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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사진관 Oct 07. 2018

누구에게나 최고인 도시는 없다

일요일의 게으름_ ep 14

사람은 사진 빨을 받고, 여행지는 날씨 빨을 받는다. 로맨틱한 도시라 칭송받는 파리도 예외는 아니다. 파리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참 날씨 빨을 안 받는 나라이다. 물론 그것은 나의 여행 시점 선택의 문제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내가 파리에 갔던 때는 항상 겨울이었고 (물론 두 번 밖에 안 가봤지만), 여행 일정 중 하루 이상은 보슬보슬 비가 내렸다. 펑펑도 아니고 애매하게 보슬보슬.    

< 빗속의 Homeless or Street Musician @ 퐁피두 _ 2013 >

우중충한 하늘, 건조한 바람, 그러다 갑자기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은 내가 기억하는 파리의 주된 모습이 되었고 거기에 길거리에서 퍼지는 담배 연기와 항상 화가 난 듯한 사람들의 표정이 더해지니 파리를 좋게 기억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였다.     


사실 처음부터 파리가 나에게 안 좋은 인상을 주었던 것은 아니다. 우중충한 하늘이 로맨틱하게 보이던 때가 있었고,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도 운치 있게 보일 때가 있었다.      


처음 파리를 여행했던 스물셋 겨울. 영국에서 어학연수 중이었던 나는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마지막 여행지로 파리를 택했다. 런던과는 뭔가 다른 로맨틱함이 아름다웠고, 센 강에 떨어지는 빗방울까지도 로맨틱함의 결정체처럼 보였다. 그 아름다운 광경을 혼자 즐길 수밖에 없음이 슬프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는 몇 시간을 채 못 갔다.      


<길거리가 주차장이 되는 Paris _ 2013 >

환전을 미리 할리 없었던 게으른 여행자는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가지고 있던 파운드화를 유로화로 바꾸었다. 이 게으른 여행자는 예상대로 아무 계획 없이 파리에 도착했고, 숙소 주인아주머니의 추천에 따라 몽마르뜨 언덕에 가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말 잘 듣는 게으른 여행자는 10회권 메트로(파리의 지하철의 이름) 티켓을 구입하라는 아주머니의 조언대로 티켓을 구입했고 수중에 남은 유로화는 달랑 동전 몇 닢뿐이었다.      


‘몽마르뜨 가면 ATM기가 있겠지 뭐.’     


그렇게 나는 몽마르뜨 언덕에 대한 기대에 부푼 채로 메트로에 올랐다. 생각보다 지저분한 메트로와 그 특유의 냄새가 후각을 마비시켰지만 낭만의 도시 파리에 왔다는 생각만으로도 그저 행복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경찰관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나에게 다가왔다.      


“티켓 좀 보여 주시겠어요?”     


10회권 티켓을 사고 그 중 한 장을 사용한 후 버렸는데 티켓을 보여달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사실 프랑스 친구 중의 한 명이 파리에서는 지하철을 탈 때만 티켓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고 길바닥에 버려진 티켓들을 보며 당연히 필요 없겠지 하고 원래 있던 티켓들과 섞여 버릴 까 봐 버렸던 것이 화근이었다.      

“엇. 버렸는데요?”      


이때까지만 해도 나의 당당함은 하늘을 찔렀다.      

“그럼 당신은 무임승차고 10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셔야 합니다. 벌금을 현금으로 내실 수도 있고 카드로 결제하실 수도 있습니다.”     


응? 예산에 쪼들리는 팍팍한 대학생 여행자는 예상치 못한 벌금에 다소 당황했으나 웃으며 사정을 설명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특유의 패기로 주절주절 이야기보따리 풀기를 시작했다.        


“저는요. 사실 영국에서 공부하는 한국 학생이랍니다. 잠시 파리로 여행을 왔고요. 공항에서 환전을 하긴 했는데 메트로 10회권을 사느라 다 썼어요. 저는 지금 몽마르뜨 언덕에 가는 길인데요. 내려서 ATM에서 돈을 인출하려 했어요. 어떻게 하죠?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태의 심각성을 크게 파악하지 못하고 무임승차가 아님을 설명하는 것도 잊었다.


“그럼 신용카드로 벌금을 내실 수 있습니다. 여권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당시 대학생이던 내가 신용카드가 있을 리 만무했고, 준비 없는 게으른 여행자는 무거운 것은 딱 질색이라 여권은 항상 숙소에 두고 다녔다.     


“여권이 없고 돈도 없다는 말씀이시죠? 그러면 당신은 지금 경찰서로 가야 합니다.”     


경찰서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에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했다. 점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경찰서라니. 설마 나 여기서 추방되는 거 아니야? 한국 집으로 전화가 가면 어떻게 하지? 부모님이 엄청 놀라실 텐데.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당당함과 패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차가운 파리의 경찰관에게 자비로움 따윈 없어 보였다.  그제야 나는 내가 무임승차가 아님을 해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는 사실 10회권 티켓을 샀고요. 지금 9회권이 남아있어요. 지하철에서 내릴 때 티켓이 필요 없다고 해서 XXX 역에 버리고 왔어요. 저는 정말 무임승차가 아니에요. 그리고 여권은 숙소에 있어요. 불법체류자도 정말 아니에요.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저와 함께 몽마르트르 언덕에 내리셔서 이 카드로 현금을 함께 인출해서 벌금을 내도 될까요?”     


파리의 경찰관에게 몽마르뜨 언덕에 함께 내려 벌금을 인출해서 주겠다는 제안을 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오지만 당시에는 진정성 있게 호소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경찰서에 갈 수는 없었으니. 눈물을 흘리며 더듬더듬 영어를 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경찰관들의 눈빛에는 엄격함이 흘러넘쳤고, 이내 한 경찰관이 말했다.      


“당신은 카드로 벌금을 낼 수 있습니다. 이리 주세요.”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카드는 신용카드 기능이 없었고 단지 ATM기에서 인출만 가능한 체크카드였다. 결과는 뻔했지만 제발 그 카드가 오작동을 일으켜서 결재가 되기를 바라는 것 말고는 이 상황을 헤쳐나갈 방법이 없었다. 당연히 그 카드는 작동을 하지 않았다. 경찰관은 나에게 지금 당장 지하철에서 내려 경찰서에 가자며 다음 역에서 나를 끌어내렸다. 경찰서라는 곳이 주는 위압감에 나는 그저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지하철역 한 복판에서 마지막으로 경찰관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빠흐동. 빠흐동. 그런데 저 정말 무임승차 안 했어요. 정말입니다. 믿어주세요. XXX역 흰색 화분 옆 쓰레기통에 가면 제 티켓을 찾을 수 있어요. 진짜예요. 주저리주저리”     


나의 길고 긴 스토리에 지쳐서였을까. 기적이 일어났다.      


“그럼 당신이 가지고 있는 아홉 개의 표를 보여주세요.”      


무슨 영문인지는 알 길은 없었으나 눈물범벅이 된 나는 경찰관이 시키는 대로 가방에서 주섬주섬 아홉 개의 표를 찾아냈다. 그 경찰관은 티켓이 아홉개 임을 확인한 후 그중 하나를 집어 들고 절반을 찢었다.      


“앞으로는 절대 티켓을 버리지 마세요. 당신은 지금 티켓이 없으니 이 티켓으로 대신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경찰관들은 서둘러 다음 열차를 타고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한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시크한 파리의 경찰관은 나에게 그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어쨌든 결론은 나는 벌금을 내지 않았고, 경찰서에도 가지 않았다.      


그렇게 무임승차 에피소드는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지만 쌀쌀한 날씨 속에서 펑펑 울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 사람들이 그토록 찬양하던 몽마르뜨 언덕은 하나도 로맨틱하지 않았고, 우중충한 날씨는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혹시나 경찰서에 가면 한국의 부모님께 연락이 가지는 않을까, 추방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여러 걱정들로 인해 몸과 마음은 너무나도 지쳐있었다. 몽마르뜨 언덕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판매하는 수제비누의 향기는 지독한 향수처럼 내 머리를 지끈 거리게 했다.      


< 샹젤리제 거리 _ 2013 >

어차피 해가 일찍 지는 겨울의 유럽이었기에 나는 여행을 일찍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거리의 골목을 가득 채운 어둠과 부랑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파리를 공포의 도시로 변모시켰다. 겨우 숙소에 도착하자 그제야 안도감이 밀려왔다.      


‘휴. 다행이야.’      


그렇게 나의 첫 번째 파리행은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우중충하게 끝이 났다. 파리는 공포의 도시라는 공식을 남긴 채로.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나의 어학연수도 끝이 났다.      


한국에서의 삶은 바쁘게 돌아갔고, 어느새 나는 졸업을 했고 취업을 했다.      


“다종! 잘 지내지? 영국 언제 놀러 올 거야? 혹시 이번 겨울에 시간이 된다면 함께 파리 여행을 하고 싶어.”      

숨 가쁘게 살아가던 어느 날 영국 옥스퍼드에서 지내던 시절 나의 홈스테이 가족이었던 로라와 연락이 닿았다. 당시 영국을 떠나며 취업 후 꼭 다시 놀러 오겠다며 로라에게 약속을 했었다. 나에게 로라는 단지 하숙집 주인 그 이상이었다. 친구였고, 언니였고, 또 다른 가족이었다. 나는 로라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한국에서 선물을 한 아름 사들고 영국을 다시 찾았다. 자신의 고향인 파리에 함께 가자는 로라의 제안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로라와 함께라면 파리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을 지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파리에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 공포의 도시라는 인상을 지워버릴 기회를!       


옥스퍼드에 위치한 로라의 집에서 눈물의 재회를 한 후, 다음 날 새벽 우리는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분주하게 집을 나섰다.      


“로라. 나 액체류 화장품들이 있는데 이거 비행기에 가지고 탈 수 있어?”

“응. 상관없어. 그거 수하물로 부치면 시간 많이 걸리니까 그냥 작은 것들만 대충 챙겨서 비행기에 들고 타자.”     


나의 게으름은 저 멀리 영국에서도 빛을 발했고, 이에 질세라 로라의 게으름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통에 우리는 비행시간에 임박해서 겨우 공항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그나마 우리를 태운 새벽 택시가 전력질주로 달렸으니 망정이지 내 운전속도로 갔으면 파리행 티켓 두장은 그 자리에서 공수표가 되어버렸으리.      


목숨을 건 레이스로 우리를 루턴 공항까지 데려다준 기사 아저씨에게 짧은 작별인사를 고하고 우린 다시 한번 전력질주를 해야 했다. 이번엔 두 발로.      


무사히 탑승 수속을 끝내고 안전하게 비행기에 탑승하는 줄 알았던 찰나 우리의 질주는 비행시간을 10분 앞둔 시점에서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손님. 이 물건들은 뭐죠?”     


그랬다. 액체류 화장품들이 화근이었다. 공항에서는 조그마한 지퍼백을 1파운드에 팔고 있었고, 그 지퍼백에 액체류를 넣은 후 X-ray 확인 절차를 거치면 되는데 로라의 가방에서 지퍼백에 넣지 않은 액체류가 다량 발각된 것이다. 순간 우리는 테러리스트 저리 가라 할 만한 취조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 순순히 응할 로라가 아니었다.      


“뭐긴요. 화장품 처음 보세요? 저는 지금 비행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행기를 놓치게 된다면 당신이 보상을 해줄 건 가요? 왓.. 더...!!”


로라는 적반하장 격으로 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형적 영국인처럼 생겨 뚱뚱한 배를 뽐내던 공항 직원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로라가 조곤조곤 따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곤 했는데 이번엔 달랐다. (물론 남자를 상대로. 로라는 상당한 미인이다.) 직원도 질 줄 몰랐으며, 로라도 언성을 높였다.      


결론은? 로라의 승리!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액체류 화장품 중 절반 이상을 버려야만 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절반의 승리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우리는 가뿐 숨을 내쉬며 다리 힘이 풀린 채로 무사히 아주 무사히 파리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여행을 시작 하기도 전에 지쳐있었고 지친 나의 어깨에 떨어지던 파리의 빗방울은 나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 2번째 Paris 입성 _ 2013 >


새벽부터 졸린 눈을 비비며 질주로 시작된 여행은 편할리 없었고, 어니언 수프를 먹어도,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을 봐도 그저 편하게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물론 그날 저녁 로라의 프랑스인 친구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싸이의 말 춤을 춘 것은 유일하게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저 우중충한 회색 빛으로만 남아있다. 그랬다. 나의 두 번째 파리행도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여전히 파리는 나의 여행 위시리스트에서 몇 년째 최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 달리 전시회가 열리고 있던 퐁피두 _ 2013 >

여행지는 여러 가지 변수들에 의해 다르게 기억되고, 다르게 기록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도시도, 절대적으로 끔찍한 도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제가 10일간 여행을 하려 하는데요. 어떤 도시가 제일 좋을까요? 한 곳만 추천해주세요.”라는 질문은 넣어두시라. 당신의 마음이 이끄는 도시를 따르면 그곳이 당신만의 최고의 도시가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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