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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Aug 19. 2017

블라디보스톡 2일-율브린너,블라디보스톡역,독수리전망대

나를 제외하고 일행은 신한촌을 찾아 시내버스를 타고 떠나고, 나는 혼자 율 브린너 생가와 블라디보스톡 기차역을 보았다. 구글 지도를 보며  율 브린너 생가를 찾아 길에서 헤맸다. 나중에 찾고 보니 등잔 밑이 어두웠다. 두 번을 지나친 큰길에서 골목 경사길로 조금 오르면 오른쪽에 있는 건물이 생가다. 나는 율 브린너 동상을 먼저 발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동상이 더 눈에 띌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가부터 발견했다. 창문 아래에 율 브린너 얼굴이 새겨진 동판이 하나 붙어 있는 것으로 봐서 생가라 확신했다. 러시아로만 쓰여 있어서 지도로 재 확인했다. 구글 지도에서 생가라고 지적한 위치와 내가 있는 위치가 동일하니 확실하다. 동상은 어디 있나? 두리번거리며 찾으니 집 아래  나무숲에 동상이  가려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 율 브린너를 만났다. 동상은 영화 '왕과 나'에서 나왔던 모습이다. 율 브린너 생가와 동상을 보고 나오는데, 내가 헤맬 때 같이 길을 찾던 아가씨가 아직도 헤매고 있다. 우리나라 여자 같아서 다가가 '율 브린너 생가를 찾으세요?'했더니, '아임 저패니스'라고 답한다.

영어로 율 브린너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단다. 유명한 남자 배우였다고 설명해도 모른다. 하기사 스물은 넘었고 서른은 안 된 아가씨이니 율 브린너가 출연한 영화들을 봤을 리가 없다. 스마트 폰을 열어 율 브린너 사진을 보여주니 '아하'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위치를 가르쳐  주었더니 머리를 숙여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다' 한다. 나는 '천만에요, Enjoy Your trip.'했다. 오늘이 우리나라에선 광복절인데, 나는 일본 사람에게 영화 십계에서 유대인을 붙잡고 억압하는 람세스 역할을 했던 율 브린너 설명을 하고 있다. 아이러니다.


율 브린너 생가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불라디보스톡 역으로 갔다. 어제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내린 곳이 블라디보스톡 역 건너편이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고풍스러운 모습의 블라디보스톡 역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1600년대의 건물 양식이다. 역의 외관은 내가 좋아하는 상아색이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역 안으로 들어서려니 검색대가 가로막는다. 이젠 익숙하다. 가방과 호주머니에 있는 열쇠, 손에 든 스마트 폰을 검색기에 밀어 넣고, 나는 금속을 탐지하는 검색대를 통과해서 내 가방과 물건들을 챙겼다. 대합실이 그리 크지는 않다. 1600년대에 사람 수도 적었을 거고, 여행객은 그보다 더 적었을 테니 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1900년대에 지어진 서울역도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그림이 그려져 있다. 서양을 여행할 때는 꼭 천장을 봐야 한다. 천장에 그림이나 장식이 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것이 천장 그림이다. 천장 그림은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톡의 상징물을 그렸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 찾았더니 1층에서 계단을 내려 기차를 타러 나가는 곳에 있다. 공공건물에 있는 화장실이니 당연히 무료라고 생각하고 들어가려니, 아줌마가 막으며 뭐라 한다. 내가  알아먹는 말로 했으면 좋겠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20이라고 써졌다. 그래 20 루블 내라는 소리지? 그냥 참고 말란다.

내려온 김에 기차를 타는 승강장으로 들어갔다. 승강장에는 증기 기관차가 전시되어 있다.  증기 기관차에서 가까운 곳에 시베리아 횡단철도 9,288km 지점 기념비가 서 있다. 증기 기관차는 미국에서 만들어 기증했다. 중국사람들이 몰려들더니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깃발을 든 사람이 여행 가이드인 듯 허리에 찬 스피커를 통해 중국어로 설명을 한다. 중국 여행객까지 시끄럽게 떠들어대니 정신이 사나워진다. 오가는 사람으로 인해 사진을 찍도 힘들 정도다. 우리나라 말도 들리고, 일본어와 영어도 들리지만 중국어에 밀려 귀퉁이에 선 느낌이다. 1년 전 제주 우리 집에 가서 성산포 여행을 할 때 중국사람들 때문에 시끄러웠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올봄 제주 집에 갔다 온 아내가 중국사람들이 줄어들어 조용해서 좋다 했는데, 그 중국사람들 모두 블라디보스톡으로 몰려와 있나 보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타 보려 했는데 승무원이 막는다. 사진만 찍고 내려오면 되는데...

블라디보스톡 역 건너편 광장에는 레닌 동상과 꽃밭이 있었다. 여행 오기 전 러시아 키릴 문자 읽는 법을 알고 왔었다. 그래서 러시아 문자를 대충 읽을 수는 있다. 다만 의미를 모를 뿐이다. 영어 H가 '니은'발음이고, 뒤집어진 N자가 모음 '이' 발음이므로 HNH는 '닌'으로 읽힌다. 레닌 동상이란 뜻이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러시아에서 레닌은 어떤 의미까? 러시아 사람들은 공산주의를 좋아할까? 블라디보스톡 역으로 오는 길에 쓰레기통을 뒤지는 몇 명의 거지를 보았다. 공동으로 생산해서 공동으로 나누는 공산주의라 배웠다. 그러면 거지는 없어야 하는데 러시아에도, 북한에도 거지는 있다.(그런데 왜 북한 거지는 꽃거지라 할까?)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더한 빈부 격차가 난다고 한다. 나는 자유주의자다. 그래서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주의는 당연히 싫다. 마르크스와 레닌이 없었다면 공산주의도 없었을까? 그러면 우리가 남 북으로 나누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레닌 동상을 보면서 생각이 복잡해졌다. 내 생각이 얽혀있거나 말거나 레닌 공원 꽃밭에 있는 꽃은 바람을 타고 하늘거리고,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아이들은 풍선을 들고 뛰어 논다.   


신한촌에 갔던 일행과 만나기로 했던 독수리 전망대로 발길을 돌렸다. 블라디보스톡 역에서 독수리 전망대까구글맵을 보며 최단 거리로 걸어갔다. 어제저녁 들려서 과일과 과자를 샀던 대형 슈퍼마켓이 있는 클로버 하우스(Clover House) 마켓을 지나 독수리 전망대(Observation Deck)로 길을 올라갔다. 길을 오르며 보니 오른쪽에 '어서 오십시오, 전통적인 조선 식당'이라는 빨간색 간판이 보인다. 뉴스에서만 보던 북한 식당이다. 멀찌감치서 그냥 사진만 찍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인데다, 러시아는 북한과 가까운 나라이니 시비에 휘말리면 내가 유리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길을 재촉해 오르니 구글맵 지도에 나온 길은 전망대를 돌아가는 것으로 나온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아파트 길로 들어섰다. 지도가 가르치는 방향으로 최대한 직선거리로 갔다. 전화도, 인터넷 SNS로도 연락이 되지 않으니 내가 약속 장소에 늦으면 사람들이 걱정하고 기다릴 거고, 일행을 이끌고 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 제일 애가 탈 것이기 때문이다. 급한 경사길의 계단을 뛰고 생전 처음 와본 길을 망설임 없이 해치고 나갔다. 땀은 났지만 다행히 아파트 사이로 지도에는 없는 길이 뚫려 있어서 약속시간보다 15분 먼저 도착할 수 있었다. 전망대에 오르니 블라디보스톡 항구와 금각교, 혁명 광장이 내려다 보였다. 군사 항이라고 하더니 군함도 여러 척 있었다. 시간이 되어도 일행이 나타나지 않으니, 혹시 내가 전망대가 아닌 다른 곳을 전망대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었다. 푸니쿨라를 탈 거라는 말을 들었기에 푸니쿨라 하차장을 찾았다. 사람들이 몰려서 올라오는 끝을 눈으로 추적했더니 푸니쿨라 종점이 보였다. 푸니쿨라에서 내린 사람들이 길 위로 나서서 지하계단을 거쳐 광장을 지나고 육교를 건너 전망대로 오르는 모습을 확인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주황색 옷을 입은 사람이 전망대까지 오는 것을 보고 여기가 전망대라 확신이 됐다. 키릴 문자를 만든 형제의 동상 앞에 서서 기다리다 계단에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했다. 역시 가장 많은 사람들은 중국인, 그리고 일본과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여행객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못 가본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있다. 처음 푸니쿨라 하차장을 찾을 때 우리나라 사람 같은 아가씨가 보이길래 '푸니쿨라 타고 오셨어요? 하고 물으니 "아니요, 저는 중국사람입니다."라고 우리나라 말로 대답한다. 오늘 말을 걸어 물어본 여자가 모두 일본과 중국 사람이다. 내가 여자 보는 눈이 어둡다. 그래도 물으면 상냥하게 대답해줄 것 같은 우리나라 사람으로 보이는 아가씨에게 묻는데 오늘 100% 실패다. 외국 나가서 내 행동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 같으면, '쓰미마셍' 하라 했다. 서양인의 눈으로 보면 일본인과 우리나라 사람, 중국인은 구분이 안 되긴 할 것이다.

러시아 전통의상을 입은 아가씨가  나를 보며 자꾸만 미소 짓는다. 뭘까? 내가 이 나이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 통하는 남자인가? 내 뒤를 보아도 나말고는 없는데? 정말 난가? 그러다  주위를 돌아보니 '러시아 여자와 사진을 함께 찍는데 200 루블'이라는 내용이 여러 나라 글로 써진 안내판이 보인다. 그러면 그렇지!, 우리나라에서도 통하지 않는 내 얼굴이 여기라고 통할 리가 없지...


약속시간보다 15분 늦게 일행이 나타났다. 반가웠다. 일행이 전망대에서 구경을 마치자 내려가는 길은 내가 안내했다. 올라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가면 되니까. 내려가는 중간에 아들이 잠수함 박물관과 개선문쪽으로 방향을 튼다. 점심때가 되어서 오늘은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 햄버거 세트메뉴가 7,000원 정도다. 음료수가 무한 리필이 되니 마음껏 먹을 수 있으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먹으면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한다. 햄버거 가게에서야 화장실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지만 밖으로 나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20 루블, 400원씩 내고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나마 유료 화장실을 찾기도 힘들다. 혹시 블라디보스톡이나 하바롭스크에서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러시아어로도 써졌으나 알아볼 수는 없으므로 요금을 뜻하는 20이라는 숫자와 드물게 영어로 W.C 또는 Toilet이란 표지를 찾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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