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게으름_ ep19.
돌아보면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부모님을 졸라 구입한 디지털카메라로 봄이 되면 교정의 풍경을 촬영하곤 했고, 대학시절 비록 D+ 도 아닌 D0를 받아 재수강을 해야 했지만 사진 관련 교양과목을 수강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사진에 대한 애정은 그칠 줄 몰라서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속에는 항상 미러리스 카메라를 크로스로 매고 있는 내가 등장한다. 그렇게 분신처럼 매고 다닌 카메라로 포착한 사진들을 모아 독립출판축제에서 엽서전을 하고, 여행 사진을 위한 인스타그램 계정을 따로 가지고 있을 정도로 사진에 대한 애정이 깊지만 우습게도 나는 카메라의 수동 기능을 하나도, 단 하나도 조작할 줄 모른다.
“수동 기능을 조작할 줄 모르면서 좋은 카메라 왜 쓰냐?”
사진은 무조건 인텔리전트 자동 모드로 찍는다는 나에게 한 친구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나는 사진을 잘은 모르지만 수동 기능으로 색감을 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구도와 장면을 잘 포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눈 앞에 아름다운 장면이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는데, 이 아름다움은 시시 각각 변하는데 언제 수동 기능을 하나하나 만지고 있으란 말인가.
사실 카메라 조작법을 배워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진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절 수동 키 조작법을 배우러 다녔다. 선생님의 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모범생 모드로 맨 앞줄에 앉아 필기도 열심히 했건만 화이트 밸런스, 조리개, 셔터스피드 이런 용어들은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지도 않을뿐더러 사진 찍는 일을 너무 복잡한 일로 만들었다. 필기는 누구보다 부지런히 했지만 그 모는 것들을 숙지하기에 내 지적 능력은 너무나도 게을렀다.
‘역시 게으른 자에게는 인텔리전트 자동 모드만 한 것이 없군.’
대신 나는 사진을 여러 장 찍은 후 보정에 더 심혈을 기울인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여러 장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최고의 사진을 골라 보정을 하다 보면 새삼 삶에 대한 통찰을 얻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아니 똑같은 사진을 뭐 이렇게 많이 찍어놨어.’
사진기에는 보통 같은 뷰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적게는 두 세장에서 많게는 열 장 정도가 있기 마련인데 분명 한 장의 사진만 봤을 때는 그 사진이 가장 아름답고 멋져 보인다. 그런데 키보드의 화살표 키를 눌러 다음 사진으로 넘어가는 순간 완벽하다고 믿었던, 바로 직전에 봤던 사진이 여기저기 비뚤어져서 구도도 맞지 않아 보이는 건 물론 지나가는 사람의 몸동작 까지도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다 문득 사진을 감상하는 행위가 우리의 삶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만을 바라봤을 때는 꽤 만족스럽다가도 조금이라도 멋지게 보이는 타인의 삶을 접하는 순간 불만족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사진을 감상하는 행위와는 달라서 마음에 안 드는 사진은 delect 키 하나로 간단히 지우면 그만이지만 삶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어떻게든 이리저리 색감을 보정도 해보고, 비뚤어진 기울기를 조정해봐도 남과 비교를 하는 순간 불만족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에라이. 조금 비뚤어지고, 색감이 엉망이면 어때!’
살아있는 마지막 날까지 끊임없는 수정을 거쳐도 100% 만족할 수 없는 게 인생이라면 그냥 좀 비뚤어지고 색감이 엉망이면 어떤가. 어차피 사진도, 인생도 완벽이라는 것은 없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