 면접은 역대급 망면접이 되어버렸다. 술자리에서 썰 풀 '망한면접'컨텐츠만 늘어난 셈이다. 다른 지원자님은 간결하고 깔끔하게 자신을 FLEX 했다. 통계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아서 HR 애널리틱스에 어쩌구 저쩌구. 그리고 결과는 정말 당연하게도 탈락.
슬프게도 이건 내 망한 면접 썰 중 극히 일부다. 수많은 자소서(설)을 썼다. 글 끼적거린 짬바가 있어서인가 희한하게 초라한 스펙에도 서류 합격은 했다. 문제는 그게 끝이라는 거다. 여러 번의 대기업 면접들은 내게 트라우마와 기업 불매만을 남긴 채 끝났다. 아니, 하나 더 남긴 게 있다. 본질적인 업에 대한 질문이다.
어릴 때부터 내 꿈은 PD였다. 특히 라디오 PD.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시대에 누가 라디오를 듣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이것도 나름의 타협을 거친 '장래희망'이다. 음악이 좋아서 가수가 되고 싶었는데 노래를 더럽게 못했다. 그래서 래퍼를 꿈꿨는데 랩은 노래보다 더 못했다. 그래서 DJ가 되고 싶었는데 세상에 DJ공채는 없더라. 그래서 라디오 PD가 되고 싶었다. PD가 되고 싶어 미디어학부에 진학했다. 꿈과 희망으로 똘똘 뭉쳐서 미디어글쓰기 첫 수업을 듣는데, 교수님이 'PD가 되고 싶으면 SKY를 가는 게 빠를 거다'라고 말씀했다. 그날부로 학교 안 가고 수능특강 다시 샀다. 결국엔 운 좋게 그 지긋지긋한 SKY에 오긴 했다.
음악이 좋았고 방송이 좋았고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좋았다. 그리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왜 사기업 면접을 보고 이렇게 한심한 패배 일기를 쓰고 있냐고 묻는다면.
막연하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라디오PD는 몇 년에 하나씩 자리가 난다지. 그리고 바늘구멍이라지. 논술이니 작문이니 시사상식이니 각종 시험을 거쳐야 하지. 그렇게 해서 딱 한 명 뽑는다지. 그 과정이 막연히 두려웠다. PD도 소위 말하는 '하늘에서 정해주는' 직업인 줄 알았다. 그리고 나는 그 한 사람이 될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사기업 면접도 똑같았다. 몇 번의 면접 실패로 깨달았다. 어차피 여기나 저기나 떨어지는 건 똑같다. 그러면 그냥 도전이라도 해 보자. 언론고시가 무서워서 취업하려 했는데 이젠 취업도 너무 너무 무서워서 이거 원 살 수가 있나...
그렇게 졸업을 앞둔 4학년 막 학기에, 여기저기서 '방송사의 몰락'을 외치는 뉴미디어의 시대에, 코로나로 취업 절벽에 내몰린 이 시국에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게 됐다. 2년간 묵혀놨던 브런치를 다시 시작한 것도 그 일환이다. 글은 써야 는다. 남들이 봐줘야 반성하고 발전한다. 그래서 쓴다. 이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떨어지면 이제 진짜 방송사 불매하고 넷플릭스만 봐야지. 우헤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