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나의 일부이지 내가 아니다
요즘 무언가를 보거나 듣거나 느끼면 어떻게든 글로 표현하고 싶다. 그런 욕심이 강하게 든다. 정말 가끔씩 어떤 글은 마법처럼 톡 하고 튀어나온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 접신한 것처럼 무작정 타이핑을 하다 완성하게 된다. 그 외의 글들은 당연하게도 어렵다. 어떤 문장을 쓸지, 어떤 단어를 사용할지, 때론 조사까지도 말썽이다. 이 과정이 다행히도 재미있다. 글을 쓰면서 순간을 돌아보고 감정을 들여다보고 생각을 정리해 글로 옮기고 나면 스스로 기특하게 느껴진다. 글쓰기를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한 나름의 요령도 생겼다. 글 쓰는 나에게 꾸준히 먹이를 주는 것이다. 좋은 책이나 영화, 전시부터 좋은 대화와 음악, 멋진 공간까지 글의 재료가 될 무언가를 충분히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는 나만의 방식으로 소화되어 글로 옮겨진다.
기특하고 마법 같은 글쓰기가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강제로 다양한 인풋을 주입한다. 단순 흥미로 고른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어떤 의미를 발견하려 애쓴다. 글이 되지 않은 경험도 내 삶을 이룬다는 걸 알면서도 조급해진다.
저번 주만 하더라도 모임이 네 개나 있었다. 세 개의 독서모임을 위해 세 권의 책을 읽었고, 하나의 스터디를 위해 예술 작품을 찾았다.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좋은 대화를 나눴고 모임이 끝나고 성장한 기분에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경험들이 글로 이어지진 않았다. 갑갑하고 우울해졌다. 이 외에도 글로 옮길 만한 일들이 많았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느꼈던 강렬한 감정과 영화에 대한 감상, 외전까지 몰아보기를 할 정도로 몰입했던 드라마 <브리저튼>, 오랜만에 본 다큐멘터리까지. 생각해 보면 하루도 허투루 보낸 날이 없는데 이 모든 게 글이 되진 않았다. 몰입하고 강렬했던 경험도 다 휘발되고 사라지는 건 아닐까? 점점 무섭다.
글로 남기지 않아 옅어진 지난 세월과 글로 옮겨져 선명하게 남아있는 기억과 생각들이 대비되어 더 아쉽다. 지금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 걸까? 반복되는 고민과 쓸수록 어려워지는 글쓰기 앞에선 솔직할 수밖에 없다. 어디서부터 욕심이 생긴 걸까? 내 일상을 낱낱이 옮겨 전시하고 싶은 건가? 매일 글을 쓴다고 증명하고 싶은 건가? 답은 늘 그렇듯 내 안에 있다. 지금 잠시 조급해진 거다. 모든 경험이 글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있다. 늘 그렇듯 글을 쓰면서 답을 찾는다. 글은 나의 일부이지 내가 아니다. 어쩌면 지금이 너무 여유롭고 편안하고 충만한 걸지도 모르겠다. 더욱 조급함은 내려두고 좋은 책과 대화에 온전히 집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