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스러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

우아한 곡선, 여백을 품은 가지런함 그리고 여유로운 조용함

by 다정

언니 덕분에 작년에 이어 올해도 5성급 호텔에서 1박을 하게 되었다. 5성급 호텔은 나에게 가고 싶은 곳이나 여유롭게 갈만한 곳은 아니다. 여행에서도 숙소는 잠만 자거나 잠시 머무는 곳이라 생각해 깨끗하고 단정하면 충분했다. 큰 불편이 아니고는 감내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나이가 들며 자연스레 다양한 숙소를 경험해 보니 작은 불편조차도 없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만 자는 곳에 비싼 비용을 내는 이유, 잠시 머무는 곳에서 어떤 것들을 즐길 수 있는지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가 선택할 것 같지 않은 이 숙소에 언니 덕분에 벌써 2번째 방문이었다. 처음에는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놀라워하고 신기해하다 하루가 지난 터라 이번에는 최대한 많은 걸 느끼고 싶었다. 가지런히 정돈된 하얀 침구, 하늘과 이어지는 수영장, 매일 가도 좋을 사우나와 성공해서 오고 싶은 라운지를 오가며 열심히 호텔을 관찰해 봤다. 호텔을 구분하는 등급, 숙소의 가격으로만 이 공간의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건 아닐 텐데 어디서부터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걸까. 층고가 높은 로비, 친절한 직원들, 인테리어... 공간을 채우고 있는 많은 요소 중 세 가지가 특히 와닿았다.


구석구석 곡선이 있다. 테이블 모양은 물론이고 테이블 다리의 디테일함에도 곡선이 있다. 조명은 물론이고 조명이 달린 레일에도 있다. 복도의 벽뿐만 아니라 바닥 카펫에도 곡선이 있다. 눈이 닿는 곳에는 거의 다 직선과 곡선이 함께 있다. 네모 반듯하게 해도 괜찮을 것들에 곡선이 들어가니 분위기가 고급스럽다. 적어도 한 과정은 더 거쳐 만들어졌을 것 같아 공을 많이 들인 공간이라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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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여백을 품은 가지런함이다. 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이, 작은 노력으로 최대한 크게,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지내는 것과 멀다. 트레이 위 음식들이 띄엄띄엄 오와 열을 맞춰 놓여있다. 음식이 금방 사라지니 품이 더 많이 들 수 있는 구조인데 그렇기에 대접받는다고 느껴진다. 한 트레이에 최대한 많이 올려진 음식들, 이를 최대한 다양하고 빡빡하게 담는 게 뷔페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더 신기한 건 이 모습이 내 행동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나도 이 공간과 어우러지고 싶어 음식들을 가지런히 여유 있게 놓게 되었다. 적당히 배부르게 먹는 건 물론이고 나를 위한 식사를 제대로 챙기는 기분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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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조용함이다. 어딜 가든 소란스럽지 않다. 특히 창밖에 바다를 보며 적막에 가까운 조용함이 낯설 정도였다. 숙소 내부 인구밀도가 낮아서, 여행을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공간의 분위기가 단정해서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이 조용함은 여유로 이어진다. 영화 '인타임'에서 시간에 쫓겨 뛰어다니던 주인공이 뛰지 않아도 된다, 뛰는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것처럼 여기서도 하나도 급할 게 없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와 공간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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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 머물면서 공간의 요모조모를 살피는 일이 재미있었다. 언젠가 공간을 만들고 싶은 사람으로 위 요소들을 어디에 넣어볼 수 있을까도 생각해 본다. 특히 공간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행동이 바뀐다는 게 신기했다. 내가 만드는 공간은 어떠한 사람들이 와서 어떤 행동을 하는 공간일까? 어떠한 사람들을 와서 어떤 행동을 하길 바라지?라는 생각을 하며 앞으로 경험할 공간들도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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