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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Jun 25. 2017

청풍 따라 찾아드는 義와 멋의 무등산 기슭

더위가 찾아드는 계절이다. 아이들은 기말고사가 끝나면 방학에 들어선다. 방학을 한 아이의 손을 잡고 광주에서 멀지 않은 곳을 찾아 나서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광주하면 무등산(無等山), 무등산하면 광주다.

무등산은 광주광역시 북구와 담양군, 화순군에 걸쳐있는 호남의 명산이다.

광주시민들은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1,187m 높이의 보석 같은 무등산을 두고 있는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무등산은 호남의 명산이기도 하다.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12년에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광주의 무등산에서 담양군 쪽으로 넘어가는 무등산 기슭에는 나라가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의롭게 나서서 나라를 지킨 충장공 김덕령 장군을 모신 충장사가 있고, 전상의 장군을 모신 충민사도 있다.

광주시내에서 무등산 전망대를 지나고, 잣고개를 넘어서면 광주의 제 4수원지가 나온다. 올해는 가뭄으로 4수원지의 물도 줄었다. 물로 채워져 있어야 할 수원지의 많은 부분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4수원지 다리를 건너면 마주하는 곳이 청품쉼터이다. 청품쉼터는 어른과 아이들이 어울려 푸른 바람이 싣고 온 맑은 공기로 도심에 공해에 찌든 폐포를 닦아낼 수 있는 곳이다. 내 아이가 어릴 때 광주 산수동 집에서 차로 10분이면 찾을 수 있는 가까운 곳이기에 주말이면 가족이 함께 찾아와 쉬며 놀았다.

청품쉼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청풍학생야영장이 있다. 학생들이 텐트에서 야영을 하며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청풍이란 이름을 같이 쓰는 것만 봐도 청품쉼터와 청풍야영장이 가까이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청풍야영장에는 학생들이 모험을 즐길 수 있는 몇 가지의 놀이 시설이 있다.

청풍야영장에서 가던 방향으로 길을 좀 더 가면 정안사란 절이 나온다. 몸과 마음을 깨끗하고 편안하게 하고 비구스님들이 수련하는 절이다. 정안사로 들어서는 분토마을에는 200년이 넘은 팽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청품쉼터에서 충장사로 가는 길 중간 급한 커브 길에 충민사를 만날 수 있다. 충민사는 정묘호란 때 우리 조선을 침략해 온 청나라 군과 안주성에서 싸우다 순절한 전상의장군의 사당이다. 지금의 광주 남구 구동에서 태어난 전상의 장군은 광주 읍지에 나온 광주 3충신 - 고경명, 김덕령, 전상의- 중 한 사람이다.

충민사를 지나 무등산 쪽으로 좀 더 산길을 따라 오른다. 몇 개의 굽이를 지나서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이 지천으로 깔리는 충장사가 나온다. 충장사는 의병장 김덕령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임진왜란을 맞아 국난의 시기에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의 전투에서 많은 승리를 거두었다. 충장사에 들어서기 전 오른쪽에는 김덕령 장군의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에는 중요민속자료 제111호로 지정된 김덕령 장군이 입던 옷과 장군의 묘를 새로 단장할 때 나온 관곽과 친필을 볼 수 있다. 광주의 핫 플레이스인 충장로라는 거리 이름은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시호에서 가져왔다.

충장사에서 담양군 쪽으로 더 나아가면 금곡마을이 나온다. 우리 민족의 멋을 간직한 분청사기를 굽던 가마터가 있던 곳이라 이곳에는 분청사기 전시관이 있다. 유리 속에 전시 된 유물들만 보다가 비록 파편이지만 분청사기를 만져볼 수도 있는 곳이니 아이들의 교육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무등산 수박으로 유명한 마을을 지나 광주 호를 가까이에 두고 나이 430살이 넘은 광주 충효동 왕버들군 아래 그늘에서 잠시 발을 멈추고 우람한 나무를 둘러본다. ‘한낱 나무도 세월이 흐르면 이렇게 멋있어지거늘 사람들은 어찌하여 나이 듦을 한탄만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나이든 사람들의 멋을 알아볼 줄 모르는 것이다. 오히려 나무는 늙은 사람의 참 멋을 알아봐 주는 것은 아닐까? 왕버들은 전부 해서 세 그루이다. 그중 한 그루는 높이 9m, 둘레 6.25m, 수관(水冠) 너비 동서 11.5m, 남북 18.9m이며, 중심에 있는 한 그루는 높이 10m, 둘레 5.95m, 수관 너비 사방 14m이고, 마지막 한 그루는 높이 12m, 둘레 6.3m, 수관 너비 동서 16.6m, 남북27m이다. 나무 세 그루가 만들어 놓은 그늘이 넓다. 400년을 넘게 켜켜이 나이테를 쌓아 온 나무의 여기저기에는 굴곡진 세월을 기억하는 주름들이 가득하다. 사람 얼굴의 주름은 근심의 대상이 되나 나무의 주름은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멋진 작품이다.

광주 호수 생태원에서 호수와 사람의 어울림을 생각하며 느릿느릿 길을 걸으면 광주 호를 스치고 지나온 바람이 이마를 어루만지며 땀을 닦아준다. 호수 생태원에는 식물의 이름들이 명패로 새겨져 있어 우리가 늘 봐오던 식물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키다리 나무그늘을 따라 나무로 만들어진 호젓한 길을 걸으면 어느 사이 나도 나무가 된 듯 한 착각에 빠진다. 호수에 발을 담그고 키를 키워가는 나무가 되어 나무 길에 나도 그림자를 드리웠다.

호수 생태원에서 짧은 다리를 건너 담양으로 넘어가기 전 환벽당에 들린다. 환벽당에 올라앉으면 환벽(環璧)이란 이름 그대로 둥근 고리를 두르듯 산과 계곡이 한 눈 아래 들어온다. 환벽당은 광주광역시 충효리에서 태어난 김윤재가 지었다. 충장공 김덕령은 김윤재의 종손이다. 김윤재는 1532년 문과에 급제하며 관직에 나아갔고, 관직을 그만 둔 뒤 고향으로 돌아와 환벽당을 짓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김윤재의 제자로는 정철(鄭徹)과 김성원(金成遠) 등이 있다. 정철은 16살부터 27살까지 환벽당에서 공부를 했다. 정철을 생각하니, 이런 곳에서 공부를 하면 저절로 공부가 될 것 같은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산별곡을 새긴 바위에서 소리내어 읽어본다.

광주와 담양의 경계인 작은 다리를 건너면 담양 땅이다. 담양 땅의 첫 길목에서 가사문학관을 만날 수 있다. 가사문학관에서는 조선 초부터 이어져 내려온 문학의 한 갈래이며 율문이면서도 서정 서사 교술의 다양한 성격을 지닌 우리 고유의 문학인 가사문학을 만나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거쳐 온 모든 곳이 주차무료, 입장료 무료이나, 가사문학관은 입장료가 있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관동별곡이 더 올랐다. 첫 몇 구절의 기억을 되살리려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더니 눈에 익숙한 구절이 나온다.

[강호(江湖)애 병이 깁퍼 듁님(竹林)의 누엇더니

(자연을 사랑하는 깊은 병이 들어 은서지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관동 팔백리(八百里)에 방면(方面)을 맛디시니

(800리나 되는 강원도 지방의 관찰사의 소임을 맡겨 주시니)

어와 셩은(聖恩)이야 가디록 망극(罔極)하다.

(아, 임금의 은혜야말로 갈수록 그지 없구나.)

연츄문(延秋門) 드리다라 경회남문 바라보며

(경북궁의 서쪽 문으로 달려들어가 경회루 남문을 바라보며)

하직(下直)고 믈너나니 옥절(玉節)이 알픠 셧다.

(하직하고 물러나니, 임금이 내리신 관찰사의 신표가 행차의 앞에 섰다.)

평구역 말을 가라 흑슈로 도라드니,

(평구역(양주)에서 말을 갈아 타고, 흑수(여주)로 돌아드니)

셤강(蟾江)은 어듸메오, 티악(雉岳)이 여긔로다.

(섬강(원주)은 어디인가, 치악산(원주)이 여기로다.)

쇼양강(昭陽江) 나린 믈이 어드러로 든단 말고.

(소양강(춘천)에서 흘러 내리는 물이 어디로 흘러간단 말인가?)

고신(孤臣) 거국(去國)에 백발도 하도 할샤

(임금님 곁을 떠나는 외로운 신하가 백발도 많기도 많구나.)

동쥬ㅣ 밤 계오 새와 북관뎡(北寬亭)의 올나하니,

(동주(철원)의 밤을 간신히 세우고 북관정에 오르니)

삼각산 뎨일봉(第一峰)이 하마면 뵈리로다.

(삼각산 제일봉이 웬만하면 보이겠구나.)]

운율을 맞춰 읊조리니 아름다운 가사가 입안을 맴돌며 단맛을 낸다.

청풍명월을 벗 삼던 선비의 호흡이 귓가에 다가오는 듯하다. 가사문학관 바로 옆에는 식영정과 부용당이 있으니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다.

가사문학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우리의 정원을 보러 나선다. 일본의 억지로 꾸민 정원에 비해 자연을 그대로 활용하여 정원을 만든 소쇄원도 인근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소쇄원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제월당, 광풍각, 오곡문, 애양단, 고암정사 등의 건물이 자연에 어울려 도드라져 보이지 않으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바로 우리 전통 정원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소쇄원도 입장료가 있으나 지금은 공사 중이어서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있다.

광주에 숙소를 두고 자동차로 義와 멋이 깃든 무등산 기슭을 청 따라 살펴보는 데는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본다면 모를까, 이틀이 짧다.  무등산 기슭은 서두를 것 없이 싸목싸목 둘러보며 광주와 광주 인근을 휴가로 즐기기에 정말 좋은 여행경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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