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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히 Aug 28. 2018

1. 몸 가볍게 뷔르츠부르크

독일 로맨틱 가도 여행 : 뷔르츠부르크 

6월 4일은 왔고 여행이 시작됐다. 두 달 반 치의 짐을 캐리어 두 개에 계획적으로 싸다 보니 미리 준비한다고 했어도 막판까지 정신없이 짐을 쌌다. 

친정집이 인천이어서 해외에 나갈 때마다 덕을 본다. 우리 차는 인천 집 지하 주차장에 보관을 맡겼다. 공항까지는 부모님이 태워주시기로 해서 편하게 공항으로 갔다.



밤 비행기라 해가 질 즘 공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노을이 참 예뻤다. 기분 좋은 시작이구나 싶었다.



떠나는 우리의 뒷모습을 엄마가 찍어서 보내 준 사진이다. 무턱대고 여행을 떠나는 우리가 걱정될 만도 하실 텐데, 이거 저거 챙겨주시며 그저 건강히 잘 다녀오라는 말만 하셨다. 

저 분홍 원피스는 내겐 거의 공항 유니폼이다. 입어도 안 입은 것 같은 편안함 덕에 비행기 탈 때마다 입게 된다. 하지만 저 옷만 내리 입게 될 줄은 이때는 몰랐다.




정신없이 짐 싸느라 미처 이 여행을 실감할 새가 없었다. 밤 비행기라 바로 잠들었다가 하늘 위에서 아침을 맞이하니 조금씩 실감이 났다. 진짜 가는구나.




베이징과 암스테르담에서 2번 경유, 약 17시간이 걸린 긴 비행 끝에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자 이제 독일 여행을 시작해볼까’ 하고 신나 있는데 짐 찾는 곳에서 나와 예성의 캐리어가 나오질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으니 당황스러웠다. 지금까지 해외에 종종 나가봤어도 이런 일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다. 우리가 이용했던 KLM 항공사 부스에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니, 경유지였던 암스테르담에서 우리 짐을 못 실은 거 같다며(경유지에 4시간 있었지만요),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짐을 찾아보고, 있으면 내일 정도에 숙소로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자주 있는 일인지 굉장히 태연하게 안내해주길래, 다음 날 보내주겠지 믿으며 우리의 첫 도시인 뷔르츠부르크로 향했다.



뷔르츠부르크행 기차를 타기 위해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프랑크푸르트 역으로 이동했다. 역에 내리고 나서야 안 것은 공항에서 바로 탈 수 있는 기차를 예매했었는데 굳이 역까지 이동한 거였다. 덕분에 역 구경도 하고 독일에서의 첫 점심도 때웠다. 이곳에서 구하기 힘들다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마셨다. 무사히 목적지까지 갈 수만 있으면 뭔들 문제일까.  



배부른 채 기차를 기다리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 준비를 할 때, 사람들이 본인이 여행 중 겪은 사건사고 썰을 푼 걸 종종 봤었다. 그때마다 ‘아 제발 나한테는 이런 일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하는 안절부절못한 마음만 들었었다. 

반면 본인이 겪은 일들을 회고하는 당사자들은 유독 담담했다. 그 차분한 톤이 인상 깊었었다. 어쩌다 그런 일이 일어났고, 그래서 이렇게 했고, 그다음 계속 여정을 이어갔다는 식의 호들갑 없는 전개. 여행지에서는 뭐든 저렇게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가 싶어 신기했다. 

짐도 그렇고, 기차도 그렇고, 여행자가 되자마자 예상치 못한 어그러짐 들을 겪었는데, 우리 역시도 그저 받아들이고 있었다. 달리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초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초연할 수밖에 없었다.



점점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23kg짜리 캐리어 두 개, 총 46kg의 짐을 질질 끌고, 기차를 타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한없이 걸어서 갈 뻔했던 길을 가볍게 갈 수 있다니. 짐을 찾으면 숙소까지 배달도 해준다는데 얼마나 좋은가. 이미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급히 긍정 모드로 전환해버리는 습관이 있긴 하다. 물건을 잘 흘리고 잃어버려서 생긴 습관인데, 이번에도 그 습관이 잘 튀어나왔다. 다 잘 되겠지, 이게 여행의 묘미지 생각했다. 




뷔르츠부르크에 도착해서 숙소까지 걸어갔다.



기내 반입할 수 있었던 가방 두 개가 우리가 가진 전부였기에, 비록 다음 날 짐이 온다 하더라도 당장 써야 할 것들이 많이 없었다. 슈퍼에 들러 급한 대로 세면도구를 사서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정원이 예쁜 가정집이었다.



이렇게 넓은 개인 정원은 처음 와본 것 같았다. 꽤 넓었고  막 그냥 둔 듯 보이지만, 구석구석 다 손길이 느껴졌다. 마당이 있는 집에 대한 로망은 이렇게 날이 갈수록 커진다. 



정원 담벼락에서 내려가 보니 이 동네 사람들의 쉬는 시간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짐이 오면 캐리어 안에 할머니가 만들어 준 피크닉 매트를 들고 저곳에 가봐야겠다 생각했다. 



집 구경 신나게 하고 저녁 식사 겸 동네 산책을 위해 밖으로 나왔다. 우리의 여행 첫날 저녁 메뉴는 그냥 바로 타이 푸드. 여기까지 와서, 그래도 첫날인데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꿋꿋하게 먹고 싶은 걸 먹었다. 한식당이 있었다면 한식당에 갔을 것이다.







산책하면서 이 동네에서 사랑에 빠지게 된 곳은 알테마인 다리와 그 주변이다. 중심가와 숙소를 잇는 다리였기 때문에 자주 마주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어떤 명소보다도 이 다리를 건널 때 제일 들떴다.  



참 아름다운 도시에 와 있었다. 몸 가볍게. 
이제 다음 날 짐만 오면 모든 게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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