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로 시작했어요 / 상작가 님 (진메이커)
독립출판 창작자 132팀이 참여한 제2회 마우스북페어*에 청자켓에서 책을 꺼내 파는 창작자가 있었다. 여러 부스 사이에서 청자켓은 확실히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청자켓 주머니에서 손바닥보다 작은 미니진(zine*)을 꺼내어 보여주고 계셨다. 호기심에 이끌려 ‘호주머니책방’을 방문해 책을 꺼내봤다. 고양이 사진 미니진부터 양파와 토마토, 가지가 귀여운 캐릭터로 그려진 미니진이 주머니에서 나왔다. 작고 귀여운 첫인상과 달리 제목은 크고 묵직했다. ‘너는 웃어, 우는 건 내가 할게’, ‘가지가지 하던 내가 아무것도 하기 싫다’ 등 순식간에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지만 계속 곱씹어 보고 싶은 내용이 담겨있었다.
*마우스북페어: 부산의 독립출판 축제 (2023~)
*zine: 나만의 방식으로 만드는 소량 인쇄물
다른 작품도 궁금해 호주머니책방 계정을 팔로우하니 매일같이 새로운 미니진이 소개되었다. 부지런히 소재를 찾고 한 땀 한 땀 오리고 붙이는 이 작업을 정말 좋아하시는구나, 그 마음이 넘쳐흘러 닿았다. 주로 인스타툰을 그리셨던 것 같아 미니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어떻게 이렇게 진심인지, 소재는 어디서 찾으시는지 궁금한 질문이 많이 생겼다.
상작가님은 본인을 프리랜서 디자이너라고 소개하셨다. 조금 엉성하더라도 자연스러운 그림을 매력이라고 느끼는 요즘 트렌드에 용기를 얻어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그림을 업으로 삼았다.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 인스타에 올리기 시작한 지 벌써 5년 차이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전하다 보니 스스로 그림을 더 잘 그리기보다는 이야기를 더 잘 전달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소재를 부지런히 수집하고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 그림뿐만 아니라 글과 사진의 형태로 표현한다. 요즘에는 미니진이라는 또다른 형태로 일상을 공유하고 생각을 전한다.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계속 떠오른다는 상작가님은 창작자라는 단어와 정말 잘 어울렸다.
작가님을 설레게 만드는 진(zine)과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2022년, 서울 한 독립서점에서 진을 처음 만났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크기, 적은 페이지, 스테이플러로 제본한 이소 작가님의 ‘밤의 댄스’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고 이는 곧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씨앗이 되었다. 이 씨앗은 2023년 제1회 마우스북페어를 다녀와 싹을 틔웠다. 창작자들이 하고 있는 생쥐 목걸이가 귀여웠고 마우스북페어를 소개하는 미니진에 감명받았다. 집에 돌아와 이 미니진을 분해하며 내년에는 창작자로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떤 진을 만들지 고민하고 그림을 그리고 시제품을 여러 번 조립하며 1년 간 마우스북페어를 준비했다. 그렇게 2024년 11월 30일, 제2회 마우스북페어에 ‘호주머니책방’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해 생쥐 목걸이를 하고 독자를 만나 진을 소개했다.
작가님의 표현 방식은 넓고 다양하다. 그렇기에 진(zine)이라는 매체가 어떻게 얼마나 더 매력적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답은 ‘매체가 주는 완결성’이었다. 한 호흡으로 길게 이야기를 보여주는 방법도 있지만 다양한 종류로 여러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성격에 더 잘 맞았다. 열두 페이지 미니진을 완성하고 나서 얻는 성취감, 엉성해 보이는 이 자체로 완성이라는 점이 좋다. 지난 5년간 열심히 창작 활동을 해왔기에 새로운 표현 방식이 본인에게 얼마나 맞는지 알아차리고 그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잘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손이 가는 대로 만드는 작품이라니 진의 매력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혼자서 더 잘 만들기보단 다 같이 만들고 싶다”는 작가님 다정한 말처럼 마우스북페어 이후, 작가님 세계는 더 넓어지고 풍부해지고 있다. 여러 책방에 미니진을 입고했고 오프라인 모임을 열어 새로운 사람들과 다양한 진을 만들었고 파주 교화도서관에 진을 전시하게 되었다. 올해는 서울에서 열리는 페어에 나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진으로 열린 새로운 세계와 앞으로 펼쳐질 여러 이벤트가 기대된다며 눈을 반짝이는 모습에 마음이 함께 벅차올랐다. 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우리도 우리만의 이야기를 찾아 진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보는 건 어떨까? /202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