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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Aug 30. 2018

2. 잔뜩 걸은 날

독일 로맨틱가도 여행 : 뷔르츠부르크&밤베르크 

시차가 마음에 들었다. 독일이 한국보다 7시간 더 느리다. 덕분에 밤 9시 반 즈음(독일은 이제 막 해가 질 때), 해가 지기도 전에 잠에 들어 아침 5시 반 즈음에 일어났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착한 거라는 교육을 오랫동안 받아서인지 괜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푹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이미 하루 알차게 산 기분. 

눈 뜨자마자 짐 생각이 났다. 부디 무사히 우리 짐이 돌아오길 기도했다. 새소리 배경 삼아 빈둥 거리다 배가 고파 아침을 먹었다. 

경비를 아껴야 했기에 웬만하면 식사는 집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전날 슈퍼에서 아침거리를 샀다. 빛깔이 예뻤던 사과는 시지만 먹을만했고, 포도는 못 먹겠을 만큼 시었다. 슈퍼에서 여러 요거트 중 하나를 골랐던 예성이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흡족해하며 맛있게 요거트를 먹었다.



건강한 아침을 개운히 먹고 나서는 일찌감치 나가보기로 했다. 사람이 늘 붐비는 관광지가 이른 아침 고요할 때, 그 순간이 참 좋다. 일출이나 노을만큼 선물 같은 시간이다. 그 순간을 기대하며 집을 나섰다. 짐이 없으니 어제 입은 옷 그대로 입고 외출 직전의 사진을 박았다.





집 가까이에 있는 마리엔베르크 요새로 향했다. 뷔르츠부르크를 한눈에 보기 좋은 곳으로 유명했다.



역시나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좋긴 했다만,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요새 내부에 있는 정원에서 보는 전망이 제일 좋다던데 우린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 정원 입구를 찾지 못했다. 어쩌다 보니 요새를 둘러싼 성벽 길을 따라 걷게 되었다. 그곳에서 보는 전망도 충분히 예뻤다. 남들이 다 좋다는 곳 못 가도, 남들이 다 좋다는 것 못 해봐도 우리 다운 경험들을 채우면서 자유롭게 누리는 걸 연습한다.


비록 아침 안개로 뿌연 사진밖에 남기지 못했지만, 눈으로 담았던 그 순간의 장면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밤베르크라는 도시에 가기 위해 역으로 향했다. 유치원에서 야외 수업을 나왔는지 색색의 모자를 쓴 아이들이 요새 곁 벤치에 쪼르륵 앉아있었다. 이 예쁜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갖는 평범한 수업시간이 괜히 부러웠다.





밤베르크는 작은 베네치아라는 별명이 있는 소도시였다.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꽃집만 보면 자꾸 카메라를 들게 된다.



밤베르크는 작지만, 구석구석 잘 가꾸어진 품위 있는 도시로 느껴졌다. 도시 차원에서 가꿀 수 있는 것 이상의 예쁨이었다. 이곳에 거하는 개개인들이 아끼는 마음을 담아 자신의 공간 곳곳을 꾸몄다. 기꺼이 가꿀 수 있는 그 여유와 낭만이 인상 깊었다.



점심은 400년 넘은 식당에서 독일 전통 음식을 먹었다. Schlenkerla 슈렝케를라라는 곳이었다.



소화도 시킬 겸 더 열심히 돌아다녔다.


예성이가 중간중간 등을 긁어달라 해서 긁어주는 데 부부스러운 장면이다 싶어 사진에 남겼다.





아침부터 두 도시를 두 발로 걸어 다닌 덕에 다리가 아팠다. 힘겹게 뷔르츠부르크 숙소에 돌아와 마주한 노을은 참 예뻤다. 위로가 됐다. 

마침 우리 짐을 배달해주겠다는 배달원의 전화가 왔다. 드디어 짐이 오는가 싶어 피곤한 몸에 활기가 돋았다. 배달원은 밤 11시 즈음에 도착할 것 같다고 했다. 대문과 집 사이에 거리가 있어, 도착하면 전화 달라고 부탁하고 전화를 기다렸다. 시차로 인해 비몽사몽 졸다가 깨다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날 밤 전화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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