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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Aug 28. 2020

나이와 개

엊그제 회사 근처로 놀러 온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친구가 “내 나이를 잘 모르겠어. 누가 나에게 나이를 물어보면 그때서야 계산을 해, 어렸을 때는 나이를 기억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라고 말했다.

나이를 기억하고 살지 않는 게 나만은 아니는 걸 그때 알았다. 젊을 때 말고, 나이 들어서 내 나이를 명확히 기억하던 때가 있었다. 우리나라 나이로 61세, 만으로 60 되던 해, 매달 모이는 학교 친구들 모임에 가면 거의 1년 내내 생일을 맞이한 친구들이 ‘회갑이라 가족과 식사를 한다, 여행을 간다. 우리 모임에서 회갑 기념으로 단체로 여행을 가자 등’ 회갑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말들을 해서 그해는 나이를 정확히 기억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더 정확히는 50 넘어서면서, 누군가 내게 나이를 물으면 처음엔 우리나라 나이로 말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나이 드는 게 억울해서  나이로 말하다가, 나중엔 서양식으로 생일 달까지 계산해서 생일이 지나지 않으면 나이 숫자를 절사 해서 말했다. 나이 드는 게 싫어서…….(지금이 2020년 8월, 우리나라 나이로는 63, 만으로는 62, 생일 달을 계산하면 61년 10개월, 이 10개월을 절사 하면 61살이다.) 몇 년 전부터는 나이를 물으면 매년 변하는 나이를 기억하지 못해서 그냥 58년생이라고 답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58년생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에 편했다.

내가 “58년생이요.”라고 대답하면 대부분의 사람들 “58 개띠!”라 반응을 보다. 그때마다 난 사람들의 반응이 신기했다. 난, 내 아내와 아들이 태어난 해를 빼고, 다른 사람들이 태어난 해를 말해도 즉각적으로 띠와 연관시키지 못한다. 내 나이를 기준으로, ‘신, 유, (술), 해, 자, 축, 인……’ 손가락을 꼽으며 계산한 후에야, '아~ 무슨 띠구나' 하고 형광등보다 더 느린 수은등처럼 반응다.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와 엄마를 생각한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내 나이 때 무엇을 하셨지? 어떤 생각을 하셨었을까?’ 궁금해진다. 살아계면, ‘엄마는 아빠는 63세 때 어땠어?’하고 여쭈어 보면 되는데……. 내가 이렇게 글을 써 두면, 아들이 내 나이가 됐을 때, 나처럼 ‘우리 아빠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라는 궁금증을 다소나마 해소할 것 같다. 틈나는 대로 글을 많이 써야겠다.

오늘은 카카오 톡으로 배달된 강아지에 관한 브런치 글을 읽었다. 유기 견을 입양해 키우면서 학대를 받았던 개가 보인 행동에 관한 글이었다. 글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개에 관한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 시절 중 3은 고등학교에 입학시험을 보고 합격해야 갔다. 종이로 보는 시험 외에 체력장이라고, '달리기, 멀리뛰기, 윗몸일으키기' 등 체력을 측정해서 점수화하는 제도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이 되지 않는다. 타고나기를 약하게 태어나거나, 몸에 장애가 있는 친구들은 체력장에서 점수를 깎이고 경쟁시험을 봤어야 했을 테니까…….

체력장 시험을 보고, 으로 돌아왔는데, 아버지께서 하시던 가게 문이 닫혀 있고, 여러 가구가 모여 살던 집에는 동네 사람, 모르는 사람들이 서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하시던 가게에 불이 나서, 아버지와 직원은 병원에 입원해 계 상황이었다. 며칠 흘렀을까?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집 안마당에서 우리가 키우 개를 본 어떤 동네 사람이 “저 개 때문이야. 저 놈의 개가, 맨날 땅을 파더라고…….”, 그때는 매장을 하던 문화가 대부분이었던 시절이었. 그래서 땅을 판다는 건, 관이 들어갈 자리를 판다는 의미와 같아서 나온 말이었다. 즉, ‘개가 땅을 파서 사람 죽을 일이 생겼다.’라는 의미였다.

그 후로 우리가 ‘곰’이라고 불렀던 검은색 개는 우리 집에서 사라졌다. 학교에 다녀온 뒤로 개를 볼 수가 없었다. 곰이라는 개는 강아지 티를 막 벗 작은 개였다. 앉은 폼이 꼭 곰 같다고 해서 부쳐진 이름이었다. 그 개, 곰은 어디로 갔을까? 남 탓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어디론가 팔려갔을 텐데……. 새 주인 만나서 잘 살았을까?

우리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개와 고양이를 좋아한다. 우리도 아들이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줄 알고는 있었다. 아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면서도 우리는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들이 어렸을 때 천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에 치료받으러 갔더니, ‘아이를 위해서 애완동물이 있으면 없애고, 양탄자나 가능하면 커튼도 없애라.’고 의사가 권유했다. 집으로 돌아온 즉시 양탄자를 걷어 내고, 커튼을 묶어 두었다. 그 뒤로 청소는 습관이 되었다. 아들이 고등학교 기숙사에 입학하던 날부터 시작해 졸업할 때까지 3년 동안 매 주말마다 아들이 사는 기숙사 방 대청소를 해주었다. 그렇게 큰 아들이, 나중에 자신의 가정을 이루고 살면 개를 키우며 살겠다고 한다. 작은 애완견이 아니라, 썰매를 끄는 허스키를……. 산타의 나라 핀란드로 교환학생을 가서 공부를 하다가 학기를 마치는 말미에, 학교에서 교환학생들을 오로라가 보이는 곳으로 데려가고, 개가 이끄는 썰매를 탈 수 있도록 했던 프로그램이 있었나 보다. 그때 허스키와 나란히 얼굴을 대고 활짝 웃으며 행복한 모습의 아들이 보내 준 사진이 실제 눈썰매 현장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이제는 성인이 되었으니, 천식이 없어졌을까? 그래서 개나 고양이를 키워도 될는지……. 아들이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랑한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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