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린 우정이야기

by 다정

2025년의 마지막 날, 뮤지컬 <Wicked(위키드)>를 보러 갔다. 영화 위키드가 화제가 될 때도 보러 가야지 하는 생각은 없었는데 뒤늦은 호기심에 뮤지컬을 보러 가게 됐다. 위키드에 관해 알고 있는 건 동화 <오즈의 마법사>의 성공한 팬픽이라는 거였는데, 다 보고 나오니 왜 뮤지컬과 영화로 만들어졌는지, 왜 지금까지 흥행하고 있는지 알 수밖에 없었다. 무대와 노래도 멋지고 좋지만, 그 안에 품고 있는 세계가 넓고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놀림받는 엘파사, 점점 핍박받으며 말하는 법을 잊어가는 동물들,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선인지 그건 누가 정의하는지. 옛날에 쓰인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의 문제와 닿아있었다. 오히려 너무 많이 담고 있어서 어떻게 끝내려 그러는지 걱정될 정도였다. 나쁜 마녀 엘파사가 죽었다며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시작했기에 더욱 궁금했다. 당연히도 괜한 걱정이었다. 마지막에 다 와갈수록 조금씩 마음이 울렁거리더니 '결국 우정이야기잖아'하며 눈물이 났다.


주인공은 엘파사가 아니라 글린다였다. 철부지 소녀인 글린다가 친구를 만나 조금씩 성장하고, 모른 척 세상과 타협하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슬픔 속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이야기였다. 나쁜 마녀가 죽었다며 환호하는 사람들은 분명 처음과 같은데 글린다는 아니었다. 슬픔을 묻은 채 사람들 앞에서 환호를 이끌 수밖에 없는 어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도 친구도 영원히 만날 수 없지만 기꺼이 왕관이 무게를 견뎌내고 있었던 거였다. 한층 성장한 글린다가 대견하고 우정이 아름다워 눈물이 났다.


예전 같았으면 엘파사가 멋지다고만 생각했을 것 같다. 분명 엘파사는 멋진 사람이다. 주변의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길을 가는 모습에서 배울 점도 많다. 그런데 글린다에 더 마음이 간다. 같이 빗자루를 타고 떠날 용기가 없고, 좋아하는 남자의 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진실을 알면서도 눈 감아버리는 글린다가 너무 현실적이었다. 불완전하고 부족한 사람, 만약에 나였어도 글린다처럼 행동했을 것 같다. 조금 얄밉고 모자라보여 정 주기 힘들었는데 중요한 순간에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친구를 위해 어려운 선택도 하고, 자신에게 지어진 그 무게를 견디는 것을 보니 어느새 마음이 갔다. 되려 힘도 났다. 어쩌면 나도 중요한 순간엔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려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여전히 글린다가 다스릴(?) 오즈가 걱정되지만,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조금씩 나아갈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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