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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Sep 09. 2022

흔적을 남기는 아파트 공사와 소멸하는 인생

정년퇴직 후 아파트 소방시설공사 현장소장으로 시작한 인생 2막. 전혀 다른 분야 일을 하면서 배우는 기쁨이 크다. 하지만 낯선 분야라 겪어야 하는 어려움도 그만큼 많다. 그래도 꿋꿋하게 헤쳐나간다.

광주 '양우내안에 아파트'공사에 이어 두 번째로 책임을 맡은 강진 '동성지구 LH 아파트' 공사가 끝났다. 처음 공사계획은 2021년 5월에 공사를 시작해 2022년 7월 24일 준공 예정이었으나, 토목공사 지연으로 한 달 연기된 8월 23일 준공했다. 그것도 겨우...

내가 맡은 소방시설공사는 모두 마쳤으나, 불이 났을 때 소방차가 아파트에 진입해 사다리를 펼치거나 소방호스를 이용해 불을 끌 수 있도록  소방차만 주차하는 '소방차 전용구역' 차선  완성지 않아서 기다려야 했다. 토목공사 담당에게 다른 작업보다 먼저 '소방차 전용구역' 표시부터 해달라 요청했다. 차선이 그려지고  소방서 검사를 받았다. 어린이 놀이터와 화단 등 공사는 나중으로 미루고...

아파트를 비롯해 소방시설이 들어간 모든 건물은 소방서에서 공사 결과를 검사받고 '소방시설공사 완공검사증명서'를 발부받아야 건물을 사용할 수 다. 우여곡절 끝에 증명서를 받아 소방기술자로서의 의무를 기한 내에 마쳤다.

힘들게 완성했으나 아파트에서  사람들이 내가 시공한 소방시설을 이용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파트 공사에서 전기, 통신, 설비, 조경 등 모든 공사는 사용되기 위해 공사를 하지만, 소방공사만은 예외다. 사용되지 않기를 바라며 공사를 한다. 소방시설을 이용한다는 건 불이 났다는 의미이므로 사용할 일이 없는 게 최상이다.  세상에는 쓰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있지만, 쓰이지 않기 위해 더 필요한 것도 있다는  아파트 소방시설 공사에서 깨닫는다.

아파트에 새로 입주 사람들이 오직 행복과 즐거움으로 삶을 가득 채우며 살았으면 좋겠다.

잡초만 무성하던 땅에 새로운 아파트가 서는 과정을 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과 같구나'하고 느낀다. 공사에서 건물은 지하를 판 후 다지고 정리하는 기간이 길다. 어린아이가 스스로 몸을 일으켜 걷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만큼이나 더디다.

그러다 아파트 1층이 완성되고 나면 그다음은 일사천리다. 1주일에 1층씩 만들어져 올라간다. 한 해가 다르게 커가는 성장기와 같다. 목표한 층수까지 완되기도 전, 4~5층쯤 올라가면 내부 작업이 병행된다. 몸을 키우고 동시에 공부하는 학령기와 비슷하다. 학령기가 끝났다고 바로 어른 역할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아파트도 건축물 뼈대(골조) 작업이 끝났다고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냉난방, 상하수도, 전기, 통신, 유리창호 작업 등 내부 장식이 끝나야 한다.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공부를 했지만 내실을 다지는 시기가 끝나야 어른으로써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어디 아파트 건축만 그러겠는가? 인생도 마찬가지고,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겠지. 다만  건축공사는 건물을 남기며 끝나지만, 깊이가 훨씬 더 깊은 인생은 소멸하며 차이가 있다. 태어나 성장하고 일하며 기쁨과 슬픔, 동행하거나 외로워하다가 인생을 완성하는 날 하늘로 돌아가는 게 인생이다.

인생 2막은 언제가 끝일까? 지금 계획으론 70세까지 현장에서 일할 예정이다. 그다음은 그때 건강상황을 봐야 하고...

강진 공사를 마치고 본사 직원에게 후속 작업을 맡기고 바로 순천 아파트 현장으로 간다. 법에서 소방기술자 자격 가진 사람 역할은 소방시설공사 완공검사증명서가 나오면 끝난다.(공사기간에는 소방기술자가 상주해야 한다) 소방기술자격자 인건비가 비자격자보다 비싸기 때문에 자격 가진 사람 효용성과 회사 이익 극대화를 위해 이후 진행하는 관리사무소 인계, 공사대금 수령 등은 비자격자라도 상관없으니 맡기고 떠난다.

세 번째 맡을 순천 현장은 2,000여 세대가 넘는 31개 아파트  부속건물까지  지어야 하는 큰 규모 공사다. 강진은 집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출퇴근했지만, 순천은 회사에서 얻어 준 원룸에서 자고 식당에서 밥 먹으며 일한다.

또 어떤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일하게 될까? 그림을 그리거나 글 쓰는 것처럼 혼자 하는 일 말고 대부분의 일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 즉 일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만난다는 것이다. 사람과 만은 관다. 좋은 관계가 반복되면 인연으로 발전한다. 순천에서 많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강진에서 나빴던 몇 사람은 버렸고, 대부분은 관계에서 끝났고, 몇 사람은 인연으로 간직했다. 그렇게 버리고 버림받고, 기억되고 잊히고, 불현듯 생각났다 사라지는 삶을 반복하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과 꽃이 지는 이유를 알게 될 때쯤 세상에 미안하고 고마워하며 마침표를 찍는다. 길게 이어 온 문장은 사라지고 마침표 하나 남았다가 마침표마저 사라진다.

34년간 일하고 정년퇴직한 kt에선 중간에 퇴직하면 죽는 줄 알았다. 그래서 명예퇴직 압박버텼다. 하지만 인생 2막에선 오히려 퇴직이 연봉을 올리는 기회다. 늘어나는 경력을 바탕으로 연봉을 올려간다. 새로 해나가는 일에서 겪는 여러 경험은 내게 소중한 자산이 된다.

건축현장에서 일하 보니, 기술자들이 자신 경험하며 쌓은 노하우를 머릿속에만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정리해서 기록한다. 어떤 일이라도 기록해두면, 그 기록이 나뿐만 아니라, 후배와 동료에게 도움 되는 자산라는 걸 kt에서 이미 몸으로 배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순천에서 내 노트엔 어떤 내용들이 기록으로 남을까? 다치지 않고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스스로 기원한다. 안전하기를 바라면서 끝없이 나를 응원해주는 아내와 아들의 사랑으로 무장하고 두려움 없이 순천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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