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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히 Aug 26. 2018

프롤로그. 떠나기 적당한 때

내가 몇 살인지에 대한 자각을 잘 못한다. 누군가가 몇 살인지 물어보면, 대답을 출력하기까지 몇 초 이상의 버퍼링이 걸린다. 결국 '90년생이에요.'라고 답하곤 한다.
'나이'라는 게 참 웃기다. 어느 날 이 무리에 있을 때는 내 나이 덕에 할머니 대우를 당했는데, 다음 날 저 무리에서는 내 나이 덕에 아주 귀여움 터지는 아기 취급을 당한다. 그게 참 우습다. 나이라는 경계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을 때가 많다.   
 
그래도 시간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에 있어서는 나이의 쓸모를 느낀다. 후에 되돌아볼 때, 내가 겪은 시간의 조각들을 보다 맑게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 같다.


지금처럼 후에 기억하고 싶어서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덕분에 오랜만에  나이를 자각한다. 나는 현재 한국 나이로 29, 만으로는 28살이다. 남편 예성은 현재 한국 나이로 27, 만으로 25(와...)이다. 내가  26살에, 남편  24살에 결혼했다. 우리 부부의 나이는 이제  2, 한국 나이로 3살이다.

굳이 나이로 따지자면, 우린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그렇게   있었던 환경에는 예성이가 공군 장교로 복무한 덕이 컸다. 공군 장교에게는 관사가 지급되기 때문에, 집을 마련하기 위해 결혼을 미룰 필요가 없다. 물론 예성이는 직업 군인을  생각이 없었고,  역시도 예성이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길 바란다. 예성이가 의무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는 결혼 2 후까지 머물 곳이 있다는  여러 핑계  하나로 삼아 결혼을 했다.

 2년이 지났고, 예성이는 제대를 했다. 3 , 예성이가 소위로 임관했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 우린 애인 사이였는데, 3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예성이가 제대를 하니    우리 부부의 Chapter 1 끝난 기분이었다.





우리의 Chapter 2에는 전방위적인 변화가 다가올 것이다. 우선 제대를 했으니   집을 떠나야 한다. 하지만 우린 아직 다음  곳을 구하지 못했다. 이제   백수이므로 새로운 일자리도 잡아야 한다.   곳과  일터를 구하면 아마도   시간 머무르지 않을까 싶다. 인생 모르는 거겠지만. 주인공이 우리 둘이었던 Chapter 1 달리, 새로운 주인공들이 나타날 각오도 해야  것이다. 임신 말이다.  수많은 변화를 앞두고 덜컥 겁이 나기도, 막연히 설레기도 했다.


다행히 제대하는 즉시 관사에서 쫓겨나는  아니었다. 우리에겐 3개월의 시간이 있었다.  3개월 동안 우리의 Chapter 2 준비해야 했다. 준비를 하려면    많았다. 같이 짙은 초록색 옷을 입은 어느 , 카페에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대를 앞두고 ‘이제 우리 어떻게 할까?’ 주제였다. 연애할  ‘우리 언제 결혼할까?’ 주제로 토의를  때랑 비슷한 기분이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제대  관사에 있을  있는 3개월 동안 여행을 가자였다. 상반기 취업시즌을 노렸던 예성이는 하반기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하기로 했다. 관사에서 나오면 충주 안에서 내년 상반기까지 머물 곳을 찾아 이사를 하고, 예성이가 취업 준비하는 동안 생활비는 내가 어떻게든 벌어  거다. 그러니 우리는 여행을 가기로 했다.

집도 벌이도 없는 백수 둘이  판국에 여행이라니 대책 없지만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하나, 둘이 아무것에도 묶여있지 않고 떠날  있는 지금 같은 때가 살면서 언제  올까 싶었다.
, 마침 장기간 떠나 있어도 짐을  곳이 있다.
, 예성이 3,  3 일하며 모은 돈은 집값 하기엔  없이 부족하기에 어차피 대출받아야 한다. 그러니  돈은 여행 경비로 쓰자(?)

 그대로 ‘나름의 논리지만, 우리는 설득됐다.

예성이 때문에  여행에 가고 싶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긴 하지만, 다녀와서 그리워할  제일 좋아한다. 여행 준비할 때는 머리 아프고, 여행을 떠나자마자 집에 오고 싶어 한다. 아무래도 여행을 좋아하기보다는 필요해하는  같다.

때로는 타의, 때로는 자의에 의해 하고 싶은  하면서, 쉬어야  때는 쉬면서  편이다. 하지만 예성이는 해야  것들 위주로 살며  없이 달려왔다.  흔한 휴학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장교로 군대에 입대했다. 결혼을 했으니  생활 중에도 틈틈이 취업에 필요한 공부를 하고 자격증들을 땄다. 그런 예성이를 지켜보며 고맙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마음  켠이 짠했다.  때문에 더더욱 멈추지 못하는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원래 성향상 모험을 감내하거나 선을 벗어나지 않기도 하지만,  기회에 원래의 예성이라면 하지 않을 일들을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게 여행이었고.

겨울과 봄, 두 계절 정도를 도서관에서 여행 서적을 빌려 가며 천천히 여행 준비를 했다. 가고 싶은 도시와 나라를 정하고, 비행기 표와 숙소를 예약하고, 가게 될 곳에 대한 공부를 했다.

독일 로맨틱 가도 도시들-이탈리아 남부-크로아티아 5개 도시-태국 치앙마이와 주변 도시에 가기로 했다.  큰 뜻 없이 평소 가고 싶었던 곳 줄지어 놓고 예산에 맞춰 가지치기했다. 6월 4일에 떠나 8월 21일에 돌아오는, 80일 동안의 여행이다.




 여행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지, 남기는  있을지 확언할  있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 인생의 새로운 챕터 시작되기 전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 시간이었으면 하는데, 그건 우리 바람일 뿐이다. 그래도 우리가  결정을 내리고, 낯설고  땅으로 움직인 것에 괜히 뭐라도  기분이 든다. 물론 생후 가장 큰돈을 써서 문득 덜컹거린다. 그래도 걱정보다는 기대가 차오른다.


29살 이다정, 27살 정예성, 3살 부부인 우리가 제법 긴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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