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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Nov 26. 2018

왜 미술관과 음악회에 가며, 책을 읽을까?

사람들은 왜 미술관에 가고, 음악회에 가며, 책을 읽을까?

그림과 음악과 책은 각각 달라 보이지만 의미를 알면 사실 같은 선상에 있다.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볼때면 그림 속에서 화가가 말을 걸어온다. 화가가 선택한 색과 곧게 뻣거나 구부러진 선이 말을 건다. 음악회에 가서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귓전을 울리던 음악이 가슴을 울려올 때 작곡가가 말을 걸어오고, 책을 심취해 읽다보면 작가가 글 쓰며 상상했던 상황들이 책을 읽으며 상상하는 내게 말을 걸어온다.

화가는 그림으로, 작곡가는 음악으로, 작가는 글로 말을 걸어 올 뿐 모두 똑 같이 내게 묻고 대답해준다.

이런 의미에서 글을 쓰는 나에게 미술과 음악과 책은 모두 같다. 뿐만아니라 내가 미술관을 즐겨 찾고, 음악을 즐겨 들으며,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읽는 이유도 모두 같다. 다른 사람의 질문과 이야기가 궁금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내 글의 모티프(Motif)가 될 때가 많고, 때로는 글을 쓰게하는 모티브(Motive)가 되기도 한다. 또  글이 다른 작가나, 화가, 음악가에게 모티프를 주거나 모티브가 될 수도 있으리라.

나는 글을 쓸 때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손이 가는데로 글을 쓸 때도 있지만, 때로는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보는 등 무언가로부터 자극 받아서 글을 쓸 때도 있다. 아무런 생각없이 쓰는 글은 마음이 가난해질 때 쓰는 글이다. 사실 내게 생각없는 때는 없다. 다만 생각이 적은 때가 있을 뿐이다. 생각이 적을 때, 이 때를 나는 '마음이 가난해 진 때'라고 이름 짓는다. 마음이 가난해 진 때는 글에만 전념할 수 있다. 이것저것 떠 오르는 생각들이 사라지고 오로지 글 쓰는 주제에만 생각이 머무른다. 맹자는 '마음이 하는 일은 생각하는 일이다.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고 했으니, 글 주제에 생각이 머무름은 곧 마음 머무름이다. 이러한 마음 머무름은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나, 작곡가가 작 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박 2일간 회사 일로 대전을 갔다 광주로 돌아오는 화요일, 광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관문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자 습관처럼 평소 내가 자주 들려 그림을 보는 터미널 옆 신세계 갤러리를 찾았다.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피곤했던 몸과 마음이, 그림을 보고 있으니 스르르 풀려 내린다. 갤러리에서는 1998년부터 해를 거듭하며 이어 온 '남도문화의 원류를 찾아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남도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예술, 자연환경을 주제로 삼아 만든 작품들을 전시하는 ‘남도문화의 원류를 찾아서’ 19번째 전시회, 2018년 작품 전은 ‘연꽃을 닮은 이상향 보길도’를 주제로 했다. 조선시대에는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더 외떨어진 섬이었던 보길도에 살면서 윤선도는 '어부사시사' 같은 시가 문화를 이루어 냈다. 윤선도는 곡수당, 무민당, 세연정, 정성암 등 25채의 건축물을 보길도 곳곳에 지었다. 보길도 모옥리에는 크고 둥근 자갈이 많다. 갤러리에도 둥근 돌을 높게 쌓아 올린 작품이 전시돼있었다. 보길도에 피는 꽃들이 작은 액자를 하나씩 차지하고 있기도 했다. 완도에 있는 보길도는 전라도 사람은 물론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보았거나, 가보고 싶어 하는 섬이다.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의 유적이 있는 부용동 정원이 있고, 해수욕장도 있으며, 상록수가 많고 물이 맑아 자연경관 역시 빼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광주에서 보길도를 만날 수 있다니! 시간을 내서 시외버스를 타고 터덜거리며 달려가지 않아도, 보길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보는 보길도는 또 색달랐다. 천인천색 만인만색이라 했던가? 사람은 누구나 보고 듣지만, 이를 느끼고 표현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내가 그림을 보는 이유가 이거다. 내가 보는 세상을 다른 사람은 어떻게 보고, 어떻게 다르거나 같게 느끼는지?

전시 된 작품 중에 보길도의 밤하늘에 별이 가득한 그림이 있었다. 화가의 붓끝 터치로 그려진 밤하늘 그림 한편에 한 줄기 흰 물감이 휙 그어져 있다. 화가가 의도를 갖고 일부러 그려 넣은 것인지, 아니면 작품을 그리는 중에 흰 물감이 떨어지자 이를 길게 그어서 이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치 유성 하나가 밤하늘에 자를 대고 길게 선을 그으며 내려오는 모습 같았다. 갤러리라고도 불리는 미술관이 어쩌면 우리 삶의 어두운 면을 잠시라도 밝게 밝혀주며 떨어지는 밤하늘의 유성 같은 존재는 아닐까? 이 그림을 그릴 때 화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그 그리는 화가 곁에는 누가 있었을까? 그림 속에 등장하는 마을 집에는 노랗게 따듯한 불이 켜져 있다. 불빛 아래서 가족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그림에서 어둑해진 밤 하늘이 그보다 더 어두운 마을보다 두 배는 더 많게 화폭을 차지하고 있다. 어쩌면 화가는 밤하늘을 전경으로, 마을을 배경으로 그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중요하고 강조하고 싶은 것에 더 많은 부분을 할당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면서 화가가 그렸던 마을과 하늘 그리고 그 시간에 현장에 있고 싶어졌다. 다음에 내가 완도 보길도를 가게 된다면, 미술관의 많은 그림 중에서 화가가 내게 가장 많은 말을 걸어 오고 이야기를 들려 준 바로 이 그림 때문이다.

미술관에서 다시 내 마음이 풍성해졌다. 그래서  나는 늘 미술관이 좋다. 미술관이 좋은만큼 음악회도, 책도 좋다. 나는 사람의 이야기가 좋다.

왼쪽 위에서 중앙을 향해 하얗게 그어진 선, 별의 떨어짐일까? 아니면 실수로 그어진 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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