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나답게_한수희
나와 예성이 처음 서로에게 끌렸던 건 서로 닮은 구석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살면 살수록 나와 남편은 서로 참 많이 달랐다. 어떤 다름으로 인해 서운해하기도 하고, 어떤 다름으로 인해 고마워하기도 한다. 여하튼 서로 다른 우리가 어렵게 찾은 공동의 취미 하나가 '책'이다. 읽는 책의 종류는 여전히 상극이다. 나는 주로 문학, 시, 에세이, 그림책 계열을 읽는다면 예성은 경영이나 자기계발 서적을 즐겨 읽는다. 그런 둘이서 동시에 맘이 간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이 바로 '온전히 나답게'이다.
한창 '나답게'를 둘러싼 고민에 흠뻑 젖어있을 때 이 책을 발견했다. 결혼 1주년을 기념하여 제주도 여행을 갔는데, '소심한 책방'이라는 작은 독립서점의 책꽂이에 꽂혀있었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삶일까? 무엇이 가장 나다운 것일까?'라는 식의 고민을 안은 채 아무것도 못하는 중이었다. 생각과 행동의 진행을 어느 방향으로 뚫어나가야 할지 막막했던 터였다. 나답지 않은 것은 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내가 해야 할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렇게 내 삶이 일시정지된 듯한 기분을 지우지 못하던 중이었다.
그 와중에 마주한 '온전히 나답게'라는 책 제목이 무지 반가웠다. 해결책에 대한 기대보다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한 어떤 인생 언니의 썰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책을 뽑아 서문을 읽으면서 이 책을 사고 싶어져버렸다. 다음 문장 때문이었다.
나는 '나답다'거나 '자신답다'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
어쩌면 '나다운 것', '자신다운 것', '내가 원하는 것', '내가 꿈꾸는 것', '자신의 속도대로', '자신의 방향대로' 같은 말들에 너무 매달리기에,
오히려 살아가는 일이 더 힘들어지는 건 아닐까.(8p)
속이 시원했다. 당시 내가 느끼고는 있지만 뭔지 몰라 표현하지 못했던 무게감과 피로감이 건드려졌다. 저렇게 이야기한 저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제목을 '온전히 나답게'로 정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리고 나 역시도 피곤하고 버거움에도 불구하고 '나다운 삶'에 대한 탐색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걸 위해서 다른 사람의 탐색 과정을 훔쳐보고 싶었다.
예성이가 좋아하지 않을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 책을 들고 갔다. 걱정이 무색하게 의외로 바로 사자고 했다. 책 제목을 보더니 자신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대화를 안 하는 편도 아닌데, 사실 그때 처음 알았다. 나와 많은 게 다른 남편도 자기답게 살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책의 존재를 통해 우리 둘 이외에도 참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왜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난 '나다운 삶'에 대한 고민을 나만, 혹은 굉장히 소수만 하는 고민인 줄 알았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자기답게 살고 있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나답게 사는 삶에 대한 고민에 가치를 두지 않고 그 밖에도 중요한 다른 것들에 집중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이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나다운 삶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음을 알아버렸다. 당혹감 비슷한 게 찾아왔다. '나답게'라는 이름의 고민으로 느끼는 피로감도 있었지만, 그 고민이 나를 소수의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 당혹감 이후에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나 말고 내 남편도, 이 책의 작가님도, 그리도 다른 많은 사람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게 외로움을 덜어주었다. 그리고 언젠가 이 우주에 존재할 나와 예성의 아이들도 이런 고민을 할 시기가 오겠다는 생각이 드니 문득 두근거렸다. 내가 나다운 삶을 찾아가기 위해 한 고민과 시행착오들, 그 의미 있던 여정들을 그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상상을 했다. 그렇게 내 안의 멈춰있던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오랜만에 움직이기 시작한 바퀴가 멈추지 않고 굴러갈 원심력을 얻었다. 나다운 게 아니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그렇다고 나다운 게 뭔지도 몰라 멈춰있을 수밖에 없던 내가 하고 싶은 게 많아진 것이다.
1. 읽고 싶은 책: <사는 게 뭐라고>, <단순한 열정>, <고등어를 금하노라>, <브리짓 존스의 일기>, <브리짓 존스의 애인>, <라이프>,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LIFE>, <스마트한 여자의 유쾌한 왕수다> 등
2. 듣고 싶은 음악: 에디 히긴스 트리오 음악
3. 그 외 하고 싶은 무언가: 소풍, 재즈 페스티벌, 생협 등
이 목록은 내가 스스로에 대해 깊이 생각해서 기록한 것들이 아니다. 죄다 이 책의 작가님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한다고 이야기한 것들이다. 이 중에서 나다운 게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다. 어릴 때 멋져 보이는 언니를 만나면 그 언니가 쓰는 말투, 그 언니가 입고 있는 옷, 그 언니가 좋아하는 가수를 다 따라 해보고 싶었던 마음과 비슷하다. 스스로답게 살아가는 인생 선배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냥 나도 따라 해보고 싶었다. 그게 나다운 것을 찾아가는 여러 시작점 중 하나일 거 같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에디 히긴스 트리오 음악을 틀어놓고 있다. 얼마 전에 생일 선물로 남편에게 요리 에세이 책인 'LIFE'를 중고 책으로 사달라고 졸랐고, 지금 내 침대 옆 탁상을 그 책이 차지하고 있다. 취향 저격이다.
그런 스스로를 보며 느꼈다. 나다운 것에 대한 나의 고민의 무게가 굉장히 가벼워졌다.
이 가벼움이 참 좋다. '이다정다운' 것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있을 것이라고, 그 정답을 빨리 찾아야 한다고 시험을 보는 수험생처럼 무겁게 긴장하고 있던 내 모습이 서서히 사라졌다. 결국에는 내가 살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이 일상이 나다운 삶의 여러 답 중 하나였다. 나다운 삶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할 순간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 삶이 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 이 순간에도 가능하고, 내가 이미 그렇게 살아가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다운 일상들의 평범함이 소중하게 와 닿으니 그 순간들이 날아가지 않도록 기록하여 간직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내 이름 '다정'에서 이름을 따온 '오늘의 다정함'이라는 블로그를 시작하게 됐다.
뭐라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고, 무언가를 하고 있는 거다. 내가 얼마나 겁 많고 게으른지 알기에, 이런 움직임은 무척이나 소중하다.
그렇게 눌리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멀지 않은 귀중한 지금,
온전히 나다운 '오늘의 다정함' 누리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