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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Jul 22. 2017

광주 1수원지 편백나무 숲에서의 욕심 요산요수樂山樂水

광주에는 수원지가 4개 있었다. 제 1수원지는 광주 동구 운림동인 무등산 국립공원 증심사 시내버스 종점 길 건너편에 위치하고, 2수원지는 동구 용연동인 용연마을과 용추계곡 사이에 있다. 제 3수원지는 북구 동림동에 있는 산동교 근처에 있었고, 제 4수원지는 북구 청풍동 청풍쉼터 앞에 있다. 4개의 수원지 중 3수원지만 수원지의 형태를 잃어버렸다.


광주 동구에 있는 두 개의 수원지 중 제 2수원지는 비상 시 광주 시에 수돗물을 공급하나, 1922년 5월 30일자에 "광주 수도 통수식이 대성황리에 개최되었다"는 신문기사에 등장하는 광주 최초의 수돗물 공급원인 제 1수원지는 현재 수원지의 역할을 중단했다.


광주시민들이 축복받은 시민이라 할 수 있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무등산이다. 2017년 3월 기준으로 광주광역시의 인구는 1,467,766명으로 인구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에 무등산처럼 넓고(30.23㎢) 높은(1,187m) 산을 갖고 있는 도시가 드물다.

물이 맑은 곳에는 숲이 있기 마련이다. 아니 숲이 있는 곳에는 물이 있다. 숲이 우거진 곳에는 하다못해 옹달샘이라도 품고 있다. 무등산에는 수 없이 많은 종류와 그 보다 더 많은 수량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제 1수원지는 광주의 명산 무등산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제 1수원지의 숲은 우거지고 깊다. 우거진 숲에 있는 물이 맑고 깨끗하듯이 제 1수원지의 물 역시 맑고 깨끗하다. 제 1수원지가 물을 공급하는 수원지로써의 역할은 중단했을지 모르지만, 다른 의미로의 수원지 역할은 오히려 더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숲속의 상쾌하고 시원한 공기는 피톤치드(Phytoncide) 덕분이다. 피톤치드라는 단어는 '식물'이라는 뜻의 'phyton'과 '죽이다'라는 뜻의 'cide'가 합해서 생성되었다.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고정되어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나무는 병원균과, 해충, 곰팡이 등으로부터 멀리 도망갈 수 가 없다. 한 자리에서 살아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 난 나무는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피톤치드를 내뿜어 해충을 물리친다. 그런 피톤치드를 사람이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살균작용도 이루어진다.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삼림욕을 즐기는 이유가 바로 피톤치드에 있다. 모든 나무는 피톤치드를 내 뿜으나, 특별히 더 많이 피톤치드를 내 보내는 나무가  편백나무이다. 피톤치드도 계절에 따라 내뿜는 수치가 다르다. 해충이 적은 겨울에는 피톤치드가 적게 나오고, 해충이 많은 여름에 가장 많이 나온다. 피톤치드가 많이 방출되는 순서를 보면(여름/겨울) 편백나무 5.5/5.2, 구상나무 4.8/3.9, 삼나무 4.0/3.6, 화백나무 3.3/3.1, 전나무 3.3/2.9, 소나무 1.3/1.7 순이다. 즉 소나무 숲에 있을 때보다 편백나무 숲에 있으면 4~5배의 피톤치드를 마실 수 있다. 무등산 자락에 안겨 있는 특성상 제 1수원지에도 수없이 많은 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그 많은 나무 중에서도 편백나무가 특히 많고 삼나무와 소나무도 많다. 그러니 삼림욕을 하러 멀리 갈 것이 없다. 무등산 버스 종점에서 싸목싸목 걸어서 갈 수 있는 제 1수원지의 숲을 찾아서 피톤치드를 마음껏 마시면 된다. 제 1 수원지가 또 다른 의미로의 수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물을 마시듯 피톤치드를 마실 수 있도록 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운 여름 시원한 곳을 찾아 자가용을 타고 멀리 나가려고만 하지 말자. 돗자리 하나, 물과 간단한 간식을 챙겼으면 시내버스 타고 광주 동구 운림동 무등산 증심사 입구 버스 종점에서 내리자. 버스 종점을 벗어나 증심사 방향을 바라보면서 왼쪽에 유료주차장과 비포장 길이 보인다. 비포장길은 광륵사로 가는 길이다. 광륵사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오른쪽에 대나무가 줄지어 서서 반긴다. 광륵사 못 미처 오른쪽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을 오르면 제 1수원지로 가는 숲길이 시작된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자란 삼나무가 만들어 주는 숲길에서 뜨거운 햇살은 그 기세가 꺾인다. 제 1수원지는 물론 편백나무 숲까지 가는 숲길은 환자와 노약자도 걷기에 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완만한 경사이거나 평탄하고, 지루하지 않을 만큼 구부러졌다 펴지기를 반복한다.

둘레가 한 아름이 넘게 자란 큰 소나무는 장군처럼 철갑을 둘렀다. 그 철갑 틈 사이를 비집고 파란 이끼가 자라고 있다. 소나무의 철갑뿐만 아니라 돌과 흙, 나무 둥치에서도 습기를 머금은 이끼는 생명 없는 것들에 생명을 더하고 있다. 죽어가는 것을 살리는 것은 이끼뿐만 아니다. 버섯 또한 꺾이고 부러져 죽어 가는 나무에서 생명의 숨을 불어 넣고 있다. 땅 위에서 부스러져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나무는 또 다른 나무의 밑거름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려 했으나 하늘이 없다. 빽빽하게 자란 편백이 하늘 보다 더 푸르게 하늘을 대신하고 있었다. 조용히 숲 속을 걷는 사람들, 자리를 펴고 앉아 웃으며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보였다. 북적이는 도시에서는 그렇게 노력해도 비워지지 않던 마음이 숲 속에 들어오니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생각마저 비워지고 없었다. 도심에서 다잡으려 했던 복잡한 마음은 해충이나 곰팡이였나 보다. 피톤치드로 가득한 편백나무 숲속에 들어오니 복잡한 마음이 피톤치드를 피해 도망가 버리고 없다. 어떤 소리라도 좋으니 들어보려고 해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까지 도망 가 버린 건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보았다. 소리 대신 볼을 스치는 바람과 멀고 가까운 곳에 있는 숲속 물 흐름이 느껴졌다. 더위? 더위는 숲길에 들어설 때부터 이미 없었다. 그래도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는데 이 숲속을 벗어나면 더울 것을 생각해서 가까이 있는 물 흐름을 찾아 발을 담갔다. 발을 담그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메 찬 거!!!’ 나보다 더 놀란 소금쟁이가 물 위를 폴짝폴짝 뛰며 달아났다.

편백나무 아래에서 물속에 발을 담그고 빼내기를 반복하다보니 내가 너무 욕심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어(論語) 옹야(雍也)에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 智者動, 仁者靜. 智者樂, 仁者壽)"라는 구절을 압축하여 요산요수(樂山樂水)라 한다.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하다.'는 뜻으로 많이 쓴다.

나는 지자(知者)도 아니고 인자(仁者)도 아니거늘 한 번에 요산요수를 하고 있으니 내 욕심이 너무 과하다. 그러나 내 탓은 아니다. 숲속을 벗어나면 이글거리는 태양이 내 머리카락을 라면사리로 착각해 라면 삶듯 나를 삶으려한 탓이다. 사유지임에도 힘들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곳에서 무료로 요산요수를 즐길 수 있는 제 1수원지의 편백나무 숲 탓이기도 하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탓이 아니라 덕분임을 나는 안다. 그래서 편백나무 숲을 벗어나 도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복잡해지는 마음을, 다음 주말에는 더 일찍 찾아와 더 오래 편백나무 숲속에 머무르며 요산요수를 해야겠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다. 제 1수원지 편백나무 숲 덕분에 공자의 말을 다시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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