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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Oct 13. 2018

다시 찾은 kt인재개발원의 가을, 그리고 인생의 가을

대전 kt인재개발원!, 32년 전 kt에 입사 해 신입사원 교육을 받던 곳에 이제 마무리 지으러 왔다. 신입사원 시절인 옛날에 이 곳 이름은 한국전기통신공사 연수원이었다.

회사 이름도 kt로 바뀌고, 교육받는 곳의 이름도 바뀌었으며, 건물도 늘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대로다. 세월 흘러 나 들었을지라도, 나는 여전히 다. 그러나 나이가 만으로 60이 되었으니 이제 나가야 된다고 한다. 정년퇴직이다. 미련도 아쉬움도 없다. 직 없는 사람이 되어도 겂 날게 없다. 나는 이미 수년 전부터 시민기자와 사회복지 강사로 활동 중이다. 주말에는 쉴 틈 없이 일하는 프리랜서다. KT에 다니느라 시민기자 활동에 집중하지 못 하면서도 매월 상당액을 월급외 소득으로 번다. 사회복지 강사도 한다. 처음 신문기자 하나로 시작한 시민기자가 지금은 아홉 개로 늘어났듯이, 강사 활동 폭도 점차  넓혀가겠다. 그러니 당장 그만둬도 할 일이 없어 무료할 틈은 없다.

kt에서 정년퇴직하듯이 인생에도 정년퇴직이 있을까? 있다면 어느 때가 정년일까?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하면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호주머니도 가벼워지지만, 인생에서 정년퇴직을 하면 몸의 무게도 느낄 수 없게 영혼이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마지막이란 단어 앞에 아직은 서툴다. 서툴지만 그래도 갈 길은 가야 한다. 내가 이 세상에 안녕이라고 말할 때까지……. 어쩌면 안녕이란 말조차 남기지 못하고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아버지처럼 머리를 두어 번 끄덕이고 말 수도 있다.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죽음에 대해 아버지께서는 몸으로 우리를 가르치셨다. 결코 오만하지 말라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라고, 미리 정리하고 준비하라고……. 나는 아버지처럼 잘 해낼 수 있을까? 정말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들 앞에서 생의 마지막을 두고 의연할 수 있을까? 그립고 또 그리운 아버지 모습이 내 가슴에 남은 것처럼……. 생각하면 포근해지는 우리 엄마처럼……. 먼 훗날 내 아들이 나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한쪽이 지긋이 무거워지면서도 결코 그리움을 밀어내지 않는  지금의 나처럼…….

kt를 그만두려면 무엇을 정리해야 할 까? 우선 책상 서랍, 옷장과 개인 사물함도 비워야 하고, PC와 핸드폰도 반납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kt인이라는 마음을 비워야 하지 않을까? 나이든 사람들이 자꾸 '옛 날에...'를 말하는 이유는 미래에 거는 기대가 없기 때문이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 과거를 회상한다는 말이다.

과거에  묶여 앞으로 헤쳐 나갈 미래를 놓치지 않겠다. 다만 가끔 추억으로 회상할 뿐...

연수원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연수원 앞 정원을 지나 숲이 있는 산길로 향했다. 어쩌면 더 하고 싶어도, 더는 하지 못할 kt 연수원에서의 산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듯 또박또박 소리 내며 걸었다. 하루하루 시나브로 다가오는 퇴직일처럼 가을도 알게 모르게 내 숨결에 섞여 있었다.

황록색으로 익어가는 모과나무 아래를 지날  달콤한 모과향이 좋았다. 지금보다 더 젊은 시절 교육받으러 왔던 가을에도 향이 달콤하게 좋았었다. 모과나무 주위에 떨어진 모과는 반쯤 썩어있다. 세월은 그렇게 모과를 익게 하고 떨어지게 하고 또 썩어서 흙이 되게 한다. 그 흙은 거름이 되어 다시 모과나무 여린 잎으로, 열매로 익어 다. 내가 회사에 들어오든 정년을 하고 나가든 모과는 그저 꽃피고 열매로 맺혔다가 떨어질 것이다. 준비없이  차디찬 새벽이슬을 맨몸으로 맞이한 배롱나무는 다시 떠오른 해가 반가워 바싹 마른 잎을 흔든다.

어떤 단풍나무는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어떤 단풍나무는 여름의 초록을 그대로 간직했다. 감나무 가지 끝에  주렁주렁 매달려 홍시로 익어 가는 가을처럼, 정년퇴직을 앞둔 내 마음도 얼룩덜룩 단풍색으로 물든 가을이다.

세월 흐름에 모든 것이 정비례하 않음을 깨닫는다. 시간이 때로 느리게 흐르고, 때로는 쏜 살 같이 간다. 그동안 나는 느리지만 성실하게 32년 하고도 9개월을 kt에서 일다. 부모님을 모셨고, 아내와 아들이 함께 살 수 있게 해준 터전이었다. 젊은 청년이 32년세월을 넘어  죽음조차 달관 할 수 있는 나만의 삶을 완성해냈다. 32년! 생각하면 참 긴 시간이었다. 그러나 다시 돌아보니 엊그제 같기도 하다. 앞으로 헤쳐 나아가야 할 인생 2막의 삶은 32년보다 더 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제는 해야만 했던 삶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 그동안 책임감으로 포장해 참으며 의무적으로 해왔던 일이다. kt에서의 일을 잘해 냈지만, 이제는 전혀 다른 일을 하며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하고 싶다. '마음이 있는 곳에 몸을 두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마음과 몸을 함께 두어 힘들어도 힘든지 모르게 일하고 싶다. 기술자로써의 삶을 이어간다면 어렵지 않게 재 취업을 할 수 있으나, 새롭게  하고자 하는 사회복지와 상담일이 어려운지도 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 보살피고 대화하는 일을 하며 살겠다.  오늘 나의 이 소망이 꿈으로써 끝나지 않도록 행동해 나가겠다. 해야만 하는 일 대신, 하고 싶은 일의 소중함을 알 나이가 되었으므로…….

인생 2막을 위해 4년 전 미리 준비던 상담심리학과 사회복지학에서 강조한  'Here and now',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며 몰입했을 뿐인데, 전직 교육자 중에 가장 열심히 했다면서 지도하고 이끌어주신 성균관대 장욱희 교수님이 직접 저술한 책도 주시고 응원의 글도 남겨 주셨다. 인생 2막에 대한 열정적인 가르침도 감사한데 내가 좋아하는 귀한 책까지 주신 고마운 교수님이다. 교수 앞날에도 건강과 발전이 있으시길 빈다. 인생 1막의 삶을 시작할 때 내 앞에도 로버트 프로스트처럼 두 갈래 길이 있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길의 끝에 서 있다.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이 길을 연장해 더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낯설고 힘들더라도 이젠 그저 멀리 끝까지 바라보기만 하고 가지 않았던 다른 길을 가야겠다.

내가 나를 보듬고, 잘할 수 있을 거라 스스로 격려하며, 재촉하지 않고 나를 기다 주겠. 여름처럼 열정적이었던 인생 1막을 후회하지 않듯이, 울긋불긋 화려한 가을같은 인생 2막의 끝에서도 후회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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