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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Mar 04. 2017

우다방, 옛 광주 우체국

광주 동구 충장로2가 94번지에 있는 광주 충장로 우체국의 원래 이름은 광주 우체국이었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에는 입사 지원서를 직접 회사까지 가서 제출하거나, 편지로 부쳤다.

그렇게 입사 지원서를 내기 위해 들렸던 우체국.

취직이 간절했던 나는 길거리 빨간 우체통보다는 우체국을 찾곤 했다.

길거리 빨간 우체통에 이력서를 넣으면 봉투가 바닥에 떨어지며 내는 '툭' 소리가 입사를 위한 서류전형에서 떨어질 것을 예고하는 소리 같아 가슴이 떨려왔기 때문이다.


입사지원서 보다 더 자주 우체국을 찾는 이유가 내겐 또 있었다.

연애를 할 때 투박한 머슴애답지 않게 꽃이 그려지고 향 내음까지 나는 편지지 위에 밤새 편지를 써서 봉투에 담고 침 묻힌 우표까지 꾹꾹 눌러 붙인 봉투를 집 근처 우체통에 넣지 않고 또 우체국엘 갔다.

내 편지를 받고 싫어하진 않을까? 이 편지를 보내야 할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 '편지요!' 소리와 함께 우체부 아저씨가 내민 편지를 받아들기만 해도 마음이 두근거렸다.

누구에게 왔을까? 누가 보냈을까? 뭐라 썼을까? 궁금하고 설레임도 잠시, 보낸 이의 이름을 읽는 순간 해맑게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편지지가 상하지 않게 조심스레 봉투를 열어 편지를 읽노라면 마치 편지를 보낸 이가 어느 샌가 내 곁에 바짝 다가와 그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해서 좋았다.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면 편지를 쓰며 나를 생각했을 그의 마음이 내 마음 안에 들어와 있었다.

편지 속의 그 사람과 결혼을 약속하고는 우체국에 갈 일이 더 많아졌다. 우다방이라 불리던 우체국 앞 계단에서 그 사람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우다방!

간판도, 실제로 마실 차도 주지 않는 우체국 앞 계단 우다방에는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기다렸다. 바람 맞고 쓸쓸히 떠나는 사람보다, 손잡고 떠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던 그 곳 우다방. 우체국도, 계단도 그대로 있고, 줄어들긴 했어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데 우다방은 길바닥 위에 노란 쇳덩어리 네모진 표지로만 남았다.

예전의 우다방은 아무나 밟고 다니는, 의식조차 못하는 그런 표지가 아니었다. 우다방은 그리움과 설레임으로 기다리는 서로의 마음이었다.

생각만 해도 '파르르' 가슴 떨려오는 안타까운 그리움이 우다방이었다.

오늘 그 우다방 계단 맨 위에 다시 섰다.

아련한 기억 속 그가 저기서 나를 발견하고 뛰어 오는 것 같다.

손 편지를 보내고 받는 일이 뜸해진 요즘에 가지런히 줄쳐진 편지지 위로 삐뚤빼뚤 쓰여져서 더 정겨운 손 글씨가 그립다.

우다방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돈 내라고 꽂혀있는 고지서 말고, 우체국 냄새가 묻은 손 편지가 우편함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오늘은 손 편지를 써 볼까?

그 시절 우다방에게 고마웠다고, 너를 오래 잊고 지내서 미안하다고…….

손 편지가 많아져서 우다방이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오길 기대하면서…….

우체국 계단 앞 바닥에 있는 우다방 기념 표지판

광주우체국 설립 100주년 기념석(1997.12.25)

우체국 뒤 (구)학생회관  사잇길

우체국 앞 사거리 표지판

우체국 -> 충장로 2가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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