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게으름_ep16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행지에서 가장 기대되는 것 중의 하나는 재래시장에 가는 것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잘 가지 않는 재래시장을 찾는 이유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재래시장에 가는 것은 참 재미있다.
신선한 과일부터 골동품, 액세서리까지 재미있는 물건들이 참 많다. 어떤 재래시장은 역한 생선 냄새로 코를 비틀어 막게 하기도 했고, 어떤 재래시장은 한국어 상표가 달린 상품을 취급하고 있어서 마치 동대문에 온 듯한 느낌을 들게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재래시장은 재미있다. 어마어마하게 비싼 물건도 아니지만, 상점 주인과 흥정하는 재미,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 나만의 기념품을 찾는 재미. 엄청나게 특별한 물건이 아니더라도, 한국에 오면 이거 왜 샀지 하는 물건이더라도 재래시장에 놓인 물건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였을까. 멜버른에 도착한 나는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퀸 빅토리아 마켓을 구경하기 위해 나섰다. 캥거루 열쇠고리, 코알라 인형, 핸드메이드 팔찌, 신선한 과일 등 마켓에는 아기자기한 것들과 살 만한 것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핸드메이드 팔찌였다. 원하는 색깔의 실을 골라 원하는 대로 이니셜을 넣을 수도 있는 세상 하나뿐인 팔찌를 만들 수 있었다. 실의 색상을 한 참 고민하고, 어떻게 팔찌를 꾸밀지 고민한 끝에 결제하려는 순간! 아뿔싸! 이 준비 없는 게으른 여행자는 자신의 충동 구매력을 잊은 채 신용카드만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닌가! 그 와중에 뜬금없이 식욕이 발동하여, 점심을 먹고 현금을 다시 챙겨올 생각으로 마켓 직원에게 물었다.
“What time do you close?”
그러자 상상도 못 한 답변이 돌아왔다.
“Around 1:00 .”
관광지에서 1시에 문을 닫는다고? 한창 번화할 시간에 문을 닫는다니 이게 무슨 소리?!!!
나는 내 두 귀를 의심하며 다시 물었다.
“Sorry? 1:00 P.M??!”
“Yes.”
“Why?!!”
그러자 돌아온 너무 간단한 답변.
“Because everyone wants to go home!”
순간 밀려오는 민망함에 할 말을 잃었다. 그렇다. 장사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쉬는 날이 있어야 하는데 주말도 없이 영업하는 사람들에게, 심지어 오전 6시 오픈하는 사람들에게 왜 1시에 퇴근하냐고 묻다니! 이 무슨 투어리스트의 갑질인가! 순간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다음날 다시 오겠노라 약속하고 마켓을 떠났다.
24시 편의점, 연휴에도 영업하는 대형마트와 백화점들에 너무 익숙해진 나에게 성수기 관광지에서 오후 1시에 문을 닫는 시장은 가히 충격적이었지만 시장 상인들의 삶의 질에 대해 생각해보니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이였다. (물론 오해는 마시라! 매일 오후 1시에 문을 닫는 것은 아니다. 금요일은 오후 5시까지 영업하기도 하고 여름에는 나이트 마켓을 운영하기도 한다. 영업시간에 관한 내용은 방문 전 퀸 빅토리아 마켓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길)
퀸 빅토리아 마켓의 영업시간은 나로 하여금 너무 당연하다 여기는 사실들이 때론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은 사실이며, 너무 당연하지 않다 여기는 사실들이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일 수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5시 땡하고 퇴근하는 나를 보며 가끔 장난 섞인 말투로 “선생님 왜 칼퇴근하세요!”하고 당돌하게 묻는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왜냐하면 모두가 집에 가고 싶어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