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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히 Aug 30. 2018

3. 짐을 잃었다

캐리어 몽땅 분실 사건 

진짜 짐을 잃었다

밤 11시에 오기로 한 짐을 졸다가 깨다가 하며 기다렸다. 도착하면 전화를 주기로 한 배달원을 믿고 휴대폰 옆에 꼭 붙어있었다. 하지만 결국 전화가 오지 않았고, 너무나 졸렸던 우리는 다음 날 일어나는 대로 배달원에게 연락해보기로 하고 잠에 들었다. 무슨 사정이 생겼겠거니 하면서. 뭔진 몰라도 해결 가능한 사정이겠지 생각했었다. 무지 졸리면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기가 쉬워진다.  



다음 날 아침 일곱 시쯤 배달원에게 전화를 했다. 어젯밤에 우리 짐을 배달해 주기로 하지 않았냐, 도착하면 전화한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전화가 오지 않았다 하니 배달원이 다짜고짜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 남자가 인도식 영어 발음을 구사했기 때문에 내 부족한 영어로 알아듣기 힘들었는데, 화까지 내니 더욱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다. 

그래도 용케 알아들은 요는, 자기는 우리 짐을 배달했다는 거였다. 정말 이게 무슨 소리인가.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내 몸속 침착함을 다 끌어모아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영어로 싸우는 게 영어가 제일 잘 느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영어를 썼지만 상황이 급박하니 잠자고 있던 영어 세포들이 강제 기상했다. 당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으로 배달원에게 할 말들을 해나갔다. 도착하면 네가 전화 주기로 했지만 전화가 안 왔고, 짐을 줄 때 수령인의 이름을 확인을 하고 주는 게 배달원의 기본 업무 절차인데 이름 확인도 없이 짐을 엉뚱한 사람한테 준 것이냐 되물었다. 배달원은 또 화를 내더니 우리 전화를 끊어 버렸다. 다시 해 봐도 받지를 않았다. 

우리의 두 달 반을 책임질 46kg의 짐을 이렇게 통째로 잃는 것인가 생각하니 아득해졌다.  

점점 시야가 흐릿해지는 할머니가 손녀딸 생각하며 손수 만들어준 린넨 피크닉 매트, 연애시절에 친구와 유럽 여행에 간 예성이가 이탈리아를 다 뒤져서 선물해 준 크로스백(내 유일한 가죽 가방), 여행의 순간들을 그리려고 야심 차게 준비한 고체 물감, 좋아하는 색만 신중히 골라온 한 뭉치의 색연필들, 친구가 생일에 선물해 준 진주 귀걸이. 

캐리어에 고이 넣어둔 나의 애정 묻은 물건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 짐 안에 있는 것 중에서 제일 속상한 게 뭔지 알아?"라고 예성이가 말했다. 뭐냐고 물었더니 "어머님이 너 결혼식 때 신으라고 선물해주신 구두." 3만 원 이하의 구두만 가득한 내 신발장에서 유일하게 20만 원 가까웠던 딱 한 짝의 구두였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내 결혼식을 포함해서 좋은 곳에 갈 때마다 엄마 생각하며 신었던 구두였는데. 맘이 쿡쿡 쑤셨다. 본인 짐도 다 잃어버린 와중에 내 구두를 제일 아까워하는 예성이가 고맙기도 했다.  


그리운 내 하얀 구두




책임보다 사람 

배달원과의 통화 후, 이 일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을 때 에어비앤비 호스트 카린이 나타났다. 막 일어나 눈곱만 뗀 카린은 멘붕이 된 우리를 대신해 직접 전화통을 붙들고 애써주었다. 카린이 배달원한테 다시 전화했지만, 배달원은 또 화를 내고 끊었다. 카린은 바로 KLM 항공사에 연락해 우리 상황을 전해줬다. 항공사 직원 왈, 전산상으로 우리 짐이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있다고 나오고, 배달이 되면 그 역시 전산에 떠야 하는 것이라며, 아무래도 배달원에게 착오가 있었던 것 같으니 걱정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도대체 그 배달원은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불행 중 희망을 붙잡았다.

그래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우리 짐을 배달하겠다고 예성이 개인 휴대전화로 직접 전화한 배달원을 없던 일 취급하는 건 말이 안 됐다. 우리 짐이 항공사 직원들 말대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있는 가능성, 배달원 말대로 다른 사람들한테 배달원이 우리 짐을 줘버린 가능성, 우리 짐을 배달원이 훔친 가능성까지도 생각하며, 적어도 독일에 있는 동안만큼은 짐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기로 했다. 항공사는 물론이고, 주 독일 한국 대사관, 뷔르츠부르크 경찰, 프랑크푸르트 공항, 프랑크푸르트 공항 분실물 센터, 뷔르츠부르크 분실물 센터 등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모든 곳에 연락을 했다. 뮌헨에 가서는 경찰서까지 찾아갔다. 

그렇게 잃어버린 짐과 씨름하며 보낸 시간이 열흘 정도이다. 그 과정에서 제일 많이 들은 소리가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소리였다. 정작 책임이 있는 항공사는 전산상으로 문제가 없으므로 기다리라는 소리만 반복했다. 항공사 고객 센터의 직원들에게 우리가 갖고 있는 배달원 연락처를 줄 테니 직접 전화를 해서라도 배달 회사를 알아봐 달라 요청했는데 본인들 책임이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 서러운 와중에 본인들의 책임이 아니어도 우릴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다. 독일에서 만난 세 명의 은인이다. 

첫 번째 은인은 에어비앤비 호스트 카린이 있었다. 우리는 카린의 집 1층에 머물렀고, 클라리넷 선생님인 카린은 2층에서 지내며 클라리넷 레슨을 했다. 카린은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자기 일을 미루고라도 우릴 도와주었다.



우리가 그 집에 있을 때뿐 아니라 떠나고 나서도 계속 연락을 주고, 뷔르츠부르크 경찰에게 신고도 해주고, 증인 역할로 항공사 담당자와 통화도 해줬다. 우릴 위해 쓴 시간이 많다. 월드컵 독일 전이 끝나고 나서는 우리한테 축하한다고 메시지까지 왔다. 참 그릇이 큰 사람이다. 

두 번째 은인은 주 독일 한국 대사관 프런트 직원이었던 이보니에스라는 아줌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구하고 싶어 대사관에 전화했었다. 이런 상황은 항공사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대사관의 일도, 본인 담당의 일도 아니었지만, 이보니에스 본인도 KLM 항공사를 이용했을 때 수하물 분실을 경험했어서 우리의 고충을 진심으로 공감해 주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일하는 자신의 친구를 통해서 우리 짐의 행방을 알아봐 주고, 내가 KLM 항공사 직원과 나누는 이메일을 같이 공유해달라고 해서 우리가 어떤 식으로 항공사에 요구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조언을 해 주었다. 항공사 담당자가 우리의 요청을 가볍게 여기지 않도록 담당자와 본인이 직접 통화도 해 주었다. 얼굴 한 번 못 본 사이지만, 정말 의지가 됐던 따뜻한 아줌마다. 

마지막 세 번째 은인은 뮌헨에서 만난 연방 경찰서 경찰이다. 한국에서도 경찰서에 간 적이 없는데, 독일에서 처음 가봤다. 죄진 것도 아니었지만, 심장이 쿵쾅거렸다. 숨 한번 고르고 뮌헨 중앙역 귀퉁이에 'Federal Police' 표시가 있는  작은 문을 통과했다. 문 뒤에 바로 여러 겹의 방화벽이 나타났다. 인터폰을 통해 우리 사정을 설명하니 방화벽 하나하나가 열려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작은 문안에 제법 널찍한 경찰 사무실이 있었다. 마치 해리 포터에서 킹스 크로스  9와 3/4 승강장을 뚫고 들어간 기분이었다.


경찰서 다녀온 건 기념하고 싶어 찍은 문 사진


짐 분실은 항공사를 통해 처리해야 하는 것을 알지만, 꿈쩍도 안 하고 기다리라고만 하는 항공사 이야기를 하며, 세상 제일 속상한 표정과 덜덜거리는 목소리로 호소했더니, 우리를 진심으로 안쓰러워했다. 한 잘생긴 경찰분(진짜 배우급이었다)이 본인 업무로 보고 처리도 할 일도 아닌데도 적극적으로 나서 주었다. 

미남 경찰은 두 시간 정도를 우리 일에 할애했다. 우리 전화를 피하던 배달원은 경찰이 전화를 하니 차마 전화를 끊지 못했다. 전화 조사 결과, 배달원은 이름 확인 없이 우리 짐을 한 유럽인 커플에게 주었다고 말했다. 우리 이름만 봐도 동양인 느낌이 날 텐데, 유럽인 커플이라니 기가 막혔다. 매일 기다리라고만 했던 항공사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도 경찰이 직접 항공사에 전화했을 때부터였다. 다음 날 바로 우리 짐 문제에 대해 항공사 담당자가 연락이 오고, 배달 회사를 찾아내 알려줬다. 경찰이 세긴 세구나 싶었다. 

경찰의 도움으로 짐이 우리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도 헛된 희망 없이 명확한 사실을 안 것 자체가 속 시원했다. 본인 책임이 아니어도 애써 준 경찰분께 참 고마웠다. 처음엔 예성이와 함께 그 독일 경찰 너무 멋지다, 진짜 잘생겼다고 난리 난리 하다가, 내가 좀 절제 못하고 과해져서 예성이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내 책임이 아닌 일은 신경 끄고 살았었는데, 이제는 책임 뒤에 숨지 않아야겠어."


경찰서를 나오며 예성이가 했던 말인데, 내 맘속에도 깊게 남았다. 본인 책임이 아니어도 우리를 보고 
기꺼이 도와준 세 분 덕에 다사다난했던 독일에서의 시간을 감사로, 추억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우리도 때때로 책임을 핑계로 숨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필요한 오지랖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돼야지 결심했다. 




아주 좋아하는 것과 꼭 필요한 것으로 가득 채운 46kg의 짐은 이제 정말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우리 짐을 자기들 것처럼 가져갔다는 유럽인 커플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캐리어를 망치로 부시고 열어서 내가 아끼는 롱 원피스를 걸쳐 보려나. 그들에겐 내 롱 원피스가 미니 원피스쯤 되겠지. 225mm짜리 구두에 큰 발을 구겨 넣어 보려나. 이왕 가져갔으니 버리지 말고 예쁘게 신어주면 좋겠는데. 딱히 돈 되는 건 없어서 실망하려나. 그들에게마저 버려진 나머지 짐들은 어디 있을까. 아쉬운 맘이 쉽게 사라지진 않는다. 

성격상 잃어버린 걸 잃어버린 것만으로 끝내지 못한다. 그럼 참 쿨할 텐데 말이다. 그 와중에도 얻은 것들을 뽑아내야 마음이 놓이는 걸 어쩐다. 

1. 그래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


노트북, 카메라 등의 전자기기들은 비행기 탈 때 들고 탔기 때문에 무사했다. 출국 직전에 캐리어 무게가 23kg 무게 제한을 넘어서 비행기에 들고 탈 배낭에 급히 몇 가지를 옮겨 넣었다. 그 순간이 두고두고 다행스럽다.

배낭 제일 밑에 깔아 둔 햇반 15개는 파스타와 빵에 질리는 순간마다 큰 위로가 됐다.  마스크 팩이 장사해도 될 만큼 있었기에 그 와중에 피부를 놓치지 않았다. 여행 기분 내고 싶어 산 매니큐어들이 용케 배낭에 들어있어 발톱을 칠했다. 기력이 딸릴 때마다 챙겨 먹으려고 가져온 홍삼 약은 피곤할 때마다 든든한 해결사 역할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향의 조그마한 패브릭 퍼퓸도 가방 옆구리에 넣어두었었는데, 매일 똑같은 옷 입는 우울한 기분을 달래주었다. 

꼭 필요한 것들은 사라져 버렸지만, 꼭 필요하진 않아도 나름의 쓸모가 있는 것들 덕에 든든했다. 

2. 그 와중에 얻은 것 
-마땅한 요구
못하는 게 좀 많지만, 특히 컴플레인하는 거는 진짜 못했다. 우리 엄마는 컴플레인을 참 잘했는데, 어릴 때부터 엄마가 컴플레인 시동 걸 때마다 엄마 입을 막으며 말리거나, 멀리 떨어져 딸 아닌 척했다. 

어느덧 내가 어른이 되어 항의를 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했을 때도 열에 아홉은 '에이, 됐다'하며 참고 지나갔다. 쑥스러움이 굉장히 많아 할 말도 잘 못하고,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무척 두려웠다. 기껏 요구했다가 거절당할 것이 걱정됐다. 내 권리에 대해 주장하고 싶고 그게 마땅한 걸 알아도 자꾸 피했다. 
그런데 이번 시간 동안 내가 28년을 살며 해 온 컴플레인의 총 양을 월등히 뛰어넘을 만큼의 컴플레인을 한꺼번에 해냈다. ‘해보고, 아님 말고’의 정신으로 마땅한 요구를 할 수 있는 훈련을 한 것이다. 요구 능력 탑재 후 사라진 짐에 대한 보상 절차를 밟고 있다. 좀 더 어른이 된 기분이다. 

-소유

우리에게 남은 모든 짐을 거뜬히 들고 걷는 예성. 두 달 반 여행을 3박 4일 여행같이 보이게 하는 짐의 양이다.


여행을 할 때의 짐은 우리가 가진 소유 그 자체다. 처음에는 우리의 주 소유물이 통째로 사라지니 여행이 통째로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웬만한 일은 그러려니 하며 넘길 수 있는 난데, 짐이 사라진 것은 그게 쉽지가 않았다. 왠지 이 여행은 시작부터 끝난 것 같고 아주 망한 것 같았다. 괜히 여행을 온 건가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흘러서 우리 여행을 돌아보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는, 우리의 여행은 망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가 소유했던 많은 것들이 사라졌지만, 없을 때는 없는 대로, 필요할 때는 그때그때 새로 구해서 여행을 이어가고 있다. ‘무소유’의 삶을 살 자신은 없다. 그래도 내가 소유한 것들을 내려놓는 연습을 조금은 한 것 같다. 
사라진 것들에 대해 아깝고 화가 날 때마다 ‘우리가 소유한 건 우리 게 아니다. 어차피 하나님 거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 것이기에 꽉 쥐고 있을 때 괴로웠던 마음이, 하나님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평안해졌다.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여행을 즐겁게 이어갈 수 있었던 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의 두 번째 장을 준비하는 여행이기에 이 여행의 이름을 Chapter 1.5 여행이라 지었는데, 그 이름에 딱 어울리는 경험을 했다. 우리의 Chapter 2에는 본격적으로 우리의 소유라 여길 만한 것들을 쌓아갈 예정이었다. 확언할 수 없지만, 그러고 싶었다. 직장, 집, 자식, 돈 등 말이다. 지금은 소유한 것이 없어 용감해 보이는 일들도 할 수 있었더라도, 잃을 게 많아질수록 두려운 것들도 많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잃어버린 짐을 통해 배운 걸 애써서 기억하며 살고 싶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은 우리 손안에 있는 것들이 아니라는 것. 하나님 것이기에 더 있을 때도 덜 있을 때도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는 것. 주어진 것 안에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잃을 걸 두려워 말자는 것. 우리 부부는 그렇게 믿고 살기로 선택했다.  

-전우애
잃어버린 짐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는 의사소통 부분을, 예성이는 숫자와 기록을 맡았다. 내가 영어로 이메일을 쓰거나 통화할 때마다 예성이는 내게 고마워했다. 예성이가 보상을 요청할 영수증을 정리하고 잃어버린 짐에 대한 보상금액을 환산해 낼 때, 나는 예성이가 참 존경스럽고 고마웠다.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랐던 여행 기간에 제법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지만, 예성이와 내가 한 팀이었기에, 이 일을 헤쳐나가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미련 없이 해낼 수 있었다. ‘전우애’로 산다는 선배 부부들의 말에 조금 공감이 됐다. 얼핏 들었을 때 그 ‘전우애’가 사랑의 아쉬운 변질 같았는데, 그 어떤 사랑보다 찐한 사랑이었구나 싶었다.   

-기도 
원하는 걸 구하는 기도를 잘 못한다. 내가 원하는 기도 응답이 없으면 하나님의 존재와 사랑이 의심스럽고, 그 의심과 싸우는 게 힘들다. 그래서 애초에 어린아이처럼 구하는 기도를 하는 게 어렵다. 실망하는 게 두려운 거다.
하지만 짐을 잃어버렸을 때는 의심이고 실망이고 간에 기도가 나왔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했다. 딩켈스뷜에서는 예성이랑 저녁 금식 기도까지 했다는 거다. 간절해지면 뭔들 못하랴. 
하지만 결국 짐을 못 찾았다. 이
럴 때마다, 그러면 기도는 과연 무슨 소용일까 싶다. 어차피 하나님 뜻대로 다 될 거고 그걸 바꿀 수 있는 게 아닌 거면 왜 구해야 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든다.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거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더 좋은 방향일 거라는 식으로 정리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의 허점을 엉성하게 덮어버리는 논리 같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내가 원하는 로 안 해주는 하나님께 좀 서운한 거고.

여행 중에 예성이와 매일 가족 예배를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잃어버린 짐 때문에 속상했던 어느 날에도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을 하나 봤다.

<빌립보서 4장 6절, 7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하면 원하는 대로 다 될 거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킬 것이라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왔다. 우리가 짐을 잃었을 때, 우리의 짐을 되찾길 원했지만, 그게 아니어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구할 필요가 있었다. 그게 기도의 이유였다. 하나님은 내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가 아니라, 나에게 가장 좋은 것들로 사랑 안에서 인도하시는 아버지라는 것을 다시 믿는 계기가 됐다기도의 이유를 찾았다.




써 놓고 보니 제법 멋진 것들을 많이 얻었다. 위안이 된다. 짐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쓰려니 마음이 아파서  계속 미루었고, 한 달 반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렇게 쓰고 있다. 

블로그는 나를 위한 기록의 공간이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시선들이 있기에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겪은 일들을 하나님 얘기 없이 쓰기란 불가능했다. 덕분에 시선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내가 쓰고 싶은 걸 썼다. 이 역시 내게 참 소중하다.  

참 재밌는 일은 마음속에서 잃어버린 짐을 겨우 다 털어냈을 때, 우리 짐을 다른 사람들이 훔쳐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한 달 반이 지났을 때, 우리가 짐을 받기로 했던 뷔르츠크부르크로부터 30km 떨어진 '볼카'라는 지역에서 우리 캐리어 중 하나가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직 자세한 정황은 모르고, 짐 안의 내용물이 온전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다 포기한 시점에서 짐 하나를 찾았다니 신기하고 감사했다.

어쨌든 이번 여행에서 잃어버린 짐 덕에 다채로운 감정과 경험을 얻는다. 여행 오길 참 잘했다. 탕진한 보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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