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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Aug 10. 2017

전평제의 연꽃과 배롱나무 꽃

전평제!

광주광역시 서구 매월동 회재로에 있는 전평 호수다.

전평제에 둑을 뜻하는 둑제(堤) 자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전평제는 둑을 막아 만든 저수지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지금은 전평제를 둘러 산책로를 만들고, 전평제를 가로지르는 나무다리도 설치하여 호수를 건너가고  쉴 수 있는 공원이 되었지만,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는 명소인  전평제는 사실 저수지였다.


전평제는 회재 박광옥(朴光玉) 선생이 43세 때 개산 남쪽의 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짓기 위해서 방죽을 막은 것이 시초다. 회재 선생은 방죽 중앙에 인공섬을 만들어 수월당을 짓고 고봉 기대승과 성리학을 연구했다. 회재 박광옥 선생은 조선 중기인 중종 21년 1526-선조 26년 1593년의 문관이자 성리학자로 나주목사 등 관직을 역임했으며 임진왜란 때는 의병활동을 했다.


세월이 흘러 국가에서는 매월동과 벽진동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물로 인한 재해를 방지하던 전평제 저수지를 1999년부터 국토공원화 사업으로 쉼터를 조성하였고 오늘에 이르렀다.


전평제가 시민들에게 명소가 된 것은 이맘때쯤 핀 연꽃 때문이기도 하다. 8월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오후, 뜨거운 햇살 아래 지친 발길이 나무 그늘을 찾을 때 전평제가 가까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매월동 저수지로 알고 있는 곳이 바로 전평제다. 지금 전평제에는 연꽃이 만발했다. 연꽃이 전부 몇 송이나 될까? 전평 호수에는 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꽃과 연잎이 덮었다. 잠자리는 연꽃 위를 나르며 연꽃 향기를 하늘로 퍼 올렸다. 바람이 불어오자 잠자리는 연꽃을 맴돌고, 연꽃의 은은한 향은 코끝을 맴돌았다. 오리는 물 위를 가벼이 둥둥 떠다니는 듯 보이나 물속에서는 물갈퀴를 단 발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연꽃 또한 물 위에 아름다운 자태의 꽃을 피워냈으나 뿌리는 진흙에 두고 있다. 우리 인생도 그렇다. 번듯한 건물에서 깨끗한 옷차림으로 산다고 해도, 개개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돈을 벌어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진흙탕보다 더 못한 곳에서 오리보다 더 부지런히 발놀림 하고 있음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겉모습만 봐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향을 싼 종이에선 향이 사라져도 향 냄새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선 생선이 빠져나가도 생선 비린내가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가 떠난 뒷 자리도 아름다워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삶이 비록 수면 아래서는 발버둥을 칠지라도 수면 위에선 평온한 모습과 마음으로 사람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으며, 내가 떠난 뒷자리일지라도 향긋한 인간냄새를 풍겨야 한다는 것을 연꽃에게서 배운다.


전평제 호수는 연꽃이 뒤덮고, 전평제 둘레 길은 빠알간 배롱나무 꽃이 뒤덮었다. 연꽃을 보러 온 사람들이 연분홍 연꽃보다 더 붉게 핀 배롱나무 꽃에 눈길을 줄 수밖에 없게 한다. 배롱나무 꽃의 꽃말은 '부귀'이다. 작은 꽃이 포도송이처럼 모여 피어 붉은빛을 더하는 배롱나무 꽃을 보니 절로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하나하나 분리하면 너무 작아서 그 존재를 드러내기에도 어려우나, 작은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모여서 무리가 되니 눈에 확 뜨이는 꽃이 된다. 돈에는 원래 이름이 없다.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공돈이나, 푼돈이란 말이 없다는 뜻이다. 적은 돈이든 많은 돈이든 액수에 상관없이  돈은 돈일뿐이다. 티끌모아 태산이다. 단 돈 1원도 아끼고 모으면 큰돈이 된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에게 "큰 부자가 되는 비결을 가르쳐 달라!" 했더니, 부자는 가난한 사람에게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겠느냐?" 다짐을 받고, 가난한 사람을 벼랑 끝 낭떠러지에 뿌리를 내린 나뭇 가지를 붙잡고 매달리게 하고 "이제 나뭇가지를 잡은 그 손을 놓아라"라고 했다. 가난한 사람이 깜짝 놀라며, "그러면 내가 떨어져 죽을 터인데 그렇게 할 수는 없소." 했다. 부자는 나뭇가지를 잡은 가난한 사람에게 "네 손안에 돈이 들어오면 오늘처럼 그렇게 꽉 쥐고 놓지 말거라"하며 떠났다고 한다. 작지만 모으면 태산이 되는 법이다.

그러나 부자는 돈을 모으는 방법만을 알려주었다. 번 돈을 가치있게 써서 돈은 물론 마음까지 부자가 되는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는 배롱나무 꽃그늘 아래 서서 생각한다. 부귀를 누리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부귀를 명예롭게 나누면 마음까지 부유하게 된다고, 오늘 나는 마음 부귀를 누릴 준비가 되었는지 스스로를 점검한다.

배롱나무 꽃은 길 위에 붉은 꽃잎을 떨구며 레드카펫을 만든다. 자신만의  부귀를 나누어 길을 따라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꽃길을 내어준 것이다.


햇살이 누그러지고, 주위가 어둑해지며 달이 차오를 때쯤 연분홍 꽃은 하얀 꽃으로 꽃단장을 한다. 밤의 어두움은 세상을 검은 자락으로 가리지만 정작 연꽃은 하얗게 빛난다. 하얗게 빛이 나는 연꽃 사이를 가족들이 함께 걸어간다. 저만치 아빠가 앞서가고, 아이는 엄마 손 잡고 아장아장 뒤를 따른다.

연꽃 대좌에 앉아 계시던 부처님도 가부좌로 모았던 다리를 쭈욱 펴며 연꽃 가득한 전평제를 걷는다.

연분홍 꽃잎을 가지런하게 모아 합장한 연꽃 봉오리는 부처님 앞에서 기도를 한다.

전평제에 하늘의 달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바람의 수런거림과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잦아들면, 바람에 꽃가루를 실어 보내던 연꽃의 수술도 내일 아침 꽃잎이 다시 활짝 열리기를 기다리며 잠이 든다.

전평제의 하루가 그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 전평제 주변에는 아름다운 카페와 다양한 음식 종류만큼이나 많은 식당이 함께 있습니다. 저녁이나 휴일에 전평제를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은 피서가 될 듯하여 글을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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