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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Dec 29. 2018

다시 또 프라하 두 번 째 날

체코와 우리 나라는 8시간의 시차가 난다. 체코가 8시간 느리다. 따라서 여행을 떠난 첫 날은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시차 8시간을 더한 32시간이다. 긴 하루의 시작을 위해 서울에서 아침 6시에 깼었다. 11시간 20분 비행기를 타고 와서 체코의 밤거리를 구경하고 잠자리에 든 시각이 체코 시각으로 밤 10시, 우리나라 시각으로 다음 날 아침 6시 였으니, 32시간만에 잠을 잤는데, 자다 깨어보니 밤 12시, 2시간 자고 일어난 셈이다. 체코의 밤 12시는 우리나라 시각으론 아침 8시다. 시차 적응이 안 되다보니, 32시간동안 활동하고도 2시간 밖에 못 잔 셈이다. 그나마 다행은 사랑하는 아들이 내 곁에서 잘 자고 있음이다. 아들이 자칭 '프로 여행가'라더니 시차 적응도 프로급이다. 세계 50여 국을 여행하고, 두 번 방문한 뉴질랜드에서 한 달 동안 구경을 하고, 이 곳 프라하에도 네 번째 온 아들이니 시차적응은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잠든 아들 곁에서 잠을 방해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건 스마트폰을 천정을 향해 들고 글을 쓰는 거 였다.

그렇게 작성한 '다시 또 프라하 첫 번 째 밤'은 누운체 단숨에 일필휘지로 썼건만, 프라하 도착 후 야경을 촬영한 50장의 사진을 첨부해 발행하는 순간 스마트폰이 반응하지 않고 멈춰 서 버렸다. 스마트폰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호텔의 인터넷 속도가 문제였다. 한 장당 4Mega byte가 넘는 사진 50장을 첨부했으니, 200 Mega byte가 넘는 데이터 트래픽을 초당 몇 killo byte짜리 인터넷이 감당을 못 한 것이다.(1 Mega byte는 1,000 killo byte다)  어쩐지 글이 술술 잘 써지더라니...

중간 중간 저장을 하지 않은 탓에 비행기타고 떠난 바람처럼 글은 사라져 버렸다. 사라진 글을 다시 붙잡아 쓰려했는데, 잠이 부족해 몽롱한 상태라 능률도 떨어지고, 정신은 아득해지기만 했다. 다시 글  쓰기를 포기하고, 우리나라 인터넷의 위대함을 실감하며 잠을 청해 자는 듯 마는 듯 하며 맞이한 여행 두 번 째 날의 아침을 맞았다.(이 글보다 먼저 브런치카페에 오른 '다시 또 프라하 첫 번 째 밤' 글은 두 번 째  날 시간 내어 짬짬이 다시 쓴 글이다.)

아침 여섯 시, 다시 잔 잠에서 깼다. 짐을 숙소에 두고 작은 가방 하나만 메고 길을 나섰다.

어제 밤에 갔던 공산주의 희생자 위령비를 지나 페트린 공원에 있는 크니쿨라를 타고 공원으로 올랐다. 쿠니쿨라를 타는 시간은 5분이었으며, 내려 올 때는 걸어 내려 오기로 하고, 1인당 32크로네를 내고 가장 짧은 시간의 티켓인 30분짜리를 구매했다. 걸어 오를 수도 있었으나 여행의 다양함을 위해 니쿨라를 탔다.

공원 정상에는 천문대와 꽂이 피는 정원이 있었지만, 겨울이라 황량했고, 천문대 역시 문이 닫혀 있었다. 근처에 파리 에펠 탑과 비슷한 철골 구조의 탑이 있었다. 탑을 오르는데 계단을 이용하면 1인당 75, 엘리베이터 이용 시 1인당 210이었다. 가져 온 용돈은 충분했지만 운동을 위해 계단으로 올랐다. 바람에 휘청거렸지만 꿋꿋하게 전망대까지 올랐다. 파리 에펠탑처럼 중간에도 전망대가 있고, 제일 높은 곳에 하나 더 있는 구조다. 맨 위 전망대에 오르니 프라하 성이 바로 코앞이었고, 360°를 돌며 프라하 시내 전체를 볼 수 있어 좋았다. 프라하 구 시가지 일대만 보다가 전체를 보니 정말 큰도시였다. 한 나라의 수도이니 큰 규모도 당연하다.

탑 전망대에서 보아 둔 프라하 성 가는 지름길을 따라 프라하 성으로 갔다. 2년 전이나 지금이나,  근위경비병은 관광객이 옆에 붙어 사진을 촬영해도 꼼짝도 안 했다. 12시에 교대식이 진행됐다. 성 2층에서 군악대가 연주를 하고 정문 근처에서는 줄지어 도열한 군인들이 근무 교대를 했다. 그저 볼 만 할 뿐 성대하진 않았다.

지난 번 방문 때 봤기 때문에 프라하 성엔 들어가진 았았다.

까를교를 걸어서 다리 끌에 있는 타워브릿지로 올라 가는데 매 위층에서 티켓을 끊었다. 1인당 100 크로네였다. 전망대 타워에서 360° 돌며 까를교를 내려다보니 붐비는 관광객과 구 시가지를 볼 수 있었다. 이 역시 지난 여행 때 안 해봤던 것이다. 구시가지 화랑에서 아들이 학교 선배와 연구실 동료, 교수님 드릴 그림을 샀다. 그림을 살 때 주의 사항은 천에 인쇄한 사진을 사지 않도록 잘 살펴야 한다.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은 더 비쌋으나 선물이라 printing 대신 painting을 샀다. 그림 가장자리가 매끄럽지 않고 페인팅 자국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으나, 인쇄한 사진은 자로 잰 듯 깨끗하다. 내일은 아침 식사 후 공항으로 출발하기에 체코돈 전부를 그림 사는데 썼다. 아들은 외국에서 그림을 자주 산다. 나는 그림은 미술관에서 감상만 하지만 아들은 나와 다르다. 이게 세대차가 아닐까? 내가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밴 탓이기도 하다.

구 시가지 근처에 있는 무하미술관을 방문했다.(Kaunický palác, Panská 7, 110 00 Prague) 입장료가 우리 돈으로 만원이 넘었는데, 기억은 나지 않는다. 미술관 내에서 사진 촬영은 금지다. 무하 그림은 타로카드에서  볼 수 있다. 알폰스 마리아 무하(Alfons Maria Mucha)는 체코의 이반치체에서 1860. 7. 24 에 탄생해서 1939. 7. 14에 프라하에서 죽었다. 그의 그림은 풍요로운 색으로 젊고 매혹적인 여성에 대한 묘사를 아름답게 했다. 파스텔톤의 색은 현실 속 인물들을 환상 속의 인물로 표현됐다. 도록을 사고 싶었으나 우리 글로 된 도록이 없어서 포기했다. 미술관 한 쪽에서는 무하의 일생에 관한 동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 영상을 보고 들었다. 미술관에는 기념품을 파는 곳이 있었다.

호텔로 돌아 오는 길에 이번엔 어제와 다른 강변을 걸었다. 겄다보니, 빌딩이 비틀어진 모양의 건물이 있었다. 춤추는 빌딩이다. 어제와 같은 경로였다면 발견하지 못 했을 것이나, 운 좋게도 볼 수 있었다.

피곤하고 지쳤지만 아들이 강변에 접한 산에 있는 성당이 아름다울 것 같다며, 가자고 했다. 성당 이름은 성피터와 폴의 BASILICA였다. 프라하에 와서 처음으로 성당 내부를 보았다. 오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곳이다. 아들의 선택이 신의 한 수였다. 아들을 한 없이 믿고, 응원한다. 그런 아들이 성당에 있는 피에타 조각을 보며 설명해주는 말, 피에타는 하느님이 보시기에 가장 슬픈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기 때문에 제대로 조각을 보려면 위에서 봐야 한단다. 그러나 성당에서 어찌 높게 올라가서 볼 수 있겠는가? 까치발을 하고 보며 상상력을 더했을 뿐이다.

푸니쿨라를 타고 오르는 시간은 5분 정도

전망대를 오르는 티켓을 사는 창구

유명한 비행사?인가 보다.

전망탑에서 내려다 본 프라하

까를교 타워에서 내려다 본 전경

까를교 타워에 오를 수 있는 티켓

까를교 타워 지붕은 돌 기와다.



춤추는 빌딩, 왼쪽이 여자고, 오른쪽이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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