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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Dec 28. 2018

다시 또 프라하, 첫 번 째 밤

2015년 말과 2016년 초에 아내와 나는 휴가를 내고, 대학 3학년 2학기 유럽 교환학생을  마친 아들과 파리에서 만났다. 그렇게 시작한 유럽 가족여행, 마지막 여행지가 프라하였다. 프라하! 틴 대성당이 기억나고, 프라하 성, 사암으로 만들어져 검었던 화약탑이 생각난다. 까를교도 아름다웠다. 구 시가지의 유리공예품도 볼만 했다. 다시 방문하면 프라하의 어떤 곳을 봐야 할까?

이번에 머물 호텔은 프라하 성 근처라 자연스럽게 프라하 성을 보게 된다. 프라하 공항 도착이 오후 4:10, 입국수속을 끝내고 짐을 찾아 호텔행 버스를 타면 6시가 넘는다. 프라하는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더 높아서 해가 더 빨리지고 어두워진다. 호텔로 가는 길에 야경이 아름다운 프라하성을 보게 될 것 같았으나 그렇지는 않았다. 다행히 호텔 6층 객실에서 프라하성이 보였다. 짐을 풀고, 야경이 아름다운 프라하 시내로 나섰다. 프라하 성으로 가는 길, 페트리진 언덕에 공산주의 희생자 위령비가 있었다. 1948년부터 1989년 기간동안에 공산주의에 의해 희생당한 20만여 명의 사람들을 추모하는 위령비다. 사람 형상의 조형물은 계단을 따라 지그재그로 배치되어 있었는데, 맨 아래 사람의 형상부터 위로 오를 수록 사람의 형상 중 신체 일부가 없어지고 있었다. 마치 공산주의가 인간을 좀 먹는다는 표현을 하는 듯 했다. 이념(Idea)이란 무엇일까? 이념은 이상적으로 여기는 생각이나 견해를 뜻하고. 때로는 추구하는 가치와 준수할 규범이기도 하다. 생각이나  견해, 가치와 규범을 만들고 행하는 주체가 사람인만큼 이념은 사람 존중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이념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념이란 이름으로 사람을 멸시하고, 찢고 부순다면 그 이념은 진정한 이념이 아니다. 올 해 초부터 평화 모드로 변화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남과 북으로 갈라져 이념 대립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 존중되는 이념 이어야하고, 자유와 평화를 바탕으로 하는 이념이어야 한다. 사람을 수단으로 하지말고 사람이 목적인 세상이어야한다.

좀 더 프라하 성 쪽으로 가니 프라하의 아기 예수 성당이 나왔다. 성당 앞에는 말구유의 아기 예수가 있었다. 어둠이 내려선 때문인지 성당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몇 년 전 갔던 존 레논 벽으로 가니 과거의 글과 그림 대신 다른 글과 그림이 있었으나 세계 각 나라의 글이 적힌 전체적인 느낌은 그대로 였다. 가방에서 네임 펜을 꺼내 나도 글을 썼다. 가족 이름과 함께 '사랑과 평화, 자유 대한민국 2018.12.26' 이라 적었다. 우리 글을 아는 사람이 내 글을 읽으며 단 한 번 만이라도 우리 가족과 뜻을 같이해 주기를 바라는 문구였다.

까를교를 지나며 다리 난간에 설치된 조각상들을 봤다. 날도 어두운데다가 조명에 의지하기는 했어도, 동상들이 검은색이라 잘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다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체코는 동유럽에서 잘 사는 나라에 속하고, 수도 프라하만 놓고 본다면 1인당 GDP가 4만 달러라 한다. 4만 달러 중 많은 부분에 관광 수입도 기여한다. 우리나라의 관광은 어떤가? 또 내가 사는 광주의 관광은 어떤가? 굴뚝없는 산업인 관광산업의 대상물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많은 사람을 불러 들이는 관광이 실은 스토리가 아닐까? 단순히 조각상 십여개가 설치되어서가 아니라, 역사적인 이야기가  조각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람들은 그 의미를 찾고 현장에서 확인하고 느끼고자 조각상에 몰려든다. 우리에게도 남 못지 않게 많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의 이야기를 사물이나 자연과 연관시켜서 관광 상품화 해야 하지 않을까?

눈에 익숙한 구 시가지를 지나 구 시가 광장에 들어섰다.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불빛이 번쩍이고, 사람들로 붐볐다. 커다란 나무엔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이 되어 유독 눈길을 끌었다. 어둠은 세상의 모든 추함을 검음으로 가려 버린다. 불빛은 검은  어둠을 배경으로 더욱 빛난다. 빛과 어두움이 어울려 부리는 마법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한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펼쳐 지기 전에는 구 시가 광장의  주인이었던 얀후스동상이 저 만치 물러 나 번쩍거리는 빛의 한 편 구석에서 화려한 불빛의 그림자에 가려 주눅든 듯 움추리고 있었다. 천문시계탑도 얀후스 동상과 신세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비록 어두웠지만 유명 관광명소들을 보니 옛 기억이 추억으로 되살아 났다. 그 때 여기서 나는 무엇을 말했고, 아내는 무엇을 말했는지, 아들의 말까지도 기억을 타고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다시 또 파라하에 올 일이 있을지는 모르나, 세월이 흐르면 오늘의 느낌과 감정이 프라하나 프라하가 아닌 장소에서 되살아날 수도 있다. 지금의 어떤 순간과 말들이 미래의 그 때, 우리 가족의 추억이 되어 줄까?

블타바 강, 물길을 거슬러 오르며 호텔로 걸어서 되돌아 오는 길에 강 바람이 차가웠다. 프라하의 아름다운 야경들이 내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오늘 하루도 2만 걸음이 넘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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