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 말아야 할 소리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_히가시노 게이고

by 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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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 있을 때, 스마트폰이 카메라 이외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 로밍도 안 해 갔고, 아무것도 없는 몽골답게 와이파이 역시 잘 없었다. 덕분에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핸드폰을 손에서 떼어 놓고 지냈는데 그게 참 허전하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했다. 담배 끊어낸 사람들이 삶이 달라졌다고 이야기하는 기분과 조금은 비슷할까(그렇지만 IT 강국 한국에 내 발을 딛기도 전에, 비행기의 바퀴가 한국 땅에 닫자마자 바로 스마트폰의 노예로 회귀했지).


몽골여행 중 자유 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면 그 텅 빈 곳에서 할 게 많지 않았다. 그럴 때면 전자책으로 가져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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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다는 이유로 두꺼운 책은 잘 안 읽었었다. 하지만 이러다가는 일정 두께 이상의 책들은 평생 못 읽을 것 같아 아쉬웠다. 아날로그 덕후인 나지만, 무기로 써도 될 만한 두터운 책을 가볍게 들고 다니며 볼 수 있는 전자책에 관심이 갔었다. 고맙게도 남편이 퇴사 기념으로 전자책을 선물해줬다. 시간 부자가 됐으니 그 어떤 긴 장편 책도 맘껏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도 613페이지에 이르는, 내게 제법 두꺼운 책이기에 이 전자책이 아니었다면 평생 안 읽었을 수도 있다. 특히 몽골까지 가는 데 그 무거운 책을 들고 갈리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몽골의 초원을 가르는 버스 안에서, 천장이 예쁜 게르 안에서, 세상 좋아진 것을 실감하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어나갔다. 전자책이라 화면 조명이 있어서 불 꺼진 게르에서 잠이 오지 않을 때도 다른 불빛 없이 편히 읽다 잠들 수 있었다.

책이 재미있어서 읽는 기분이 참 오랜만이었다. 줄곧 책과 가까이 있으려 노력하지만 '책의 재미'가 아닌 '책으로 성장할 욕구'가 그 동기였음을 마주했다. 문득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리 포터를 읽던 초등학생 이다정이 떠올랐다. 그때는 책을 읽는 행위가 세상 재미있는 '놀이'였는데, 어른이 된 나는 책 읽기를 '숙제'로 대하고 있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오랜만에 나를 다시 책으로 '놀게' 한 무척 고마운 책이다.

나미야 잡화점을 가운데에 두고 시간을 뛰어넘은 다양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소설의 주인공들이 늘 그렇듯, 각 캐릭터마다 극복해야 할 어려움을 가지고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따뜻했던 건, 주인공들은 나미야 잡화점에 고민 상담 편지를 보내고, 또 그 고민 상담 편지에 서로 답장을 하며 선택의 기로를 누군가와 함께 걸어간다. 결국 선택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어도, 그 과정에서 공유하는 진심은 선택하는 이를 더 솔직하고 용기 있게 만든다. 그리고 타인의 고민을 기꺼이 듣고 응답하는 이의 삶을 더 소중하게 만든다.

낯선 사람의 고민이 다가왔을 때,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어도 기꺼이 본인의 시간과 진심을 내어줄 수 있는 일은 무척 가치 있는 일이었다. 동시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장사가 잘 안 되는 작은 잡화점의 외로운 할아버지어도, 스스로를 별 볼일 없다 여기는 좀도둑이어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욕구'가 인간 안에 있는 보편적인 욕구라는 것을 확인하며 마음이 말랑해졌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


때때로 지인들의 힘든 마음을 듣게 될 때, 그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할 수 없어 덩달아 슬플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어렸을 때 읽었던 <모모>를 떠올린다. 마을 사람들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모모를 찾아갔다. 모모가 하는 것은 그저 듣는 것이었다. 모모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모모의 눈을 보며 본인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스스로 찾아냈다. 그렇게 사람들은 계속 모모를 찾아갔다. 나도 모모를 따라 하면서 가만히 있을 때가 많았다. 실제로 그걸로 충분했다.


그에 비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 사람들의 고민에 답을 했던 좀도둑들은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경계선을 넘는 무례한 답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고민 상담을 요청한 사람들은 그 감정적이고 서툰 답변도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알아서 잘 소화해냈다. 그 이유는 막말같은 답변을 하는 것 같은 좀도둑들에게도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가 말했던

'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하지 않는 태도'

가 중심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결국에는 말을 않고 듣는 사람이든, 듣고 조언을 마구 하는 사람이든 그 성향에 관계없이 '나의 마음을 무시하지 않는 사람'이 간절한 건가 보다. 나는 너에게 그런 사람이고 있을까. 위에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이라고 써 놓긴 했는데, 역시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쉽지가 않다. 나의 작은 마음도 무시하지 않는 고마운 이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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