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기려는 욕망

= 희망으로 이어지는 작은 용기

by 다정

오래전부터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게 된다면 인간은 무엇을 하면서 살게 될까?'에 대해 고민해 왔다. 몇 년 전에는 낙관적이었다. 노동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자유로움에 행복하다가 삶의 목적을 잃은 것처럼 헤매다가 종국엔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아 나서고, 기어코 찾아낼 거라 상상했다. 고민 끝에 자신만의 무언가는 '좋아하는 일'일 거라 확신했다. 좋아서 하는 일, 더 잘하고 싶고 계속하고 싶은 일, 그런 일이여야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 테니까. 이런 결론에 다다라 당장 좋아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언젠가 올 미래라면 지금부터 준비하는 게 낫다고도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에 불과한 일이 지금은 바로 코 앞에 있기 때문이다. 분명 나만의 무언가는 '나만의 것'이었는데 현실에선 이마저도 AI가 대신한다. 고민을 넘어 해결방안이 필요했다. 글 쓰는 AI를 대신하여 나는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이 질문의 결론도 좋아하는 일에 다다른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 좋아하고 즐기면 된다. 내 이야기는 AI가 쓸 수 없는 나만의 것이다.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 경험하고 느낀 감정, 떠오른 생각은 나만 옮길 수 있다. 몇 년 후에 무엇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 유일한 답이라 느껴진다.


정유정 작가는 무엇이 어떻게 변할지 더 멀리 나아가 물어본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어떤 모습이든 경험할 수 있고, 늙지도 죽지도 아프지도 않은 영원한 천국이 있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까? 삶의 의미를 어디서 어떻게 발견할까?' 작가가 던진 질문에 답하기 위해 상상해 본다. <영원한 천국>의 경주가 되고 해상이 되어본다. 나는 경주처럼 내 인생을 다시 살아볼 용기가 있을까? 해상처럼 예정된 슬픔과 고통이 찾아와도 이를 이겨내고 내 삶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 무엇으로부터 도망쳤는지, 도망치고 있는지 찾아본다. 과거 어느 시점이 떠오른다. 그때의 나는 현재로부터 도망쳤다. 미래의 내 모습이 더 마음에 들어 그걸로 현재를 설명하려 한 때가 있다. 그 꿈이 생각보다 멀리 있다는 걸 직감하면서도 멀지 않길 희망하며 나를 속였다. 어느 순간 지치고 질렸다. 현재의 고민과 질문을 회피하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연습을 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의미를 찾고, 지금 느끼는 감정에 솔직하려 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지금은 이전과 같은 꿈을 꾸면서도 현재를 살고 있다고 느낀다. 이때 나에게 솔직했던 한 순간이 내 안에 있던 작은 용기였다.


소설을 통해서 작가는 이를 '야성'이라고 부른다.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기려는 욕망. 시공간의 경계가 없고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영원한 천국에서도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여정에 기꺼이 몸을 던지는 것이 인간이라 말한다. 덕분에 나에게도 야성이 있음을 깨닫는다. 스스로 솔직할 수 있는 작은 용기를 넘어 희망으로 이어진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 즐겁게 하자'는 답이 틀렸다고 해도 두렵지 않다. 내 삶에 내가 부여한 의미이기에, 다치고 아프고 후회에 빠지더라도 이를 마주하고 이겨낼 힘 또한 나에게 있다. 모두에게 있다. 희망으로 이어지는 작은 용기, 야성에 대해 모두에게 말해주고 싶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다치고 아플 것을 걱정하지 말고 삶을 열렬하게 탐구하고 사랑해 보자고 소리치고 싶다. 당연히 나도 앞으로는 더 야성적으로 열렬히 즐겁게 살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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