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남편과 대화를 나누고 나면 흐릿했던 생각이 명확해진다. 입 밖으로 생각을 내뱉기만 해도 스스로 생각이 정리된다고 하지만 그것보단 남편이 잘 들어주고 잘 물어보는 사람이라 그렇다. 이번에는 아티스트북에 관한 고민이 있었다. 지난 4주 간 아티스트북을 조사하며 미술사를 공부하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멋진 작품들도 많이 살펴봤다. 이제 앞으로 4주는 아티스트북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제일 중요한 건 '주제'이다. 작가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은지가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지 책의 모양부터 제본 방법, 다른 요소들까지도 정할 수가 있다.
스스로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계속 질문을 던졌다. 처음 떠올린 소재는 '다정'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믿고 이야기하는 단어이기에 할 말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다정이란 무엇일까?'로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다정에 대해 써보고,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다정을 수집하고 다른 언어로 쓰인 다정도 적어봤다. 다정, 따뜻함, 친절함, 공감, 에너지, 체력, 웃음, 변화, 증여 등. 나는 다정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고 믿고, 사람들에게 다정이 있다고 믿고 싶었다. 혹은 이를 확인하고 싶었다. '다정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다정이 없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지?' 하고 질문을 이어가니 '내가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건가?',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질문까지 닿았다. 점점 질문이 커졌다. 답할 수도 없는 질문에 둘러싸이니 답답해졌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지금까지 생각한 내용을 옮기고 고민되는 지점을 물어보니 새로운 질문을 던져줬다.
네가 바라는 너의 모습이 뭐야?
스스로를 소수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유가 뭐야? 네가 되고 싶은 모습과 지금 모습 사이에 간격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떤 모습을 바라고 있어? 만약 지금 하는 일이 제일 잘된다면 어떤 모습인 거야? 완전히 색다른 질문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거야말로 지금 내가 '다정'을 이야기하는 이유였다. 나는 스스로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한다. 소수가 아니라 다수의 공감을 받길,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길, 글을 잘 쓰는 작가이자 예술가가 되길 바라고 있었다. 이를 위해서 내가 제일 잘 알고, 나를 이루고 있는 다정을 통해서 성장하고 무언가 성취하려 했다.
욕망의 뿌리까지 찾아가니 명확해졌다. 혼란하고 무거웠던 머리가 가벼워졌다. 이제는 방향을 수정해야 했다. 나로부터가 아니라 대중으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과연 다수가 공감하고 좋아하고 열광하는 주제는 무엇일까,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하면 좋을까, 글을 읽는 것을 넘어 경험으로 만들 수 있을까? 질문이 선명하게 이어진다. 남은 과제는 열심히 찾아보고 재미있게 기획하는 일이다. 이때까지는 내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보여줄 수 있는 게 내 이야기뿐이라 생각해 좁은 땅굴을 파고 있었다. 지금은 시선을 바꾸어 땅굴을 넓힐 때이다. 재미있게 시도해 보면서 성장하고 성취하고 싶다. 그리고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